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폐렴’ 베이징 병원 북새통... “춘제 때 집에만 있을 것”

입력
2020.01.22 17:48
수정
2020.01.23 00:34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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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치료 中 병원 가보니… 일부 방문객 마스크 미착용

중국 전역 540명 이상 확진 판정, 하루 만에 200명 이상 늘어

美선 첫 확진자, 北은 외국인 입국 차단… 세계 공포 확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우한 폐렴’ 감염자를 치료하고 있는 중국 베이징의 디탄병원. 22일 감염병 응급실 앞에 진료를 받으러 온 가족들이 서성이고 있다. 베이징의 확진자는 21일 10명으로 늘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우한 폐렴’ 감염자를 치료하고 있는 중국 베이징의 디탄병원. 22일 감염병 응급실 앞에 진료를 받으러 온 가족들이 서성이고 있다. 베이징의 확진자는 21일 10명으로 늘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불안하죠. 하지만 별 일 있겠어요.”

22일 낮 중국 베이징(北京) 북부 디탄(地壇)병원.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서 발병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환자가 격리돼 치료받고 있는 곳이다. 본관 접수창구 앞에서 만난 50대 여성에게 ‘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심드렁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를 포함해 본관 1층 곳곳에 듬성듬성 앉아있는 40여명 중 10여명은 보건당국의 당부가 무색하게 마스크를 쓰지 않은 상태였다. 맨 얼굴로 오토바이 헬멧을 쓴 채 음식을 배달하던 한 남성은 “여기가 전염병 치료한다는 그 병원이냐”고 되묻기도 했다.

본관 입구 고객센터가 시끄러웠다. 40대로 보이는 남성이 “비용 계산이 잘못됐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흥분한 그가 침을 튀기며 30여분간 소란을 피웠지만 그를 제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 남성이 ‘우한 폐렴’ 감염자이거나 자신도 모르게 잠시라도 확진자와 밀접하게 접촉했더라면 위험천만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공안이 3명이나 출동했지만 이들 역시 물끄러미 지켜볼 뿐 끼어들지 않았다.

중국 베이징 북부 디탄병원 본관 유리창에 ‘체온이 37.5도가 넘으면 속히 감염병 응급실로 가서 진료 받으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중국 베이징 북부 디탄병원 본관 유리창에 ‘체온이 37.5도가 넘으면 속히 감염병 응급실로 가서 진료 받으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건물 정면 유리창에는 ‘체온이 37.5도가 넘으면 감염병 응급실로 가서 진료를 받으라’고 적혀 있었다. 100m 가량 떨어진 곳이었다. 응급실 안이 붐비는 통에 밖에서도 10여명의 환자 가족들이 서성대고 있었다. 몇몇 방문객을 제외하고는 의료진과 경비원, 차량 운전사, 청소부, 일반인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6살 아들과 나오던 엄마는 “아이가 열이 있어 바로 뛰어왔는데 다행히 이상이 없다고 한다”며 발길을 재촉했다. 수술복 차림으로 급히 지나가던 여성 의료진은 “폐렴 환자가 입원해 있지만 호들갑 떨 일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이처럼 예상 외로 무덤덤한 병원과 달리 베이징 도심 직장인들의 불안감은 급속히 커지고 있었다. 20일까지만 해도 2명이던 확진 환자가 21일 10명으로 급격히 늘면서 지하철과 엘리베이터 등 다중 이용시설에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40대 여성 쉬에(薛)씨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ㆍ사스)에 비하면 증상이 가볍다지만 사람 간에 전염된다니 걱정이 많다”고 했다. 20대 직장인 팡(方)씨는 “당국에서 발표한 숫자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감염됐을 것”이라며 “춘제(春節ㆍ설) 연휴에 가급적 집안에 있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우한이 고향인 후(胡ㆍ30)씨는 “춘제 때 부모님을 뵈러 가야 하는데 걱정”이라며 애를 태웠다. 우한의 감염자가 산둥(山東)성에 왔다거나 보건당국 고위관계자가 확진자로 판명났다는 등의 ‘가짜 뉴스’도 범람하는 등 전체적으로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춘제연휴를 맞아 기차편으로 고향을 찾는 중국 귀성객들이 22일 저마다 마스크를 쓴 채 베이징서역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춘제연휴를 맞아 기차편으로 고향을 찾는 중국 귀성객들이 22일 저마다 마스크를 쓴 채 베이징서역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중국 내 확진자는 또 다시 급증했다. 이날 오후 10시 기준으로 540명이 넘게 확진 판정을 받았다. 전날 104명 증가에 이어 하루만에 또 200명이 넘게 불어난 것으로 확산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사망자도 11명 더 늘어 17명이 됐다. 리빈(李斌) 국가위생건강위원회 부주임은 기자회견에서 “바이러스 변이 가능성이 있어 더 확산될 위험이 크다”고 우려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가오푸(高福) 중국 질병예방통제센터 주임은 보고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자연 숙주가 박쥐일 수 있다”며 “사스와 유전자 유사성이 70~80%”라고 분석했다.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도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 중국 전역을 휩쓴 우한 폐렴의 공포가 중화권과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를 휘감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21일(현지시간) “우한에 여행을 다녀온 시애틀의 30대 남성이 감염환자로 확인됐다”며 “상태는 양호하지만 만약에 대비해 격리치료 중”이라고 밝혔다. CDC는 중국 우한에 대한 여행경보를 2단계로 상향조정했다.

북한은 아예 22일부터 외국인의 입국을 차단하는 초강수를 뒀다. 중국 내 북한 전문 여행사들은 일제히 “코로나바이러스 유입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내용의 공지를 띄웠다. 일본 NHK방송은 “베이징발 평양행 고려항공이 모든 외국인의 탑승수속을 중단했다”고 전했다. 북한은 2003년 사스 창궐 당시와 2014년 애볼라 바이러스 유행 때 평양~베이징 항공노선 운항을 중단하고 신의주 세관도 폐쇄했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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