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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5일 오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56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수출의 탑 수상기업 대표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류효진 기자

일본화(Japanification)가 이슈가 되고 있다. 경제 분야에서 사용하는 일본화는 일본의 20년에 걸친 장기 침체와 디플레이션을 따라가는 것을 뜻하는데, 우리나라는 일본화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일본화 여부를 판단하려면 일본이 장기 저성장에 접어든 1990년대 초의 상황과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을 비교해봐야 한다.

우선, 가장 큰 특징은 엔화 초강세다. 1985년 플라자 합의 때 250엔이었던 엔ㆍ달러 환율은 1995년 80엔까지 떨어진다. 우리나라 환율에 비유해 보면 1,100원 환율이 350원 수준으로 떨어진 셈이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위기를 제외하고는 1,000~1,200원 사이의 환율을 유지하고 있다. 앞으로 1990년대 일본처럼 크게 강세가 될 가능성도 없다.

둘째, 엔화는 세계경제가 불안정해지면 강세가 된다. 일본 경제가 어려워져도 투자소득 유입이 있어 강세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 아베 정부가 들어설 때 엔화는 70엔대까지 하락해 있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내 경제가 어려워지거나 세계경제가 불안정하면 원화 약세가 된다. 그런데 원화 약세는 수출을 늘려 다시 경제 회복을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치 선박의 평형수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일본은 이런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 구조다.

셋째, 1990년대 초 일본의 경제 규모는 OECD 총 GDP의 17%를 넘어섰다. 경제 규모가 이렇게 크면 자신의 성장 동력이 아닌 세계경제의 성장 동력에 기대어 성장하기 어렵다. 내수를 키워 대응해야 하는데 일본은 당시 대규모 부실 채권과 고령화로 내수가 침체됐다. 1990년대 미국 경제가 활황일 때 일본 경제가 나홀로 저성장이었던 이유다.

반면 우리나라는 현재 OECD 총 경제 규모의 2%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내수가 침체돼도 세계경제가 호황이면 우리나라는 성장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일본은 큰 배라 주변의 물이 띄워주지 못하고 스스로 살 길을 찾아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주변의 물이 좀 많아지면 배가 뜰 수 있는 나라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는 수출 비중이 일본보다 훨씬 높다. 1990년대 초 일본은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10%를 넘어서지 못했다. 반면 지금 우리나라 수출 비중은 GDP의 37%에 이른다. 한때 44%까지 증가했다가 감소했다. 세계경제가 성장만 해 준다면 우리는 수출이라는 고리를 통해 덩달아 성장할 수 있다.

우리가 무작정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 위험에 대비하는 건 맞지 않다. 우리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해 우리 고유의 위험 관리를 해야 한다. 우리의 강점은 내수가 취약해도 수출을 통해 부족한 내수를 보완할 수 있는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내수를 키우면 좋지만 우리나라의 경제구조나 규제 환경 측면에서 내수를 단기에 증가시키기 어렵다. 오히려 독일처럼 수출이라는 강점을 십분 발휘하는 게 낫다.

반면 우리의 약점은 가계 부채가 많고 국가 채무도 크게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계 부채는 부동산으로 연결돼 부동산 버블과 그에 이은 디플레이션을 가져올 수 있어 돈의 부동산 집중을 완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축적된 자산을 해외로 적극 내보내야 한다. 국가 채무는 지출뿐 아니라 조달에 해당하는 사회보험과 세금 구조를 바꾸어 지속가능한 틀을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대기업 중심의 수출 경제는 고용유발계수가 낮아 성장을 해도 일자리가 문제된다.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정책 개발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경제는 일본과 쌍둥이가 아니다. 경제 규모가 크지 않으면서 수출 경쟁력이 강한 제조업을 갖고 있다. 일본화라는 운명론에 빠지지 말고, 수출이라는 강점을 강화하고, 부동산 집중과 부채 증가라는 약점을 고쳐 나가고, 일자리 관련 정책 개발을 하면 된다.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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