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오렌지색이 바레인과 카타르가 영유권 다툼을 벌여오던 하와르 군도. 2001년 ICJ판결에 따라 바레인의 영토가 되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페르시아만 서쪽에 위치한 하와르 군도는 총면적 52㎢의 작은 섬 무리다. 석유 등 천연자원의 보고이자 홍학, 붉은부리 갈매기, 바다거북 등 다양한 생물의 터전이다. 하와르 군도가 풍부한 천연자원에도 불구하고 개발되지 않은 채 아름다운 자연을 유지한 배경에는 바레인과 카타르 간의 조용한 영토분쟁이 있다. 서로를 견제하느라 해양경비대와 군대가 지키고 둘러싼 섬에서 다양한 동식물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와르 군도는 지도 상에서 카타르 영토로 보일 만큼 카타르에 근접해 있다. 카타르 북서쪽에서 불과 1.9㎞ 떨어져 있다. 그러나 현재 하와르 군도의 주인은 20㎞ 거리에 있는 바레인이다. 바레인과 카타르가 긴 다툼을 벌여오다 2001년 국제사법재판소(ICJ) 판결에 따라 바레인의 영토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갈등의 씨앗은 19세기 영국의 페르시아만 일대 영향력 확장에 있다. 해적을 물리치면서 영향력을 키워간 영국은 당초 이 곳을 통치하던 부족장들과 여러 협정을 맺는다. 어떤 협정도 구체적으로 영유권을 특정하지 않았던 까닭에 바레인과 카타르 모두 하와르 군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게 된다.

크고 작은 다툼이 계속되면서 영국이 중재에 나섰고, 1971년 영국이 페르시아만에서 물러나면서 아랍 부족 국가들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중재를 시도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특히 1986년 바레인이 하와르 군도에 인접한 인공 섬을 건설하면서 상황은 급격히 악화됐다. 전쟁 발발 직전까지 이르렀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중재로 봉합되기도 했다. 이에 바레인은 앞서 1981년 자국과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쿠웨이트 등이 맺은 걸프협력회의(GCC)를 통한 분쟁 해결을 원했지만 카타르는 이를 거부했다. 결국 1991년 카타르가 이 문제를 ICJ에 제소하면서 10년여의 긴 법적 공방으로 이어졌다.

바레인은 자국이 하와르 군도에서 줄곧 주권을 행사해 왔다고 주장했다. ICJ 법적 공방 당시 바레인이 제출한 증거에는 하와르 군도 주민들이 바레인 본토를 자유롭게 오간 기록, 체포된 하와르 섬 주민이 바레인 법정에 출석한 기록, 하와르 주민들이 바레인에서 잠수면허를 받은 기록 등이 담겼다. 그러나 카타르는 이에 대해 바레인의 “불법적인 점령”이었으며 자국은 계속해서 항의를 해 왔다고 주장했다. 또, ‘지리적 인접성’을 근거로 영유권 주장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2000년 공개 법정에서는 바레인이 “카타르가 제출한 협정 관련 서류는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2001년 ICJ는 하와르 섬에 대해 바레인의 손을 들어줬다. 대신 바레인이 영유권을 주장해 온 카타르 본토의 주바라 지역에 대해서는 카타르의 영유권을 확인해 주었다. 바레인이 주장한 실효 지배 증거를 대부분 인정한 것이다. 또, 하와르 군도가 카타르와 인접하기는 하나 사람이 거주하는 섬에 대해서는 지리적 인접성과는 관계가 없다는 점도 판결의 근거로 제시됐다. 이후 바레인이 호텔과 항구를 건설하면서 현재 하와르 군도는 페르시아만의 주요 관광지로 자리매김했다.

이미령 인턴기자

web_cdn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