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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치우 홍콩 구의원이 3일 타이쿠 지역의 한 쇼핑몰에서 흉기를 휘두르던 친중 진영 남성을 제지하던 중 귀를 물어 뜯겨 피를 흘리며 응급 처치를 받고 있다. AP 연합뉴스

22주째로 접어든 홍콩 반정부 시위가 피아(彼我) 구분마저 사라진 아비규환으로 치닫고 있다. 경찰과 소방관이 삿대질하며 언성을 높이는가 하면, 시민들은 친중과 반중으로 나뉘어 칼을 휘두르고 시설물을 파괴하면서 적개심을 표출하는 데 여념이 없다. 복면금지법 이후 경찰이 진압 수위를 높여 체포된 시민이 3,000명을 넘어서자, 이에 밀릴세라 시위대가 다시 폭력으로 맞서면서 유혈사태가 끊이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상황이다.

지난 2일 저녁 홍콩 도심 센트럴 시위에서는 홍콩 경찰과 소방관이 맞붙어 막말을 퍼붓고 몸싸움 직전까지 가는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경찰은 당초 시위대가 공격할 경우 일단 방어자세를 취했다가 반격하는 방식으로 대처해왔지만, 이날은 처음부터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쏘며 대열을 흩뜨리고 검거에 주력하는 내용으로 진압 매뉴얼을 공세적으로 바꿨다. 지난달 5일 복면금지법 시행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서는 시위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경찰과 소방관의 동선이 엉켰다. 시위대가 던진 화염병의 불을 끄러 출동한 소방차와 대원들을 향해 경찰이 최루액을 쏜 것이다. 경찰과 시위대 사이에 소방관들이 끼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소방관들은 경찰을 향해 거칠게 항의했고, 경찰은 정당한 임무 수행이라고 맞서며 한동안 실랑이가 오갔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전했다. 한때 인터넷에서는 “무장 경찰들이 소방관을 포위해 밀치며 몸싸움을 벌였다”는 소문이 확산됐다. 양측은 3일 기자회견을 통해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다’며 협조를 약속했지만, 끝없는 시위에 심신이 지친 터라 앙금이 쉽게 가라앉을지는 미지수다.

친중 진영의 ‘백색 테러’는 ‘묻지마 테러’로 변질돼 시민들의 화를 돋우고 있다. 3일 쇼핑몰에서 한 남성이 흉기를 휘둘러 일가족 2명이 중태에 빠진 것과 관련, 제임스 토 민주당 의원은 4일 SCMP에 “의도적으로 시민들을 공격한 사건”이라고 했고, 제레미 탐 의원은 “개인의 일탈로만 보기는 어렵다”고 우려했다. 지난 7월 21일 위안랑역에서 흰색 셔츠 차림의 괴한들이 귀갓길 시위대를 무차별 폭행한 백색 테러 이후 주로 시위주도단체 대표들이 피습을 당했지만, 이처럼 다시 일반인들을 향한 무차별 공격이 가해지면서 시민의 안전이 사방에서 위협받는 극도의 긴장 상태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그간 쇼핑몰은 거리와 달리 인간 띠를 잇고 노래를 부르며 평화적으로 시위를 하던 곳이라 시민들의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홍콩지하철공사(MTR)는 주요 역에 철문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4일 밝혔다. 지난달 13일 하루에만 시위대가 85개 철도역과 57개 경전철역을 습격해 800개의 자동발매기와 900개의 감시카메라, 100개의 에스컬레이터를 파괴하는 등 지하철 역사는 시위 때마다 최우선 표적으로 아수라장이 되곤 했다. 하지만 시민의 발인 지하철이 시민의 접근을 차단하는 요새로 바뀐다면 시위를 더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편, 명보 등 현지 언론은 6월 9일 시위가 본격화한 이후 지난달 말까지 체포자 수가 3,007명으로 집계됐다고 4일 전했다. 하루 평균 15명꼴이던 체포 인원은 지난달 5일 복면 금지법 시행 전후로 두 배 이상 늘어 하루 35명에 달하는 실정이다. 경찰은 이중 500여명을 기소했다. 지난 주말 시위에서는 무려 200여명이 경찰에 체포돼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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