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자퇴하고 장애동생과 사는 ‘둘째 언니’가 정의당에 가입한 이유는

입력
2019.10.30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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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장혜영씨 “정치에 지쳐 정치를 시작한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와 ‘유튜브’로 입당 소식 알려

영화감독 장혜영씨가 29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심상정 정의당 대표와 함께 정의당 입당 소식을 알리고 있다. 유튜브 '생각 많은 둘째 언니' 캡처
영화감독 장혜영씨가 29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심상정 정의당 대표와 함께 정의당 입당 소식을 알리고 있다. 유튜브 '생각 많은 둘째 언니' 캡처

2년 3개월째 한 살 터울의 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둘째 언니’가 30일 정의당에 입당했다. 연세대를 자퇴하고 중증 발달장애 동생 혜정씨와 살면서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이 되면’을 찍은 장혜영(32)씨다. ‘생각 많은 둘째 언니’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기도 한 장씨는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입당 소식을 알렸다.

장씨는 이날 정의당이 공개한 입당의 변에서 자신이 정치를 시작하는 이유를 “지쳤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우리에게 지금 반드시 필요한 변화를 만드는 일을 주저하는 지금의 정치에, 언제까지나 신문고만 두드릴 뿐 결정에는 참여할 수 없는 정치에, 호소하고 외치고 기다리고 실망하는 정치, 약자에게 ‘나중에’를 말하는 정치, 약속을 어기고도 사과는커녕 모른 척만 하는 정치에 지쳤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장씨는 또 “죽어라 노력해서 나만 겨우 살아남는 미래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무사히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가는 미래를 갖고 싶다”며 “가난하고, 병들고, 장애가 있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평등하게 보장되는 미래를 갖고 싶다. 그런 미래를 가질 수만 있다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누구나 평등하게 존엄한 삶을 누리는 미래를 만드는 사람이 오직 저여야만 할 이유는 없지만 제가 아니어야 할 이유도 없기에 저는 오늘부터 정의당에서 정치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히딩크 감독의 팬인 혜정(왼쪽)씨는 영화에서 “네덜란드, 네덜란드” 노래를 부른다. 이달 초 자매는 드디어 네덜란드 여행을 다녀왔다. 동생이 17년 간 살았던 야산 꼭대기의 빨간 벽돌 건물을 세상의 전부라고 여길까 봐 장혜영 감독은 틈 나면 함께 여행을 한다. 사진은 ‘어른이 되면’의 한 장면. 시네마달 제공
히딩크 감독의 팬인 혜정(왼쪽)씨는 영화에서 “네덜란드, 네덜란드” 노래를 부른다. 이달 초 자매는 드디어 네덜란드 여행을 다녀왔다. 동생이 17년 간 살았던 야산 꼭대기의 빨간 벽돌 건물을 세상의 전부라고 여길까 봐 장혜영 감독은 틈 나면 함께 여행을 한다. 사진은 ‘어른이 되면’의 한 장면. 시네마달 제공

장씨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연세대에 다니던 2011년이었다. 학내에 ‘이별 선언문’이란 대자보를 써 붙이고 공개 자퇴하면서 서울대 유윤종씨, 고려대 김예슬씨와 함께 ‘SKY 자퇴생’으로 언론에 오르내렸다. 이후 그는 산골에 있는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지내던 동생의 자립과 동거기를 다큐멘터리 영화와 유튜브 영상, 책으로 만들었고 사회에 ‘장애인 탈시설’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장씨는 이날 “이제 막 손에 쥔 동생과의 평범한 행복을 잃어버리는 것이 두렵다”면서도 “하지만 가장 두려운 것은 우리에게 미래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장씨의 정치 입문은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찜’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심 대표는 전날 장씨의 유튜브 채널에 직접 출연해 “제가 장 감독을 정의당에 찜해 가려고 왔다. 모시고 가려고 왔다”고 밝혔다. 장씨는 “얼마 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안녕하세요, 심상정입니다'라고 하더라”며 “그 계기로 만나보니 '정의당에 와 사회를 바꾸는 일을 함께하면 좋겠다'는 말씀을 주셨다”고 전했다. 정치권에서는 보통 외부 인사를 영입할 때 국회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갖지만, 장씨의 경우 “제 방식대로 하겠다”면서 유튜브 방송을 선택했다.

정의당은 김조광수 감독과 권영국 변호사에 이어 이날 장씨를 영입하면서 본격적인 총선 행보에 나섰다. 향후 외부인사 영입에 주력하며 총선 분위기를 띄우겠다는 방침이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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