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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아체 쓰나미 15주기 르포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바다가 무서워 고기잡기 그만 둬…”

파도에 떠밀려 올라온 발전선박은 참상 보여주는 박물관으로

한국 기업이 희망학교 지어주고 한인들이 그림 치유 등 봉사

※ 인사할 때마다 상대를 축복(슬라맛)하는 나라 인도네시아. 2019년 3월 국내 일간지로는 처음 자카르타에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는 격주 목요일마다 다채로운 민족 종교 문화가 어우러진 인도네시아의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에서 하나됨을 추구)’를 선사합니다.
인도네시아 반다아체 쓰나미 박물관에 전시된 사진. 2004년 아체 쓰나미 당시 한 소녀가 턱 밑까지 차오른 물에 잠겨 겁에 질린 채 나무를 붙잡고 있다.

‘마치 죽은 듯 살아가는 사람들.’ 망자를 기리는 박물관에 적힌 글귀가 처음엔 낯설었다. 시내는 차분했고 항구는 활기찼고 사람들은 평온했다. 겉만 보면 15년 전 비극은 박제된 듯했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들여다볼수록, 한 번 휩쓸고 지나간 대재앙보다 평생 혼에 박힌 기억이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박물관 문구 그대로였다.

2004년 12월 26일 오전 7시58분, 해저에서 발생한 규모 9.3의 강진이 인도양을 뒤흔들었다. 이어 발생한 쓰나미는 인도양 연안 12개국을 휩쓸어 23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피해가 극심했던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의 서북단 아체지역에서만 17만명이 숨지거나 사라졌다. 인류 역사상 최악으로 꼽히는 ‘인도양 쓰나미(또는 아체 쓰나미)’ 15주기를 맞아 아체특별자치주(州)정부의 승인과 인도네시아 5번째 국립대인 쉬아쿠알라대(UNSYIA)의 협조를 얻어 지난달 22일부터 나흘간 피해 현장과 기념물들을 두루 둘러봤다.

아체 쓰나미 15주기 르포 지역. 그래픽=김문중 기자

◇20명 중 1명 생존, ‘알라의 기적’만 덜렁 남은 마을

인도네시아 반다아체 람풀로 어촌 풍경. 바다가 마을 깊숙이 들어온 지형이라 2004년 쓰나미 당시 주민의 95%가 숨졌다.

주도(州都) 반다아체 북쪽의 람풀로는 바다가 마을 깊숙이 파고든 형태의 어촌이다. 쓰나미가 가장 먼저 들이닥쳐 주민 95%가 숨진 곳이다. 물길을 따라 어선들이 한가로이 늘어서 있었다. 어부들은 지붕이 있는 평상에 앉아 어구를 정리하거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쓰나미 얘기를 꺼내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집안에 있는데 물벼락이 쏟아졌다. 15분이 지나 정신을 차려보니 0.5㎞나 쓸려와 있었다. 도심 쪽으로 물이 밀려가면서 목숨을 건졌다. 일가친척 48명이 죽었다. 그날(쓰나미 발생일)만큼은 고기 잡으러 가지 않는다”(마르란ㆍ40). “바다에서 조업 중이라 몰랐다. 이듬해 3일(쓰나미 발생 8일 뒤) 돌아오니 다 없어졌다. 가족 6명이 숨졌다”(모함마르ㆍ33). 운 좋게 살아남은 이들이 비슷한 경험담을 전했다.

2004년 아체 쓰나미 때 주민의 95%가 숨진 반다아체 람풀로 지역의 어부들이 평상에 앉아 당시의 기억을 얘기하고 있다.

“엄마와 여동생, 아내와 딸을 잃었다. 며칠간 헤매다 다행히 시신을 찾아 내 손으로 묻었다. 이후 바다가 무서워 고기 잡는 일을 그만두고 베짝(becakㆍ일종의 오토바이 택시) 운전사가 됐다. (눈시울이 붉어지며) 왜 내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무함마드ㆍ59). 그는 베짝 옆에서 끝내 울었다. 아내와 아들딸을 잃은 친구 마르주키(59)씨도 함께 글썽였다.

다시 서쪽으로 1시간30분 차를 달리면 아체버사르(아체광역시)의 해변마을 람푹에 닿는다. 마을 전체가 사라지고 이슬람사원만 홀로 남아,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등이 재난의 상징처럼 방문했던 곳이다. 쓰나미 때 피신한 이들의 목숨을 구한 이슬람사원 ‘라마툴라’는 ‘알라의 기적’이라 불리며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무슬림들이 찾는 유적지가 됐다. 기자가 찾은 날도 대형버스들이 줄지어 주차돼 있었다. 하이칼(28)씨는 “다시 마을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자리에 불현듯 예전 모습이 겹쳐 떠오르면 낯설고 심장이 떨린다”고 했다.

2004년 아체 쓰나미 당시 마을은 사라지고 이슬람사원만 덜렁 남은 아체버사르 람푹 지역 모습(위 사진)과 현재 ‘알라의 기적’이라 불리는 유적지로 변한 이슬람사원 전경.

반다아체 항구에서 배로 1시간(38㎞) 걸려 들어간 인도네시아 영토 서북쪽 끝 사방섬은 재산피해가 극심했지만 인명피해는 두 명 사망에 그쳤다. 이브라인(29)씨는 “지진이 나자 주민들이 바로 산으로 올라간 것도 있지만 섬에 무덤이 있는 44명의 이슬람 성인이 지켜준 덕”이라고 했다. 재난은 동일했으나 결과에 따라 사람들의 풀이는 그렇게 달랐다.

◇굴착기로 파묻은 1만여명, 주검이 된 발전선박

2004년 아체 쓰나미로 숨진 희생자들을 굴착기로 퍼서 묻은 성인용 집단 무덤 위에 60대 여성이 밑에 잠들어 있을 것으로 믿는 엄마와 여동생의 넋을 기리며 앉아 있다.

반다아체 항구 부근 울렐레 지역엔 평범해 보이지만 독특한 기념물이 있다. 축구장만한 잔디밭은 알라의 보호를 뜻하는 연두색 벽이 군데군데 서 있다. 들어가면 안 되는 그 곳에 60대 여성이 멍하니 앉아 있었다. “엄마와 여동생을 더 가까이서 만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 밑에 실제 고인들이 잠들어 있는지는 모른다. 그리 믿을 뿐이다.

마캄마살(Makam Massal), 말 그대로 집단 무덤엔 쓰나미 희생자 1만4,264명이 묻혀 있다. 일가족 몰살 등 반다아체시 인구의 절반 이상(10만~13만명)이 숨지자 생존자들은 굴착기로 땅을 판 뒤 신원 확인은 생략한 채 다시 굴착기로 시신을 퍼서 함께 묻었다. 이름을 새기긴커녕 이슬람 봉분도 없이 어른 무덤과 아이 무덤으로만 구별돼 있다.

2004년 아체 쓰나미로 숨진 아이들의 집단 무덤. 굴착기로 땅을 판 뒤 시신을 퍼서 묻었다.

아체 지역엔 비슷한 무덤이 여럿 있다. 유족들은 그저 돌아오지 못한 가족들이 묻혀 있을 법한 집단 무덤을 찾아 고인들의 넋을 기릴 뿐이다. 몇몇 유족이 “난 다행히 시신을 찾았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까닭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시신 발견 여부는 사랑하는 이들을 황망 중에 떠나 보낸 생존자들에겐 여전히 고통의 무게를 가늠하는 슬픈 잣대였다.

2004년 아체 쓰나미 당시 항구에 정박해 있다가 반다아체 도심 쪽으로 5㎞나 떠밀려 온 디젤발전선박 PLTD 아풍 1호. 15년째 저 자리에 정박해 있다.

도심 쪽 내륙으로 5㎞를 들어가면 적갈색으로 녹슨 배 한 척이 15년간 정박해 있다. ‘떠다니는 디젤발전소’라는 뜻의 2,600톤짜리 ‘PLTD 아풍(APUNG) 1호’는 쓰나미 당시 높이 24m 파도에 휩쓸려 정박한 항구에서 동쪽으로, 다시 남쪽으로 쓸려 왔다. 선원 12명 중 배에서 탈출한 5명이 목숨을 잃었다. 인도네시아 주요 섬 곳곳을 누비며 전기를 비상 공급하던 발전선박은 물이 빠진 뒤 어찌할 도리가 없어 주검마냥 그 날 모습 그대로 재난의 참상을 실증하는 박물관 노릇을 하고 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승선한 관람객들은 참혹한 전시물이 있는 선실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2004년 아체 쓰나미 당시 항구에 정박해 있다가 반다아체 도심 쪽으로 5㎞나 떠밀려 온 PLTD 아풍 1호 선실에 마련된 전시장.

◇‘트라우마 입장 금지’ 박물관 그리고 희망학교

반다아체시 중심부엔 쓰나미 박물관이 있다. 아풍 1호에서 차로 5분 거리다. 높이 10여m 벽과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는 20m 길이의 어두운 터널, 즉 쓰나미를 재현한 통로를 지나야 들어갈 수 있다. 입구 앞 경고문 상단에는 ‘(쓰나미) 트라우마가 있으면 입장할 수 없다’고 적혀 있다. 평일인데도 단체관람하러 온 학생들이 많았다.

인도네시아 반다아체 쓰나미 박물관 전경.

전시품은 기실 볼품이 없다. 쓰나미가 밀려간 뒤인 오전 8시18분쯤 멈춘 괘종시계와 흙탕물에 더럽혀지고 망가진 각종 집기들보다 시선을 빼앗은 건 참황을 기록한 사진들과 촬영이 금지된 영상이었다. 영화에서나 봄직한 거대한 물줄기가 순식간에 모든 것을 뒤덮는 장면은 실제 당한 것처럼 아찔했다. 무자비한 쓰나미도 반다아체의 상징물인 대(大)사원(마스지드 라야 바이투르라만)을 침범하지 못하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이 곳 주민들이 라마툴라 사원과 더불어 알라의 기적이라 부를 만했다.

인도네시아 반다아체 쓰나미 박물관에 전시된 괘종시계. 2004년 쓰나미에 밀려간 뒤 멈춘 시각을 가리키고 있다.

대여섯 살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제 양팔 둘레보다 더 큰 나무를 붙잡고 겁에 질린 사진은 그 날의 참상을 에누리없이 보여준다. 10m가 넘는 나무 꼭대기에 매달려 있는데도 물이 턱밑까지 차 올랐다. 취재를 돕던 리사(24)씨가 갑자기 휘청거렸다. “집에서 씻다가 ‘물이다’ ‘도망가’ 고함을 잇따라 들었어요. 동생을 가슴에 싸맨 엄마랑 집 밖으로 달아나는데 뒤에서 정말 산처럼 거대한 물이… 막 떠내려가다 엄마랑 나무를 붙잡았어요. 밖에서 놀던 다른 동생(당시 5세)은 열흘 뒤에 시신으로 발견됐고요.” 비극 속 기막힌 사연은 애써 꺼내지 않을 뿐 아체 주민이라면 누구나 품고 사는 아픔이었다.

인도네시아 반다아체 제13번 국립고등학교 교사들. 2004년 쓰나미로 망가진 학교를 삼성이 다시 지어준 걸 기념해 건물 꼭대기에 ‘삼성희망학교’라는 간판이 있다.

주민 20명 중 1명만 생존한 람풀로 부근엔 제13번 국립고등학교가 있다. 여전히 바다가 무서워 학생들이 오지 않는 바람에 전교생은 51명으로 줄었지만 쓰나미로 망가진 학교 건물은 2008년 새로 지었다. ‘삼성희망학교’라는 간판이 선명하다. 암란(42) 교장은 “학교 구성원 모두가 교실을 지어준 삼성과 한국에 고마워한다”면서 “한국어 교육 등 더 많은 교류와 지원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제주에서 온 자원봉사단이 지난달 23일 인도네시아 반다아체 쉬아쿠알라대 교정에서 농악 공연을 하고 있다.

비극 속으로 자진해 들어가 10년 넘게 희망을 전파하는 한국인도 있다. 현지에 터를 잡고 사회적 기업을 일구는 권정상(56)씨, 그림 수업으로 아픔을 치유하는 이정희(62)씨 등이다. 기자가 방문한 시기엔 제주에서 온 자원봉사단이 태권도장을 만들고 전통예술공연을 했다. 아체 거주 한인은 10명이 채 안 된다. 폐허를 옥토로 일궈 온 한국산 밀알이기에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귀하다. 재난이 사람의 희망을 앗아가지만, 다시 사람이 희망이다.

반다아체ㆍ아체버사르ㆍ사방=글ㆍ사진 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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