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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부외과 의사가 부족해지면서 10년 이내에 수술도 제때 받을 수 없는 '수술절벽'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오후 6시가 넘으면 레지던트(전공의)는 원칙적으로 수술실에 남아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야간에 간호사와 단둘이 수술을 자주 하게 되는데 언제까지 이래야 할지 걱정이 돼요.”

얼마 전 만난 외과 교수는 “주 80시간 이상 근무할 수 없도록 한 ‘전공의 특별법’을 준수하려면 오후 6시가 넘으면 전공의를 거의 퇴근시켜야 한다”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이렇게 의료 인력이 부족해지자 ‘전문간호사’로 불리는 ‘진료보조인력(Physician Assistant·PA)’이 의사를 대신해 의료행위를 많이 하고 있다. 대학병원에서 인건비 절감과 의료 인력 충원을 위해서다. 하지만 PA 역할이 법률적으로 불명확해 서울대병원 등 ‘빅5’ 병원 교수 23명이 검찰에 고발되기도 했다.

외과 의사가 부족한 탓에 대학병원 등에서 수술이 지연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지난해 수술 건수가 9,200여건으로 전년도(1만2,031건)보다 23%나 급감했다. 급히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는 속이 시커멓게 타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의사가 얼마나 부족할까. “국제적으로 절대 부족하고 특히 환자 생명과 직결된 흉부외과·산부인과 등의 진료과는 아주 열악하다”는 평가다. 현재 활동하는 의사는 국민 1,000명당 1.9명(한의사 제외·10만2,000여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3.4명의 56% 수준이다.(2017년 기준)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적다. 반면 국민 1인당 외래진료 횟수는 연 16.6회로 OECD 회원국에서 가장 많다. 그나마 의사의 49.2%는 서울·경기 등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의사 수가 올해에는 2,000명이, 2030년이면 7,600명이 부족할 전망이다. 의사 양성 기간이 긴 만큼 제때 충원하지 않으면 10년 내에 수술을 받지 못하는 ‘수술절벽’이 올 수 있다.

이 때문에 2006년 이후 14년째 3,058명으로 동결돼 있는 40개 의대 정원을 3,600명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 등에서는 “열악한 진료 환경 개선이 우선이고, ‘피성안’(피부과 성형외과 안과) ‘정재영’(정신건강의학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 등 인기과보다 흉부외과·산부인과·응급의학과 등 비인기과의 의료수가(酬價)를 올려야 한다”고 반박한다.

이 때문에 보건복지부가 4년제 의학전문대학원인 ‘공공의대’ 설립을 통해 진료과목별·지역별 의료 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팔을 걷어 부쳤다. 정부가 학비를 전액 부담하는 공공의대에서 길러낸 의사를 10년간 의료취약 지역에 근무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공공의대 정원은 폐교한 서남대 의대 정원(49명)으로 제한해 의대 정원은 실질적으로 늘리지 않으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절충안인 셈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자칫 의대 정원 확대의 단초가 될까 걱정하는 대한의사협회의 반대에 부딪혔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도 “공공의대 설립은 부족한 의사 인력을 적정하게 공급하는 한 부분일 뿐”이라며 의대 정원 확대는 아니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여당에서는 의료 수급 불균형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대 정원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오제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의사 수를 적정하게 수급하지 못하면 국민이 피해를 보게 된다. 공공의대 정원이 49명에 불과한데 이 정도로 되겠느냐. 200명이든 500명이든 확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공공의대 설립 입법은 야당의 반대에 밀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좌초된 상태다.

최근 열린 국립대병원장 회의에서 일정기간 의대 정원 확대를 교육부에 건의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제는 의대 정원 확대 문제를 공론화해야 할 때다. 지난해 설 연휴 밤샘 근무하다 순직한 고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은 페이스 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우리나라에 의사 수가 많다는 걸 의사 말고 누가 동의할까.”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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