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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잉원 대만 총통. AP 뉴시스

“받아들일 수 없다”, “당장 데려가라”

홍콩 사태를 촉발한 찬퉁카이(陳同佳ㆍ20)가 돌연 자수를 선언하면서 대만과 중국의 상황이 뒤바뀌었다. 그간 홍콩 시위 지지 여론을 주도하며 공세를 펴던 대만 정부는 살인 용의자 신병 인도를 거부해 수세에 몰리는 반면,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의 독립 노선이 못마땅한 중국으로서는 홍콩을 부추겨 대만을 압박할 호재다. 지지율 고공행진으로 상대 후보를 압도하고 있는 차이 총통의 내년 1월 대선 가도에 복병을 만났다.

환구시보 등 중국 매체는 21일 “도피 중인 수배범이 원하는데도 사법처리에 응하지 않는 건 대만이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왔다는 방증”이라며 “차이 총통은 대체 무엇이 두려운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앞서 19일 홍콩 정부는 “찬 씨가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에게 서한을 보냈다”며 “대만으로 가서 자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공개했다.

찬 씨가 지난해 2월 대만에서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홍콩으로 도망치면서 범죄인 인도법(송환법)을 추진하는 빌미가 됐다. 이후 민주화 시위로 확산돼 홍콩에서는 20주째 시민들과 경찰의 충돌이 반복되고 있다. 그는 홍콩에서 절도 등의 혐의로 29개월의 징역을 선고받아 감형을 통해 23일 출소할 예정이다.

살인 용의자의 깜짝 선언에 대만은 곤혹스러운 처지다. 20일 중앙통신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차이 총통은 “홍콩과의 사법공조가 우선”이라며 용의자 인도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중국 담당 부처인 대륙위원회도 “대만에 입국하려면 홍콩이 먼저 살인죄로 기소해야 한다”며 “범죄 증명서를 제출하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홍콩은 속지주의를 택하고 있어 대만에서 벌어진 범행에 대해 처벌할 수 없다. 대만 정부가 찬 씨의 엄중한 사법처리를 거듭 촉구해온 것에 비춰 군색한 대목이다.

대만 내부에서도 비판론이 일고 있다. 마잉주(馬英九) 전 총통은 “정부가 흉악범을 응징할 책임을 버리고 정치적 잇속을 챙기려 인권을 포기한다”면서 “해외로 도망친 범죄자를 송환하지 않고 해당국에서 죄목을 밝히라는 건 대체 무슨 소리냐”고 따져 물었다. 대만이 찬 씨를 받아들여 사법처리에 나설 경우 홍콩 시위의 최초 기폭제가 사라지기 때문에 그동안 홍콩 사태에 편승해 ‘중국 때리기’로 입지를 넓혀온 차이 총통의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6월 홍콩 시위가 본격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차이 총통의 재선 전망은 불투명했지만 7월 이후 시위가 격화하고 대만의 반중국 정서가 팽배하면서 지지율이 40~50%로 급등해 상대 후보를 10%포인트 이상 여유 있게 앞서고 있는 상태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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