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한미동맹은 일방적 시혜인가?

입력
2019.10.22 04:40
수정
2019.10.22 11:12
31면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18일 오후 서울 중구 주한 미국대사관저에서 방위비분담금 협상 관련 기습농성을 하다 담벼락을 넘고 있다. 뉴시스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18일 오후 서울 중구 주한 미국대사관저에서 방위비분담금 협상 관련 기습농성을 하다 담벼락을 넘고 있다. 뉴시스

지난 18일 일군의 대학생들이 주한 미국 대사관저에 난입했다. “주한 미국 대사는 한국을 떠나라”며 미국의 방위비 분담 증액 요구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주한 대사관저에 학생들이 난입한 것은 절대 잘한 일이 아니다. 국가의 외교사절 보호 의무는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한발짝 떨어져 사태의 큰 그림을 보면, 이는 철없는 몇몇 젊은이들의 치기 어린 행동만으로 볼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지난 2년반 동안 잘못된 방향으로 전개되어온 한미관계가 파열음을 내기 시작하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

사태의 근본 책임은 미국, 특히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차례에 걸쳐 동맹이란, 미국이 주는 ‘일방적 시혜’라는 인식을 보여 왔다. 두 달 전에는 공개적으로 “우리가 (한미동맹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했다. 자기 지지자들 앞에서는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동맹에 대한 완전히 잘못된 인식이다. 동맹은 일방적 시혜가 아니다. 한미동맹은 한미 양국 공동의 이익에 기초하고 있다.

주한미군이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주둔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오로지 한국만을 위한 것인가?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한국에 사는 16만 미국인도 위기에 처한다. 미국이 입을 경제적 손실도 막대하다. 2018년 한미 교역 규모는 1,316억달러다. 미국은 한국의 2대 교역국, 한국은 미국의 6대 교역국이다. 작년에 우리가 수입한 미국 상품이 589억달러, 2017년 우리가 수입한 미국 서비스는 300억달러다.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하면 미국인이 한국에 판매하는 연간 약 100조원의 상품과 서비스 판로가 막힌다. 그래도 미국 일자리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까?

한반도 위기는 곧 동북아의 위기다. 만약 미국이 동아시아 세력전이에 수수방관한다면 결국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는 세력은 나아가 미국에 도전할 것이다. 과거 미국과 대결했던 독일, 일본, 소련이 모두 그런 전철을 밟았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지키는 것은 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자기들의 거대한 전략적 이익이 걸려 있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동맹국을 헌신짝 버리듯 하는 언사를 일삼고 있다. 미국의 지도자가 동맹을 단기적 경제관계로 환원하는데 왜 우리는 장기적 신뢰로 보답해야 하나?

우리는 작년 GDP의 2.6%를 군사비로 지출했다. 미군이 주둔하는 독일은 1.2%, 일본은 0.9%에 불과하다. 작년 한국의 무기 수입액은 13억달러로 세계 7위, 미국의 동맹국들 중에는 3위다. 상당액이 미국 무기 수입에 사용됐다.

한미 방위비협상 때마다 정부는 ‘용미론’(用美論)을 내세운다. 방위비를 더 분담해도 동맹에서 얻는 이득이 더 많으니 괜찮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트럼프의 요구는 ‘용미론’을 무색케 한다. 2009년 우리가 분담한 방위비가 7600억원이었다. 작년에 1조원 남짓 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를 6조원으로 올리자면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게다가 현 정부 들어 도대체 미국에게서 얻은 것이 무엇인지 모호하다. 미국은 북핵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고, 개성공단 금강산 등 남북협력 재개에도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일갈등이 최악으로 치닫는데도 적극적인 중재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근거없는 용미론에 기대 국민들에게 환상을 심어 주려 해선 안된다. 오히려 미국에게 동맹이 공동의 이익에 기초한 것이라 당당히 말하고 미국이 그래도 무리한 요구를 거듭하면, 우리 안보는 우리 스스로 지킬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결연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새로 임명된 정은보 한미 방위비분담협상 대사가 23, 24일 양일간 호놀룰루에서 방위비분담협상 2차 회의를 갖는다. 우리 협상팀의 결연한 의지와 각오가 필요한 때다.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ㆍ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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