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정 “험지도 자신 있다… 자신 없으면 청와대 나왔겠나”

입력
2020.01.31 04:4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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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청와대 대변인 시절은 어려움의 연속… 

 청와대와 끊고 가는 게 아니라 제 영역 확장하는 것” 

 “누구나 정치를 시도할 수 있어야 하고, 누군가는 유리천장 깨야… 

 20대 국회 입법률 높았다면 제가 출마했을까” 

4ㆍ15 총선 출마를 선언한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소재 호텔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4ㆍ15 총선 출마를 선언한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소재 호텔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험지도 자신 있습니다. 자신 없었으면 청와대를 나오지도 않았죠.”

4ㆍ15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인 고민정(41) 전 청와대 대변인의 말이다. 그는 야당 유력 정치인이 터를 닦은 ‘수도권 험지’에 투입될 가능성이 크다. 더불어민주당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뛰고 있는 서울 광진을,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현역인 서울 동작을에서 고 전 대변인에 대한 인지도 여론조사를 돌려 봤다. 그가 ‘문재인 브랜드’의 최대 수혜자라고 해도, 정치 신인으로선 쉽지 않은 길이다. 29일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만난 고 전 대변인은 “어디든 자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고 전 대변인이 정치판에서 살아 남을 수 있을지를 의심하는 시선이 있는 게 사실이다. ‘아나운서 출신의 젊은 여성’이라는 점이 그런 시선을 증폭시킨다. 고 전 대변인은 인터뷰에서 “아나운서 출신이고, 젊고, 여성이라는 것이 모두 저의 강점”이라며 “14년간 아나운서로 일하면서 전 직종, 전 세대에 걸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게 곧 정치였다”고 했다.

 -정치 입문 코스가 기성 정치인들과 다르다. 왜 정치를 하려는 지 궁금하다. 

“모든 국민의 삶과 직결돼야 하는 게 정치다. 정치의 외연은 넓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한계를 자꾸 만드는 것에 반대한다. 누구나 정치에 쉽게 접근하고 정치를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 아나운서로 14년간 있으면서 시민들과 많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대통령부터 시장 상인, 할아버지부터 어린 아이까지 전 직종, 전 세대에 걸친 사람들을 만나고, 삶을 들여다 보고, 공감했다.”

 -‘청와대 경험 밖에 못 해 본, 아나운서 출신의 젊은 여성’이라며 낮춰 보는 시각이 있지 않나. 

“오히려 그 점들이 저의 큰 강점이다. 아나운서 생활이 곧 정치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정치에서 가장 부족한 건 국민과의 공감이다. 지난 3년간 청와대 생활을 하면서 대한민국의 위상이 얼만큼 높은지, 국정이 어떤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는지에 대한 핵심적인 내용들을 다 봤다. 제가 정치 초년병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진 않겠지만, 정치를 오래한 사람과 달리 빚과 부채는 없다. 과감하게 도전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사람이라는 얘기다. 우리나라엔 여성 정치인이 여전히 적다. 누군가는 유리 천장을 깨나가야 하지 않겠나.”

 -문재인 대통령을 위해선 오히려 청와대에 남아 ‘입’과 ‘방패’로서 돕는 게 좋지 않았을까. 

“청와대를 끊어 버리고 새로운 영역으로 가려는 게 아니다. 저의 영역을 확장한 것이다. 정부가 정책을 만들고 국민 목소리를 듣고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고위 당정청 회의를 통해 논의하는 것을 지켜봤다. 청와대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국회 역할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 정부가 추진한 민생 개혁 법안들이 국회에서 잘 통과되지 않았다. 20대 국회 법안 통과율은 30% 초반에 그친다. 통과율이 높았다면 제가 정치에 뛰어들었을까 싶다.”

 

 -국회의원이 된다면 어떤 걸 가장 먼저 하고 싶나. 

“아이를 키우고 있기 때문에 보육 문제와 초등 교육 문제에 관심이 많다. 일류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편안한 삶을 살기 바라는 게 부모들의 마음이다. 이런 걸 정책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고민한다. 남편이 시인이어서 예술가들의 삶을 잘 아는데, 예술인의 복지를 촘촘히 만들기 위한 법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또 새로운 플랫폼들의 등장으로 가짜 뉴스가 난무하는 환경을 어떻게 제도로 개선할 수 있을지도 고민이다. 지역구에 도전하는 만큼, 제가 출마하는 지역 주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부터 듣겠다. 고민정이라는 도구를 통해 유권자들이 원하는 법률을 같이 만들자고 얘기하고 싶다.”

 -출마 예상 지역구 관련 기사가 참 많았다. 특히 거물급 야당 정치인들이 있는 지역이 많이 거론됐는데. 

“상관없다. 다 자신 있다. 험지도 자신 있다. 그런 자신감이 없으면 내가 청와대 왜 나왔겠나. 주변에서 ‘당에서 험지 출마를 요청하면 고민정이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고 하시는데, 왜 반대일 거라고 생각을 안 하시나. 저는 조직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자기 고집만 피우면 다같이 망한다. 의견을 당에 내긴 했지만, 결정은 조직에 맡겨야 힘을 받아서 나갈 수 있다.”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이 29일 본보와 인터뷰 중 출마의 변을 밝히며 주먹을 쥐고 있다. 이한호 기자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이 29일 본보와 인터뷰 중 출마의 변을 밝히며 주먹을 쥐고 있다. 이한호 기자

 -문 대통령과의 인연은 언제 시작됐다. 

“전혀 모르던 분이었다. 아나운서 시절에 파업을 하면서 언론의 자유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방송사가 아닌 밖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 보자 싶었을 때 대선 캠프에서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2017년 1월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 제가 묻지도 않았는데 언론의 자유를 비롯해 내가 꿈꿔 온 세상에 대해 똑같은 갈증을 이야기하셨다. 대화는 예정된 30분보다 긴 2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 만남 이후 ‘그래 가보자’고 결심했다.”

 -옆에서 지켜 본 문 대통령은 어떤 사람인가. 

“언론 인터뷰를 보면, 화를 내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말하는 참모들이 많다. 저는 반대로 ‘대통령도 화를 내시는 구나’ 하고 느꼈다. 언론 보도를 대통령께 보고 드리면, 국민 반응과 관련된 것은 늘 겸허히 받아들이신다. 하지만 청와대ㆍ정부의 일 처리가 잘 되지 않을 때는 칼같이 말씀을 하신다. 그렇다고 사람을 향해 화를 내시지는 않는다. 사람에 대해선 배려를 많이 하시는 분이다.”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나 

“구체적인 걸 공개하긴 어렵지만, ‘인사’와 관련해 앞서 간 기사에 대해선 질타하셨다. 아무 것도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그림이 이미 그려져서 나오는 기사들 말이다. 그런 기사들은 오히려 거론된 사람의 보폭을 줄인다. ‘데스노트’ 같다. 청와대는 검증을 하거나 후보군으로 올릴 때 신중을 기하는 데, 기사는 반보가 아니라 한 보 앞서나가기도 한다. 그래서 대통령께서 뭐라고 하셨던 것 같다.”

 -청와대 대변인을 하면서 많은 일을 겪었을 텐데. 

“대변인 때보다 부대변인 때가 힘들었다. 청와대의 주요 행사나 일정을 진행하는 역할을 많이 했는데, 그걸 평가 절하하는 사람들이 있다. ‘언제까지 행사만 진행할거냐’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하지만 진행자가 누구이냐에 따라 행사나 프로그램의 색깔이 완전 달라진다. 대통령 행사에서 대통령이 다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진행자가 만들어 드려야 한다. 행사에 참석한 시민과 대통령의 간극을 좁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저는 대통령의 철학과 생각을 잘 알고 있어서 행사의 중요 포인트들을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풀어냈다. 저의 새로운 진행과 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해준 유일한 분이 문 대통령이셨다.”

 -그럼 대변인 시절은 어땠나. 

“저는 기자 출신으로 정치부를 출입한 것도 아니고, 정치 경험도 없었다. ‘고민정이 3개월도 못 버틸 거다’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청와대 대변인의 언론 브리핑은 전체 사안의 빙산의 일각만 공개하는 자리이고, 그 아래에는 엄청 큰 게 있다. 그런 내용을 제가 ‘백브리핑’(비보도를 전제한 브리핑)으로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지 다들 예의주시했다고 들었다. 그런 시선을 비롯해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 어려움들이 절 단단하게 만들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대변인 역할 수행이 수월해졌다. 청와대를 나오기 전에 많은 기자들이 ‘나가지 않으면 안되느냐’고 말해 줘 보람을 느꼈다. 기자들과 미운 정 고운 정이 많이 쌓였고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총선 출마 결심 전후로 문 대통령이나 김정숙 여사에게 따로 격려를 받지는 않으셨나. 

“비밀이다. 이상 작가의 말처럼, 삶에서 비밀이 없으면 아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라고 하지 않나. 그 정도는 비밀로 두고 싶다.”

 -지난해 조국 사태 때 불공정 이슈가 뜨거웠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이 조국 전 장관을 놓지 않았던 이유가 궁금하다. 

“그만큼 검찰개혁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 그런 열망이 없었다면 리스크를 안아 가면서까지 그럴 이유가 없었을 거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검찰개혁의 적임자였다는 거다.”

 -문재인 정부는 페미니즘 정부를 자처했지만, 대통령은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한 것을 비롯해 소수자들에게 실망을 안겼다. 정부의 여성ㆍ소수자 정책에 점수를 매긴다면. 

“ABC 중에 B정도로 하겠다. 대통령이 동성애를 반대 하는 건 아니다. 그 분들의 권리가 보장 받아야 한다는 데엔 명확하게 찬성한다. 당시 발언은 대통령 개인의 의견을 밝힌 것이다. 여성의 권리가 더 신장돼야 한다는 생각은 든다. 우리도 여성 장관들이 많기는 하지만 유럽에 비하면 여전히 적고 국내에서 주요 회의에 참석해 보면 여성들이 소수에 불과하다. 고위 관료들 중에 남성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그걸 깨려면 여성들이 더 많이 진입해야 한다. 그래도 문재인 정부에서 여성 장관 비율이 높아졌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지만, 많은 부분을 끌어올렸다.”

 -민주당이 인재로 영입한 원종건씨의 성폭력 의혹이 제기됐다. 사태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보나. 

“본인은 아니라고 부인을 했기 때문에 사실 관계를 파악이 전제돼야 한다. 피해자의 말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폭력은 어떤 것도 용납돼선 안 된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조소진 기자 soj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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