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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뜬 이들을 추억합니다. 동시대를 살아 든든했고 또 내내 고마울 이들에게 주목합니다. ‘가만한’은 ‘움직임 따위가 그다지 드러나지 않을 만큼 조용하고 은은하다’는 뜻입니다. ‘가만한 당신’은 격주 월요일 <한국일보>에 연재됩니다.

콘라드 고린스키는 남미 가이아나의 아마존 오지에서 태어나 영국 런던서 생화학을 전공한 민족생물학자다. 그는 누구보다 먼저 소수 부족들이 지닌 생물지식의 약리적 가치에 주목했고, 유엔 종 다양성 협약이 체결되기 20년도 더 전부터 국제사회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그들의 자연과 지식재산을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그가 '생물 해적질'을 저지른 사실을 알게 되자 세상은 더 분노했다. 사진(왼쪽)은 2000년 가이아나 탐사 당시의 그. Scientific Exploration Society.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 사 미생물학자 아난다 차크라바티(Ananda Chakrabarty, 1938~)는 유전자 조작으로 ‘창조’한 원유 성분 분해 박테리아에 대한 특허를 1972년 미국 특허청에 출원했다. 하지만 유기 생명체는 특허권 심사 대상이 아니라고 특허청은 유권해석했다. 차크라바티는 특허청장(Sidney A. Diamond)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1심 법원은 특허청 판단을 존중했고, 항소법원은 차크라바티의 권리를 옹호했다. 1980년 6월 미 연방대법원은 5대 4로 차크라바티의 특허권 피심사권을 인정했다. 특허법이 명시한 조항은 없지만, 생명체(미생물 포함)라 하더라도 인간 노동과 기술로 새롭게 ‘제조(manufacture)’됐거나 ‘구성(composition)’됐다면 특허 심사의 대상이 된다는 판결이었다.(다이아몬드 vs. 차크라바티)

북미 백인이 원주민들에게서 땅을 가로챈 뒤 그 약탈을 정당화하는 데 동원한, 존 로크의 자연법철학에 근거한 소유권 개념, 즉 ‘자연은 모두의 공유물이지만, 인간이 노동력을 투입해 새롭고 유용한 가치를 창조하거나 발견하면 사유물이 된다’는 원칙이 차크라바티 소송에서도 그렇게 재확인됐다.

유기물 특허는 1873년 루이 파스퇴르가 균류 미생물인 맥주 효모로 미국 특허를 획득한 게 처음이지만, 100년 전의 그들은 DNA를 몰랐고 생명체(유전자)가 공학적 조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1980년 저 판결은 생물-유전 자원 독점 시대의 신호탄이었다. 옛 제국주의 군인과 상인들처럼 21세기의 자본은 과학자를 앞세워 식민지의 우림과 초원과 습원을 그야말로 체질하듯 훑고 다녔다. 그들이 찾고자 한 건 황금사원의 노다지가 아니라 ‘기적의 생약’이었다. 다국적 제약회사와 굴지의 식량ㆍ농업회사들이, 내로라하는 대학과 연구소들이 ‘약초의 마법사들(샤먼)’들을 찾아 다녔다. 1980년대 시작된 그 야단법석을 19세기의 골드러시에 빗대 ‘진 러시(Gene Rush, 유전자 러시)’라 부른다.

미 국립암연구소(NCI) 생화학자 데이비드 뉴먼 등의 2012년 논문에 따르면 1981년부터 2010년까지 30년간 나온 주목할 만한 신약의 약 46%가, 그렇게 채취한 생물자원을 통해 개발됐다. 기업과 과학자들은 큰돈을 벌었고 더러 명예도 얻었을 테지만, 3세계 소수부족들은 생존권과 정체성을 위협받고, 환경 및 토착종 다양성을 훼손당했다. 1세계 자유지상주의자나 실용주의자들은 결코 동의하지 않겠지만, 진 러시는 총ㆍ대포 대신 과학기술과 법률을 무기 삼은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적 수탈이었다.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유엔 지구환경회의가 ‘종다양성보존협약(CBD)’을 제정했다. 생물 종 다양성 보존과 생명 자원의 지속 가능한 이용, 공정하고 투명한 이익 분배가 협약의 골자였다. 이후 진 러시는 원칙적으로 계약에 근거한 ‘생물 탐사(BioProspecting)’가 됐다. 하지만 영국의 사회활동가 패트 무니(Pat Mooney)가 93년 명명했듯 ‘생물 해적질(bio-pirating)’은 결코 근절되지 않았다. 지금도 끊이지 않는 분쟁과 소송이 그 방증이다. 남미 과라니(Guarani)족의 천연 감미료 스테비아(Stevia)로 맛을 내온 코카콜라사는 국제NGO들의 2017년 보상 청원에도 꿈쩍하지 않고 있다. 스위스 바이오 농업회사 ‘신젠타’사는 폴라보놀 성분을 다량 함유한 특정 품종의 토마토에 대해 2015년 유럽 특허를 땄지만, 국제 경제 인권 환경 정의 감시단체인 ‘Public Eyes’에 따르면, 해당 토마토 품종은 ‘발명(invention)’된 게 아니라 페루와 칠레 등지 토마토 품종의 여러 자연 교배종 중 하나다. 두 예에서 보듯 탐사와 해적질은 경계가 뚜렷하지 않고 법ㆍ규약 등의 기준도 무척 복잡하고 생명공학만큼이나 까다롭다. 21세기 생물해적, 혹은 바이오 제국주의자들은 과학자와 함께 법률전문가들을 전위에 둔다.

게다가 CBD는 생물자원 이용 계약의 주체로 이해당사자인 소수부족이 아니라 중앙 정부를 지정했다. 하지만 국가가 소수부족의 권리를 살뜰히 챙겨줄 리 없다. 오히려 근대 국민국가는 거의 예외 없이 소수집단에 가혹했다. CBD 협약 당사국들이 2010년 일본 나고야에 모여 소수부족에게도 일정한 혜택이 돌아가도록 실행규칙을 보강했지만, 로열티 덕에 살만해졌다는 부족은, 알려진 바 아직 단 하나도 없다.(theconversation.com)

고린스키는 아마존 밀림은 거대한 도서관이며 숲의 부족들은 탁월한 사서들이라고 말하곤 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진 러시가 시작된 1981년 이래 30년간 인류는 주목할 만한 신약의 46%를 동식물에서 추출한 유효성분으로 만들어냈다. pixabay

남미 가이아나 태생의 영국인 생화학자 콘라드 고린스키(Conrad Gorinsky)는 ‘진 러시’ 훨씬 이전인 1960년대부터 아마존 원주민들이 지닌 생물지식의 가치에 주목한 ‘민족생물학자(Ethnobiologist)’다. 그는 그 지식이 부족들의 물질적 삶과 자연 환경 보전에 도움이 될 수 있고, 그렇게 돼야 한다고 선구적으로 주장한 소수부족 권익운동가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는 80년대 말 진 러시 와중에 스스로 원주민 부족과의 생물자원 특허 시비에 휘말려 호된 비난을 샀고, 동료들로부터도 외면당했다. 물론 그는 마지막까지 선의와 결백을 주장하며 억울해했다. 콘라드 고린스키가 8월 18일 비강암과 폐렴 합병증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고린스키는 1936년 3월 7일, 남미 아마존 북쪽 가장자리인 가아이나(당시 영국령) 루푸누니(Rupununi)에서 태어났다. 폴란드 출신 아버지는 금광을 찾아 남미로 건너갔다가 정착한 이민자였고, 어머니는 소수부족 아토라드(Atorad)족 가이아나인이었다. 고린스키가 태어날 무렵 부부는 가이아나 수도 조지타운에서 북쪽으로 약 300마일 떨어진, 당시엔 루푸누니 강 물길로 근 한 달을 가야 닿을 수 있던 굿 호프(Good Hope)라는 오지마을에서 소를 키우며 살았다. 그 마을은 와피샤나(Wapishana) 부족의 영역이었다.

어머니의 아토라드 부족은 지구인 3분의 1이 감염돼 약 5,000만명이 숨졌다는 1918년 조류독감 와중에 사실상 소멸했고, 남은 일부가 와피샤나 족에 얹혀살았다. 고린스키는 와피샤나의 언어와 문화를 익히며 성장했다.

그는 조지타운의 예수회 학교를 거쳐 17세에 영국으로 건너가 옥스퍼드대와 런던대 버벡칼리지에서 생물학과 화학을 전공했고, 런던 바르돌로뮤 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딴 뒤 모교에서 강의했다. 그의 학위 논문 주제는 어릴 적 자신이 경험한 와피샤나 부족 약용식물들의 약성(藥性)에 관한 연구였다. 그는 처음서부터 ‘민족생물학’ 분야의 주목받는 젊은 학자였다. 당시 영국의 모험가들이 몇 달씩 탐험이랍시고 다녀온 뒤 값진 이력으로 자랑 삼던 그 아마존 정글에서 태어나 성장한, 희소한 백인(혼혈) ‘아마조니언’이었기 때문이었다.

고린스키는 1968년 영국 왕립지리학회가 BBC와 함께 꾸린 오리노코강 유역 아마존 탐사대에, 과학자 겸 지역 언어ㆍ풍습 전문가로 합류했다. 그리고 이듬해, 탐사대에서 만난 동갑내기 탐험가 겸 환경운동가 로빈 핸버리 테니슨(Robin Hanbury-Tenison)과 함께 ‘원주민 기금(Primitive Peoples Fund)’을 설립했다. 소수부족 생존권과 권익을 위해 활동하는 독보적인 국제 NGO ‘서바이벌 인터내셔널(Survival International)’의 전신이었다. 영국 매체 ‘선데이 타임스’가 40~60년대 브라질 군사정권이 자행한 소수부족 집단 학살 실태에 대한 브라질 검찰의 67년 조사 보고서(Figueiredo Report)를 기사화한 게 69년 그해였다.

가이아나는 북쪽으로 대서양, 서쪽으로 고원 산악, 남쪽으론 지구 열대우림 면적의 18%에 달하는 밀림과 광활한 초원을 지닌 나라다. 그 숲과 초원의 9개 원주민 소수 부족은 저마다 수천 년 검증해온 '마법의 풀'들을 안다.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가이아나 국화인 자이언트 수련, 수도 남쪽의 카이에테우르 폭포, 루푸누니 강 유역의 사바나 초원. guyanatourism.com

69년 고린스키는 남미 식생 전문가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집필에 참여했다. 그는 ‘남미 인디언’ 항목에 “그들은 자신들의 환경에 관한 한 이론의 여지 없는 권위자들”이라고 썼다. 2006년 인터뷰에서 그는 “당시부터 나는 원주민 지식의 경제적 가치가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주장을 공개적으로 한 건 아마 내가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web.williams.edu) 그는 “정글의 화학물질(chemicals) 대부분은 아직 정글 바깥의 과학자들에겐 미지의 물질”이라며 “숲이 거대한 도서관이라면 숲의 사람들은 책에 정통한 사서들”이라고도 말했다. 숲에 불을 질러 농지로 전용하는 식의 개발은 그에겐, 환경 문제와 별개로 “도서관을 불태우고 사서들을 학살하는 짓”이었고, 수천 년 검증된 한 세계의 귀중한 지식을 송두리째 없애는 짓이었다.

그의 고향 부족인 와피샤나(Wapishana)족은 물론이고, 독액 ‘큐라레(curare)’의 권위자들인 이웃 부족 마쿠시(Macusi)족 등 아마존의 여러 부족들이 고린스키를 신뢰했고, 그의 탐사팀을 안내하며 자신들의 지식을 아낌없이 나누었다고 한다. 고린스키도 ‘SI’외에 구호재단 ‘Earthlife’나 ‘민족생물학재단(Foundation for Ethnobilogy)’등의 설립 및 활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며 그들을 직간접적으로 도왔다.

그 무렵 그는 옥스퍼드대 그린칼리지(현 그린템플턴 칼리지)에 개인 연구실을 둔 전임 연구원(펠로)이었다. 당시 그의 꿈은 아마존 자연에 대한 거대 약전을 만드는 거였고, 샤먼들이 강의하는 민족생물학 대학을 설립하기 위해 브라질 정부와 협의하기도 했다. 영국 하원 과학위원회 증언대에 서서 정글 약용식물의 지식 정보를 대가로 남미 국가 부채를 상계해주는, 고린스키식 환경 스와프(Debt for Nature, 원래는 환경보전을 전제로 국가 부채를 탕감해주는 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고린스키가 가아이나에만 서식한다는 녹심목(greenheart tree)이란 나무 열매에서 해열ㆍ지혈의 유효 성분을 추출한 건 60, 70년대 바르돌로뮤 대학 바츠병원 박사과정 때였다. 고향 강 이름을 붙여 ‘루푸누닌(rupununine)이라 명명한 그 성분에 대해 그는 80년대 말 미국과 유럽 특허를 획득했다. 심장병 등에 효능이 있는 일종의 신경독성물질 ‘쿠아니올(cuaniol)’도 그가 쿠나니(cunani)라는 아마존 토종 관목에서 추출해 80년대 특허를 획득한 알칼로이드다. 그는 와피샤나족 여성들이 녹심목 열매(Tipir)를 생리 조절 및 피임 용도로 먹고, 껍질 수액으로 말라리아 열을 다스리는 걸 보며 자랐다. 쿠나니 잎은 천혜의 낚시 도구였다. 으깬 잎을 물에 뿌려두면 입질하던 물고기들이 흥분해서 물 밖으로 튀어나오는데, 금세 분해돼 물을 오염시키지도 않고 인체에도 무해했다. 신종 과학ㆍ기술에 초점을 맞춰 종 다양성 보존 및 소수민족 권익을 챙기는 단체인 ‘ETC그룹’ 자료에 따르면, 동식물을 무작위로 선택해 거기서 유효 물질을 추출해낼 확률은 1만분의 1에 불과하지만 소수부족이 처방하는 동식물에서 유효 성분을 추출할 확률은 약 50%에 이른다. 고린스키의 연구도 사실 혼자 한 게 아니었고, 특허도 그만의 것이 아니었다.

고린스키가 자기 특허들을 팔기 위해 제약회사들과 접촉하던 무렵인 1990년 초, 와피샤나족이 그 일을 알게 됐다. 그가 특허를 출원ㆍ획득하면서 사전 동의는커녕 사후 통보조차 하지 않은 사실도 알려졌다. 전형적인 ‘생물해적질’이었다. 부족들은 그를 배신자라고 몰아세우며 특허 철회를 요구했고, 국제 사회는 위선자라고 손가락질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현지 조사차 체류 중이던 그를 “식민지 과학자”라며 24시간 내 출국을 명령했다. 평판과 후원금에 의존하는 국제 인권ㆍ환경단체들도 일제히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서바이벌 인터내셔널’도 마찬가지였다.

2000년 가디언 인터뷰에서 그는 “참 어렵다.(…) 와피샤냐족에게 어떻게 과학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들이 녹심목에 대한 독보적인 지식을 지닌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나무 자체가 그들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내 돈으로 나무 열매의 화학 구조를 분석하고 연구했다”고 말했고, 2006년 다른 인터뷰에서는 “나는 그들이, 그들 정부나 서구의 다국적 회사로부터 착취당하지 않고, 지식의 정당한 가치 인정받을 수 있도록 돕고자 했다. 그러자면 법적 권한(특허권)이 필요했다. 다른 누군가가 특허를 따버리면 나는 연구도 못하고 부족들도 지식재산권을 잃게 될 판이었다”고 말했다. 두 말은 의미도 뉘앙스도 현저히 달랐지만, 어쩌면 둘 다 그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너무 순진했고(naive) 사업적으로 미숙했다고, 라이벌 제약회사들과 일부 과학자들이 그와 와피샤나족을 이간질했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그도 와피샤나족도, 그 일로 아무런 경제적 보상을 얻지 못했다. 미국은 ‘생물탐사’에 가장 열정적인 만큼 CBD에 서명도 하지 않고 있다. 몬산토 같은 다국적 바이오ㆍ농업 회사들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미 국립암센터(NCI)의 경우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5만종이 넘는 동식물과 미생물 샘플을 확보해 연구 중이다. 인도인들의 대표적 향신료이자 상처 치료제인 강황의 특허권은 미시시피대학이 쥐고 있다. 고린스키의 특허는 미국 국내법상 법적 다툼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 그가 입바른 말로 명예 등 유ㆍ무형의 과실을 누려온 만큼 사회는 그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윤리적 기준을 요구했다. 하지만 냉정히 객관적으로 보자면, 그의 행태가 특별히 저질스럽진 않았다. 명예를 잃은 고린스키는 특허권 유지 비용을 미납함으로써 특허권도 스스로 포기했다.

2006년 인터뷰에서 고린스키는 “우림지역 정부들은 나 같은 이들이 자기네 일에 끼어드는 걸 싫어 한다. 유엔협약이 보장하고 서구 환경운동가들도 지지하는, 그들과 거대 제약회사들의 리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숲의 부족과 그들의 지식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망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런던대 재학 중 만난 결정학자(Crystallography) 비어트리스 울하우스(Beatrice Woolhouse)와 67년 결혼해 세 아이를 두고 해로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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