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원칙 없는 교육정책은 그만

입력
2019.11.25 04:40
수정
2019.11.25 16:0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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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2일 정부세종청사 인근 한 카페에서 학부모들과의 대입제도개선 관련 간담회를 갖기에 앞서 참석자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세종=뉴스1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2일 정부세종청사 인근 한 카페에서 학부모들과의 대입제도개선 관련 간담회를 갖기에 앞서 참석자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세종=뉴스1

아이들이 아직 입시를 준비하는 연령대가 아닌데다가, 1년에 단 두 번(전ㆍ후기) 치러지는 시험 결과로만 대학에 지원할 수 있었던 학력고사 세대로서 요즘 입시제도는 요지경이다. 입시전략을 짠 경험이라곤 모의고사 점수를 입시전문업체에서 발행하는 전지 크기의 대입배치표와 견주어보고 점수에 맞춰 지원할 학교와 학과를 결정하는 게 전부였다. 크게는 수시와 정시로 나뉘고 학생부종합전형(학종)ㆍ학생부교과전형ㆍ논술ㆍ수학능력시험 등으로 소분되는 요즘 대입전형의 속성과 얼개를 꿰뚫어 보는 일은 난감할 수밖에 없다. 이런 복잡한 제도들이 등장한 배경이나 철학, 제도화 과정의 영향 등은 제대로 생각해 볼 겨를도 없었다. 그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난 8월 당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검증과정에서 그의 딸이 10년 전 학종의 전신격인 입학사정관제도를 통해 명문대학에 입학한 일 말이다.

이 사태로 입학사정관제도와 이를 계승한 학종에는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네트워크가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점이 명백하게 드러났고 이는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앞세운 문재인 정부에게 치명타가 됐다. 그렇지 않아도 ‘깜깜이 전형’, ‘금수저 전형’, ‘아빠 찬스’같은 비판을 받던 학종 때문에 수시 전형에 대한 반감이 커지던 터라, 여론은 수능 위주의 정시 확대 요구로 기울어졌다. “정시 확대는 없다”고 끝까지 버티던 교육부도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정시 비중 상향을 포함한 입시 개편”을 주문하면서 입장을 바꿨다. 그리고 교육부는 금주 중 정시 비중이 낮고 학종 쏠림 현상이 심한 서울 소재 주요 대학들의 정시 비중을 높이는 것을 골자로 한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평가방식의 공정성을 요구하는 여론이 우세하고 정시에 대한 선호도도 커지는 것을 내세워 정부는 이런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수능 중심 정시 강화 역시 그늘이 있다. 수능의 영향력이 커지면 문제풀이 중심의 수업이 이뤄지고 학교가 다시 학원화할 것이라는 교사단체들의 목소리는 결코 교육현장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억지 주장으로만 들리진 않는다. 저신뢰 사회라는 한국적 맥락 때문에 부작용이 생겼을 뿐 학생의 잠재능력을 보고 선발하겠다는 학종의 기본 취지는 4차 산업시대를 대비한 인재양성이란 시대적 요구에 맞는다. 학종은 학종 나름대로의 장단점을 지녔고, 수능 역시 수능 나름대로의 사회적 요구가 있는 셈이다.

문제는 교육ㆍ입시 제도 그 자체가 아니라 도무지 그 의도를 파악할 수 없는 문재인 정부의 갈지자 행보다. 문재인 정부는‘교실혁명을 통한 공교육 확대’를 교육철학으로 내세워 집권한 정부다. 실제로 수능의 절대평가나 고교학점제 같은 문 정부의 공약은 사교육에 좌지우지되는 수능의 영향력을 축소하고 학교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다. 하지만 집권 반환점을 막 지난 지금 문재인 정부의 교육정책은 산으로 가고 있다. 2017년 8월 교육부가 야심차게 공개했던 수능절대평가 도입계획은 발표 3주만에 유야무야 됐다. 수능절대평가가 전제돼야 할 고교학점제 도입도 당초 예정했던 2022년에서 다음 정권 때인 2025년으로 늦춰졌다. 1년여에 걸쳐 공론화를 했다며 지난해 정시 30% 이상으로 결론 내렸던 대입제도 개편안(2020학년도)은 올해 조국 사태를 거치며 정시 비율 추가 상향으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확고한 소신이나 철학 없이 이 정부가 그때 그때 여론의 구미에 맞춰 교육제도와 입시제도에 손대고 있다는 것 외에는 이런 행보가 설명되지 않는다. 수험생, 학부모, 교사들을 힘들게 하는 건 정책 변화 그 자체가 아니다. 여론을 핑계 삼아 예측 불가능한 정책을 쏟아내는 정부가 국민들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

이왕구 정책사회부장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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