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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행정수도 부지 르포

※ 인사할 때마다 상대를 축복(슬라맛)하는 나라 인도네시아. 2019년 3월 국내 일간지로는 처음 자카르타에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는 격주 목요일마다 다채로운 민족 종교 문화가 어우러진 인도네시아의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에서 하나됨을 추구)’를 선사합니다.
인도네시아 신수도 부지로 지정된 동부칼리만탄주의 스파쿠 시내 시장 풍경. 행정수도 발표 이후 땅값이 급등했다.

애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밀림만 잔뜩 볼 것”이라는 주변의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그래도 현장을 눈과 귀에 담기 위해 11~12일 이틀에 걸쳐 스피드보트와 자동차, 도보로 인도네시아 신(新)수도(행정수도) 부지 일대를 길이 막히거나 끊기는 지점까지 훑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행정수도의 구체적인 위치를 파악했고, 뜨거운 현지 분위기를 체감했다.

인도네시아 신수도 부지로 지정된 동부칼리만탄주의 스파쿠 일대 마을.

“당신은 지금 엄청 비싼 땅을 밟고 있다.” 신수도 예정지가 어디냐고 묻자, 한적한 시골마을 스파쿠의 시장에서 만난 주부 오돈(60)씨가 말했다. 그는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의 수도 이전 공식 발표(8월 26일) 이후 “주변 땅값이 10배 이상 올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인(중국계 인도네시아인)들이 다 사갔다는데 한국은 오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대화를 듣던 마을 청년들도 땅값이 얼마나 올랐는지 수치까지 들어가며 거들었다.

인도네시아 신수도 부지로 지정된 동부칼리만탄주의 스파쿠 시내 시장 풍경. 건물은 허름해도 땅값이 급등한 상태다.

스파쿠 서남쪽에 작은 고무나무 농장을 가지고 있다는 아수룰(69)씨는 “길에서 5㎞ 더 들어간 곳인데도 현재 1㏊에 5,000만루피아(약 420만원)로 전보다 10배 올랐다”면서 “자카르타 수라바야 등 대도시에서 온 중국계가 팔라고 하지만 더 기다릴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국유지로 묶인 땅 주변의 개인 토지는 매매가 가능해 계속 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계가 땅을 싹쓸이한다는 증언은 곳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 동부칼리만탄주의 신수도 부지로 가는 길목에 서식하는 원숭이 무리가 도로까지 나와 있다.

일대 밀림엔 간간이 이슬람 모스크(사원)만 덜렁 있었다. 마을이 들어서기 전에 먼저 모스크를 짓는 전통을 감안하면 “전기도 물도 없는 휑한 땅에 최근 사람들이 자꾸 들어와 마을을 만드는 건 우선 점거한 뒤 보상을 받으려는 것 아니겠느냐”는 게 현지인들의 풀이다. 마을을 벗어나면 울퉁불퉁 자갈길이 펼쳐졌지만, 행정수도 부지를 감싸는 2차선 도로는 확장 및 보수 공사가 한창이었다. ‘인프라(기반시설) 제로’ 지역에 도로와 항만, 집과 도시가 생기면 사람들도 많아지고 경제도 향상될 것이라는 게 주민들의 한결 같은 바람이었다.

인도네시아 행정수도 부지로 지정된 동부칼리만탄주의 스파쿠(왼쪽 사진)와 스모이를 가리키는 이정표.
인도네시아 행정수도 부지 위치. 그래픽=김문중 기자

행정수도 부지 위치를 주민들과 지방정부 관계자를 통해 거듭 확인했다. 발릭파판시의 수리얀토 환경국장은 “스모이 1, 2마을과 스파쿠 1, 2, 3마을이 행정수도에 포함된다”며 “이 일대는 바다로 이어지는 강들이 다섯 손가락을 편 형국”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부지 양 옆이 삼림보호구역이라 친환경 수도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숫자가 붙은 마을은 이주민 동네임을 뜻하는데, 해당 지역 주민들은 1980년대 자바섬에서 건너왔다. 수리얀토 국장은 행정수도 부지의 정확한 위치 확인을 재차 요청하자 휴대폰을 꺼내 지도를 띄운 뒤 직접 손으로 가리켰다. 주민들 말도 대동소이했다.

수리얀토 발릭파판시 환경국장이 12일 발릭파판 시내 호텔에서 휴대폰에 지도를 띄운 뒤 인도네시아 행정수도 부지 위치를 가리키고 있다. 그는 이날도 관련 회의가 있다며 이른 아침 인터뷰에 응했다.

동부칼리만탄주(州) 2대 도시이자 인도네시아의 첫 계획도시인 발릭파판이 여정의 시작이다.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2시간 걸리는 발릭파판에서 주도(州都) 사마린다를 향해 북쪽으로 달리다 서쪽으로 꺾어져 행정구역상 스모이에서 스파쿠로 이어지는 길이 주요 동선이다. 스모이 가는 길목엔 원숭이들이 사람들을 맞았다. 스모이2 마을에서 길이 끊겨 잠시 들어간 밀림은 모기 천국이었다. 스파쿠 시내를 벗어나 서북쪽으로 20여분 비포장길을 달리자 차단기가 막고 있었다. 농장 검문소 경비원은 지나가려면 허가를 받아오라고 했다.

인도네시아 신수도 부지로 지정된 동부칼리만탄주의 스파쿠 마을을 벗어나자 나타난 농장 검문소(위 사진)와 차단기. 들어가지 말라는 표지판이 서 있다.

이 농장의 주인(정확히는 사용권 소유)은 프라보워 수비안토 국방장관으로, 농장 절반이 행정수도 부지에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프라보워 국방장관이 수도 이전의 막대한 개발이익을 챙길 것이라는 얘기가 들린다. 지난 4월 대선 당시 야권 주자로 조코위 대통령에게 패배하자 불복 소송까지 감행했던 프라보워가 7월 13일 조코위 대통령과의 ‘지하철(MRT) 단독 회동’ 이후 화해하고 국방장관직을 수락하자 정계에선 더 큰 이면 거래가 있었을 것이란 소문이 파다했다.

조코 위도도(오른쪽)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7월 13일 프라보워 수비안토 당시 그린드라당 총재와 자카르타 MRT에서 단독 회담을 하는 모습. 둘의 공식 만남은 4월 대선 이후 처음이었다. 자카르타포스트 캡처

공교롭게도 수도 이전에 부정적이던 야당은 당초 유력 후보지던 중부칼리만탄주(州)의 팔랑카라야 대신 현 부지를 낙점한 정부의 공식 발표 이후 찬성으로 돌아섰다. 수도 이전이라는 60년 난제를 풀어야 하는 조코위 대통령 입장에선 든든한 추진 동력이 추가된 셈이다. 팔랑카라야는 국부(國父) 수카르노가 1957년 수도 이전을 꿈꾸며 ‘미래 수도’라 불렀던 곳이다.

인도네시아 동부칼리만탄주에 있는 신수도 부지.

현장을 살펴보니 여전히 두 가지 우려가 남는다. 먼저 환경 훼손 가능성이다. 동물보호단체들은 벌써부터 오랑우탄 서식지 파괴를 우려하고 있다. 주민 요한샤(57)씨는 “숲이 천지라 오랑우탄은 옮기면 된다. 외국 업체에 삼림을 덜 파괴하는 방법을 의뢰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다음 세대는 분명 혜택을 누릴 것”이라고 했다. 조코위 대통령 역시 기회 있을 때마다 ‘녹색 수도’ 건설 의지를 설파하고 있다.

조코 위도도(왼쪽)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18일 신수도 부지인 동부칼리만탄주의 스파쿠를 방문해 동부칼리만탄주지사와 담소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대통령궁 제공

제때 완공 여부도 도마에 오른다. 수리얀토 국장은 “중앙정부 장관들이 자주 찾아와 회의하고 점검하고 독촉하는데다 조코위 대통령이 2024년 이 곳 집무실에서 일한다고 약속했으니 반드시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개발 사업은 예정 기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송병엽 코린도그룹 발릭파판사업소장은 “보상 문제가 해결 안돼 12년째 도로를 건설하는 곳도 있다”면서 “다 될 때까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나라가 인도네시아”라고 말했다. 실제 발릭파판과 사마린다를 잇는 유료 고속도로는 지난해 말까지 끝내라는 조코위 대통령의 채근에도 불구하고 1년 뒤인 최근에야 공사가 마무리됐다.

인도네시아 동부칼리만탄주 주도 사마린다와 발릭파판을 잇는 유료 고속도로 전경. 칼리만탄섬 첫 유료 고속도로로 17일 개통했다. 삼보자=고찬유 특파원

기자가 다녀간 나흘 뒤 도로 개통식에 참석한 조코위 대통령은 행정수도 부지인 스파쿠 일대를 둘러봤다. 이후 “땅값이 그 사이 더 오른 곳도 있다”는 현지 소식이 기자에게 전해졌다.

칼리만탄 발릭파판ㆍ스파쿠ㆍ스모이=글ㆍ사진 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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