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찰의 외교 공관 보호와 비상 상황 대응, 너무 허술하다

입력
2019.10.21 04:40
31면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회원들이 18일 주한 미국 대사관저에 난입해 농성을 벌이는 사건이 발생하자 서울지방경찰청이 대사관저 경비 병력을 대폭 보강했다. 오대근기자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회원들이 18일 주한 미국 대사관저에 난입해 농성을 벌이는 사건이 발생하자 서울지방경찰청이 대사관저 경비 병력을 대폭 보강했다. 오대근기자

주한 미국 대사관저에 집단 난입해 농성을 벌인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회원 7명에 대해 공동 주거침입 등 혐의로 20일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이들 회원 17명은 지난 18일 오후 2시 50분께 사다리를 이용해 서울 중구 덕수궁 옆 미 대사관저 담을 넘어 내부 마당에 진입했다. 이들은 ‘미군 지원금 5배 증액 요구 해리스는 이 땅을 떠나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방위비 분담금 인상에 반대한다고 외쳤다.

정치적 목적의 미 대사관저 난입은 1989년 전대협의 점거 농성 이후 30년 만이다. 사건 당시 관저에 해리 해리스 대사와 가족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폭력 사건 등이 발생했다면 외교 문제로 비화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주한 미 대사관은 즉시 발표한 성명을 통해 우리 정부가 모든 주한 외교공관 보호를 위한 노력을 강화해줄 것을 촉구했고, 미 국무부도 우려를 표명했다.

무엇보다 경찰의 허술하고도 미흡한 대응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시위대가 돌연 사다리를 설치하고 의무경찰 2명을 저지하는 사이 17명이 사다리를 타고 월담했다. 지원 요청을 받은 경찰이 출동할 때까지 30분 이상이 걸렸다. 사다리를 치울 경우 대학생들이 낙상할 수 있다는 이유로 경찰은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관저로 진입한 경찰은 남성 회원 6명을 즉시 체포했으나, 여성 회원 11명은 성추행 우려 때문에 여성 경찰관 도착 때까지 기다렸다. 이들이 모두 체포되는 데 1시간 이상이 걸렸고 그 사이 시위대는 시위 상황을 실시간 동영상으로 중계했다.

이번 미 대사관저 난입 사건을 단순히 대학생들의 치기와 열정으로 치부하기에는 외교적 파장이 심각해 보인다. 외교 공관에 대한 위해나 공격은 어떤 경우도 정당화할 수 없다. 대사관저는 우리 정부가 책임지고 보호해야 하는 외교 공관이다. 빈 국제협약에 따라 외교 공관과 관저는 불가침의 보호를 받게 되어 있다. 그런데도 시위대의 난입을 저지하지 못한 것은 정부의 큰 실책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22일 미 대사관 앞 시위 등 향후 진보단체의 시위가 줄줄이 예정돼 있다. 유사 사태가 재발하면 국제사회의 신뢰가 크게 추락할 수 있다. 경비 체계 개선 및 인원 보강 등 보완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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