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트럼프 대선 국면에 들어가면 북한 변수 계속 신경… 북미 정상 곤궁한 상황에 일말 기대
[저작권 한국일보]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 등 대표단이 지난 5일 오후 6시36분(현지시간) 북미협상을 마친 뒤 스웨덴 스톡홀름의 북한대사관 앞에서 “실무협상은 결렬됐다고”고 선언문을 읽고 있다. 스톡홀름=박지연 기자

스웨덴 북미 실무협상이 결렬되면서 한반도 비핵화의 길은 험난한 여정임이 재확인됐다. 이후 북한은 거친 말을 연달아 쏟아내고 있다.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는 귀국길 베이징에서 추후 회담은 미국 측에 달려있다며 입장 변화를 압박했다. 미국이 준비가 안되면 끔찍한 사변이 벌어질 수 있다는 취지의 엄포를 놓기도 했다. 북한이 애초부터 결렬 수순을 상정하고 준비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70여년의 적대관계가 하루아침에 극복될 수 없음을 다시 일깨워주는 상황이다. 스톡홀름 현지에서 취재한 본보 기자와 워싱턴특파원, 정치부 외교안보팀이 카톡방에 모여 한반도 이슈를 짚어봤다.

광화문 불나방(불나방)=실무협상 전날 예비접촉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어요. 하지만 결과는 결렬이었죠. 현장에선 이런 결말의 조짐이 감지됐나요. 협상 시작 2시간 뒤쯤 김 대사가 대사관으로 복귀하기도 했는데.

빌리브란트 광장=정오쯤 북측이 협상장을 비운 시점부터 결렬 쪽에 더 무게가 실렸어요. 예상치 못한 시점에 북측 협상단을 태운 차량이 스웨덴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빠르게 협상장을 빠져나갔고, 오전 협상시간보다 '작전타임'이 더 길어지면서 관측은 결렬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김 대사의 확연한 표정변화도 눈에 띄었죠. 협상장으로 향할 때만 해도 전망을 묻는 취재진에게 “두고 봅시다”라며 밝은 표정으로 답했던 그는 오후 협상을 마치고 복귀할 때는 “좀 기다리십시오, 나와서 말씀드리겠습니다”라며 인상을 찌푸렸습니다. 돌아보면 협상을 앞두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한 ‘벼랑끝 전술’도 이번 결말의 복선이었던 것 같아요.

불나방=협상 종료 직후 곧바로 북한의 결렬 성명 발표가 이어졌죠. 취재진도 술렁였을 텐데.

빌리브란트 광장=취재진은 당초 북한대사관 주차장 바깥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도착한 김 대사가 안으로 들어간 직후 권정근 전 외무성 미국국장이 취재진에게 다가와 “기자회견을 대문 앞에서 할 예정”이라며 적극적으로 자리를 정돈했습니다. 3m 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잡았던 취재진이 대문 앞으로 한꺼번에 우르르 몰렸어요. 권 전 국장이 대문을 열어줄테니 너무 가까이 오지는 말라고 거듭 당부했을 정도였습니다.

불나방=결렬 사실이 전해진 뒤 청와대와 우리 정부 반응은 어땠나요.

판문점 메아리(메아리)=결렬도 시나리오 중 하나이긴 했겠지만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 하는 분위기였던 것 같습니다. “당장 실질 진전은 없었지만 협상이 시작됐다는 데 의미가 있고 대화 모멘텀이 유지되기를 기대한다”는 준비된 입장을 외교부가 6일 오전에 냈죠. 북핵 협상 소관 부서인 한반도평화교섭본부는 이후 극도로 신중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인 듯한데요. 이도훈 본부장이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최선희 당시 북한 외무성 부상이 만나도록 남북미 합숙 담판을 주도했던 올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준비 당시와는 딴판이죠.

불나방=우리 외교당국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메아리=북한이 우리를 상대해주지 않는 상황이니 미국을 설득하는 게 관건 아닌가 싶습니다. 시간이 얼마 없는데요. 올해가 가고 미국이 대선 국면에, 우리가 총선 국면에 진입하면 민주주의 국가의 국내정치에 협상이 휘둘릴 가능성이 커집니다. 북한이 자력갱생으로 버티며 다시 장고와 인내의 시간으로 들어갈 수 있죠. 핵 동결(핵 시설 가동 및 핵 물질 생산 중단)을 이번에 이끌어내지 못하고 불확실성도 줄이지 못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도 선거 국면에 북한 변수가 계속 신경 쓰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정부는 북미 정상의 곤궁한 형편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직로 피톤치드=북미 협상은 결렬 됐지만, 우리 정부는 아직 남아 있는 희망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아요. 북미 협상 결렬 직후인 7일 이도훈 본부장은 2박3일간 미국을 방문해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다키자키 시게키(瀧崎成樹)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과 협의를 가졌습니다. 향후 북미 대화의 진전을 위해 우리 정부도 기민하게 대응하겠다는 방침인데요. 다만 당장 2주 안에 다시 협상이 재개될 것인가에 대해선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저작권 한국일보] 북미 비핵화 협상 쟁점. 그래픽=신동준 기자

불나방=결렬 성명 뒤 비슷한 내용의 외무성 대변인 담화가 따라 나왔고, “끔찍한 사변” 같은 김 대사의 위협 발언도 전해졌죠. 대체 북한이 바라는 게 뭔가요. 새로운 계산법을 미국이 들고 나오지 않았다는 게 북한이 협상을 깬 이유 같은데.

메아리=연말까지 새 계산법을 마련해오라고 김정은 위원장이 언급한 게 올 4월이니 충분한 시간이었다는 게 북한 주장입니다. ‘지금은 너희가 움직일 차례’라는 게 대미 메시지의 핵심 같습니다. 비핵화 논의가 이뤄지려면 70년 적대한 탓에 사실상 제로(0) 상태인 북미 간 신뢰가 만들어지는 게 우선이고 그래서 자기들은 핵ㆍ미사일 시험을 중단하고 풍계리 핵 실험장도 폐쇄하고 6ㆍ25전쟁 때 전사한 미군 유해도 돌려주는 등 본격 협상 전 신뢰 구축 노력을 지난해 6월 싱가포르 합의 이후 줄곧 해 왔는데 미국은 무성의하게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게 북한의 불만이에요. 너희들은 장거리 핵 탄도 미사일을 쏘고 전략 무기들을 한반도에 보내고 대규모 군사연습도 하면서 그런 위협 요인을 제거하지도 않은 채 왜 우리에게만 무장해제를 요구하냐는 거죠.

불나방=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반응이 신중해 보입니다. 탄핵 위기인 데다 슬슬 비판도 나오고 있는데. 어쩌려는 심산일까요.

포토맥 명탐정=북한이 정말 협상판을 깨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 재개에 나선다면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매우 곤혹스러운 상황이 될 겁니다. 북한의 핵 미사일 실험 중단이 그나마 좀 내세워왔던 외교성과였으니까요. 그렇다고 북한의 떼쓰기에 밀려 영변 폐기 이상의 확실한 비핵화 조치 없이 제재 유예를 해주기도 어렵습니다. 탄핵 조사 탓에 공화당 의원들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섣부른 양보를 해주면 대북 문제에 강경한 당내 반발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거죠. 일단 미국으로선 최대한 북한을 협상 테이블에 앉혀 놓으면서 상황관리를 하려 할텐데 미중 무역 협상 추이를 지켜봐야 할 듯합니다. 스몰딜이든 빅딜이든 미중이 합의에 이르면 대북 공조도 일정 정도 살아날 수 있어서 중국을 지렛대로 북한이 협상판을 깨지 않도록 하는데 초점을 두지 않을까 싶습니다.

불나방=북한이 실제로 ICBM 시험발사를 재개할까요.

정릉 막걸리=김정은 위원장이 미국에 비핵화 협상 시한으로 제시한 ‘연말’까진 ICBM 시험발사 재개 카드를 뽑아들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미국 입장에서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ICBM은 일종의 ‘레드라인’입니다. 이미 최근 북한이 SLBM 발사로 레드라인 선을 밟았는데 여기에 추가로 ICBM까지 발사하면 트럼프 대통령도 초강경 대응으로 선회할 수 밖에 없겠죠. 게다가 중국과 러시아도 북한을 마냥 감싸고 돌기 어려워지죠. 결국 북한의 ICBM 재개 위협은 어디까지나 미국에 ‘새로운 셈법’을 강하게 압박하기 위한 ‘블러핑(엄포)’ 전략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 베데스다 소재 육군의료센터로 향하기에 앞서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기자들에게 얘기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참모들로부터 북한의 신형 잠수함 발사 미사일(SLBM) 개발에 대한 세부 보고를 받았으나 정작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미 시사주간지 타임이 브리핑에 참석했던 두 명의 미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워싱턴DC AP=연합뉴스

web_cdn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