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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시작돼 미국에서 널리 쓰인 염장 건조 소시지인 페퍼로니는 피자에 얹어 구우면 동글동글 오므라든다. 게티이미지뱅크

종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독자의 ‘리퀘스트’를 받는다. ‘세심한 맛’에서 다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식재료가 있는지요? 나는 본 지면을 일종의 오픈북 시험처럼 접근한다. ‘세심한 맛’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처럼 정말 식재료 속에 우리가 지금까지 몰랐거나 알았지만 무심코 넘어간 이야기나 특성 등이 있는지 탐색한다. 만약 있다면 그것들의 발굴을 통해 식재료가 음식이 되어 식탁에 올라가는 과정이 조금 더 의미를 품을 수 있는지 고민한다(관심 있는 독자라면 bluexmas@hitel.net 으로 이메일 주시라).

그렇게 요즘 애호박, 비트, 두부 등의 식재료를 살펴 본 가운데, 이번에는 다소 이색적인 요청을 받았다. 피자에 올리는 소시지인 페퍼로니를 살펴 보자는 제안이었다. 오랜만에 참신한 도전 또는 과제라 생각하고 일주일 내내 고민하던 가운데 마침 재미있을 만한 이야기가 하나 떠올랐다.

피자에 얹어 구운 페퍼로니는 왜 오목하게 오그라들까? 여태껏 그런지 전혀 몰랐다고? 그래도 아무런 상관은 없다. 익힌 페퍼로니의 형국이 피자라는 대세에 별 지장을 못 미치는 데다가, 설사 한 번쯤 의문을 품더라도 식기 전에 먹기 바빠 사고의 가지가 뻗어 나가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가운데 현상을 발견하고 과학적인 태도를 초석 삼아 진득하게 파고 들어 탐구한 이가 있다. 국내에도 출간된 960쪽짜리 요리책 ‘푸드 랩(Food Lab)’의 저자 J. 켄지 로페즈 얼트이다.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건축을 전공한데다가 미국에서도 똑같은 음식을 무한에 가깝게 조리하는 실험을 거쳐 실패 없는 레시피를 만들어 낸다는 음식콘텐츠 기업 아메리카스 테스트 키친 출신인지라 그는 두 갈래의 경험을 묶어 답 찾기에 나선다. 일단 가설을 세운 뒤 페퍼로니가 오그라들 수 있는 요인을 찾고 실험, 즉 조리를 통해 검증하는 것이다. 

페퍼로니는 이탈리아에서 약 100년전에 돼지고기와 쇠고기에 매운 향신료 등을 넣어 만들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올해 100주년 맞은 페퍼로니 

그런데 페퍼로니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이탈리아에서 건너와 미국에서 뿌리를 내린 염장 건조 소시지이다. 파프리카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페퍼로네(Pepperone)’에서 차용했으며 1919년 처음 소시지로 일컬은 기록이 남아 있으니 올해로 딱 100년을 맞은 셈이다. 대서양을 건너 족보를 확인하자면 나폴리의 살시차(Salsiccia), 나폴레타나의 피칸테(Picante)나 칼라브리아주의 소프레사타(Soppressata)가 조상 뻘이다. 돼지고기를 바탕으로 쇠고기를 좀 섞고 우리의 고춧가루처럼 매운 카이엔 페퍼와 단맛 위주인 파프리카 가루, 마늘 등으로 매콤하고 알싸한 맛을 불어넣는다. 

페퍼로니를 비롯한 소시지의 제조 공정은 기본적으로 같다. 한마디로 ‘분해 후 재조립’의 개념으로 덩어리 고기를 갈아 양념과 섞어 내장에 채워 넣음으로써 새로운 고기를 만들어 낸다. 애초에 가공육, 특히 소시지의 세계가 자투리 고기 및 ‘부속’, 즉 내장을 낭비 없이 활용하려는 취지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회수를 건너 탱자가 된 귤’의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페퍼로니는 섬유질 등으로 만든 인공 껍질(케이싱)에 내용물을 채워 조상들보다는 대체로 좀 더 부드럽다. 대량생산하면서 이에 부담이 적은 쪽으로 질감이 바뀌었으니 충실한 미국화의 예로 들만하다. 

페퍼로니는 섬유질과 콜라겐 껍질로 둘러싸여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페퍼로니가 오그라드는 이유 

이만하면 족보는 충분히 알아 보았으니 본론으로 들어가자. 그래서 페퍼로니는 왜 피자 위에 얹어 구우면 오그라드는가? 로페즈얼트는 첫 번째 가설로 두께와 오그라듦의 관계를 설정했다. 정밀기기인 캘리퍼스로 두께를 측정해 1.3~6.4㎜ 사이를 여덟 단계로 나누어 페퍼로니를 썰었다. 그리고 요리사답게 자신이 만든 뉴욕 스타일의 피자 도우에 얹어 구운 뒤 가장자리부터 오그라든 부위의 최고점, 즉 중심부까지의 높이를 측정해 비교했다. 그 결과 가장 얇고 두꺼운 것을 제외한다면 두께는 오그라듦과 큰 상관이 없음이 밝혀졌다. 한편 피자에 얹지 않고 팬에 구워 봄으로써 페퍼로니가 열원의 방향으로 오그라든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두 번째 가설은 껍질에 초점을 맞추었다. 제조업체에 문의해 보니 페퍼로니는 조리할 때 벗겨내는 섬유질과 조리해서 먹을 수도 있는 콜라겐 껍질에 속을 채워 만드는데, 아무래도 후자가 익히면 오그라드니 소시지 자체도 장단을 맞추느라 변형된다는 답을 들은 것이다. 실제로 조리해보니 후자, 즉 콜라겐 껍질의 페퍼로니만 오그라들기는 했다. 하지만 결과에 만족하지 않고 과학의 회의하는 자세에 이끌려 모든 페퍼로니의 껍질을 벗겨내고 익히니 껍질의 재질에 상관 없이 사이 좋게 오그라들었다. 따라서 껍질도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라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가늘고 좁은 껍질에 밀어 넣은 고기 반죽을 얇게 저민 페퍼로니는 밀도와 수분의 영향으로 열을 가하면 오그라든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렇다면 대체 페퍼로니는 왜 오그라드는 걸까? 첫 번째 열쇠는 유체역학이 쥐고 있었다. 소시지의 속은 살코기와 지방을 갈아 한데 버무려 유화가 일어나 일종의 곤죽과 같은 상태인데, 이를 가늘고 좁은 껍질에 밀어 넣으면 재질에 따라 주변부와 중심부가 다른 비율로 채워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두 번째 가설에서 살펴보았듯 섬유질 껍질은 잘 늘어나 꾸역꾸역 들어오는 속에 맞춰 융통성을 발휘하지만, 콜라겐 재질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 결국 주변부가 먼저 채워지고 중심부가 나중에 채워짐으로써 페퍼로니의 종단면은 알파벳 유(U)자의 패턴을 그리게 된다. 따라서 횡으로 잘라 익힐 경우 U자의 아랫쪽에 해당되는 중심부가 오그라드는 것이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라서, 페퍼로니 속의 수분도 오그라듦에 영향을 미친다. 페퍼로니는 매달아 말려서 완성하는데다가 진공포장한 상태에서 유통되므로 중심부와 주변부의 밀도 및 수분의 차이가 있더라도 궁극적으로는 균일해진다. 하지만 유화, 즉 단백질의 결합 사이에 낀 중심부의 수분은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는 한편, 건조와 유통 과정에서 주변부로 이동한 수분은 연결 상태가 느슨해 조리하면 증발이 잘 일어나니 페퍼로니가 오그라드는 것이다. 

집에서도 품은 좀 들지만 가공육과 소시지를 만들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페퍼로니 만드는 법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페퍼로니를 만드는 법도 살펴보자. 소시지를 어떻게 집에서 만들어 먹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의외로 인터넷을 뒤져보면 취미로 삼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품은 좀 들지만 공정 자체가 엄청나게 복잡하지 않고 불도 쓰지 않으므로 가공육과 소시지의 세계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 도전해볼 만하다. 

[페퍼로니]

재료 

돼지 목살 3,500g

소 목심 1,000g

소금 5큰술

설탕 1큰술

카이옌 페퍼 (혹은 고춧가루) 1큰술

파프리카 3큰술

아니스 씨 3큰술, 빻거나 냄비 밑바닥으로 두들겨 부순다

곱게 다진 마늘 2큰술 

달지 않은 레드와인 250ml

큐어링솔트#2 10g*

*큐어링솔트는 가공육용으로 쓰이는 분홍색 첨가제이다. #1과 #2가 있는데 가열을 안 거치는 가공육의 미생물 번식을 막는데는 후자가 쓰인다. 정제염 89.75%, 아질산염 6.25%, 질산염 4%로 이루어져 있다. 보통의 소금과 혼동해 먹는 걸 막기 위해 분홍색 물을 들여 ‘분홍 소금(히말라야 암염이 아니다)’으로도 불린다. 

페퍼로니 등 짭조름한 살라미는 빵을 곁들여 먹기에 좋다. 게티이미지뱅크

1. 고기를 비계까지 포함해 굵게 깍뚝 썰어 한 켜로 쟁반이나 접시에 담아 냉동실에 30분 둔다. 겉면만 딱딱해져 훨씬 잘 갈린다. 

2. 민서(Mincer)나 푸드프로세서로 고기를 굵게 간다. 도구가 없다면 정육점에서 갈아올 수 있다. 다만 갈아 파는 고기는 부위도 지방의 비율도 확실하지 않으므로(원래는 표기되어 팔려야 한다), 덩어리를 사서 갈아 온다.

3. 간 고기를 넉넉한 볼에 담아 나머지 재료를 더해 잘 버무린다. 날고기 및 지방을 다루므로 웬만하면 장갑을 낀다. 밀착되는 조리용 니트릴 고무 장갑을 권한다.

4. 껍질을 준비한다. 동물의 내장일 경우 염장된 상태로 팔리는데, 필요한 만큼만 잘라낸 뒤 흐르는 찬물에 소금을 완전히 걷어내고 찬물에 30분 불린다. 

5. 불린 껍질을 건져 여름철 장난하듯 한 쪽을 수도꼭지에 대고 반대쪽을 막은 뒤 물을 틀어 흘려 넣는다. 껍질 안쪽의 소금기를 말끔히 걷어내는 한편 찢어지지 않았는지 점검할 수 있다. 찢어진 지점은 속을 채우면 터지므로 잘라낸다. 

6. 볼에 물과 식초(물 250㎖에 식초 1큰술 비율)를 담아 껍질을 담근다. 껍질이 부드러워질 뿐만 아니라 투명해져 속을 채우면 더 보기 좋아진다.

7. 속이 다 준비되면 6의 껍질을 건져 식초기를 씻어내고 종이행주 등으로 물기를 말끔히 걷어낸다. 깔대기를 한쪽 끝에 달아 속을 최대한 빽빽하게 채워 넣고 20~30㎝ 간격으로 조리용 실로 묶은 뒤 잘라낸다. 반대쪽 끝도 실로 묶어주면 소시지의 모양을 갖춘다. 베란다나 다용도실에 6~8주 걸어 말린다. 말린 뒤에는 플라스틱 랩으로 싸서 냉장고에 몇 달은 두고 먹을 수 있다. 

오그라드는 페퍼로니의 사연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로페즈얼트가 과학적 고찰을 글로 정리해 인터넷에 올리자 영국 옥스포드대에서 얇은 물체의 변형을 연구하는 친구가 화답을 한 것이다. 정확하게 어떤 과정을 거쳐 페퍼로니가 오그라드는지 부위에 따른 온도 변화까지 한꺼번에 보여주는 시뮬레이션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린 것이다. 어쩌면 한없이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것 같아 보이기도 하는 고찰의 과정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그래도 과학이 바꾼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조리를 오롯이 정서의 매개체 혹은 산물이라 여기는데 아주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도 조리는 물리 및 화학적 변화가 이끄는 상태 변화를 통해 문제, 즉 배고픔 및 맛의 욕구를 해결해주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먹고 살기 바쁜 현실에 대체 왜 피자에 얹은 페퍼로니의 오그라듦 같은 걸 고민하느냐 회의할 수 있지만, 뒤집어 보면 그런 이들이 있기에 우리 대부분은 배달 피자를 받아 큰 고민 없이 먹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고기의 다양한 부위를 각종 재료들과 함께 반죽해 소금에 절이는 가공육은 맛의 지평을 넓힌다. 게티이미지뱅크
 ◇다양한 이탈리아 가공육 세계 

이탈리아에서 살라미(Salami)는 페퍼로니의 조상격인 소시지를 의미하고, 가공육 전체는 살루미(Salumi)라 부른다. 한 자만 빼놓고 철자가 비슷하니 헛갈리기 쉬운데 살라미가 살루미의 한 종류다. 그렇다면 살라미 외의 살루미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일단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생 햄 프로슈토가 있다. 돼지의 뒷다리 즉 햄을 염장에 말리는 공정만으로 만든다. 그 밖에도 원조 카르보나라를 만들 때 꼭 써야 한다는 구안찰레(돼지 볼살을 염장해 만든다), 그 대체품으로 많이 쓰는 이탈리아식 베이컨(삼겹살) 판체타 등이 있다.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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