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지난달 23일 파푸아 유혈 사태 이후 휴교했던 인도네시아 파푸아주 와메나의 중학교 학생들이 수업 재개 첫날인 지난 7일 인종과 종교는 달라도 서로 손을 맞대고 웃고 있다. 자카르타포스트 캡처

두 장의 사진이 있다. 모두 다른 인종끼리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이다. 피부색과 종교가 다른 중학생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서로 웃으며 손을 맞대고 있다. 방화로 인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마을을 벗어나는 것으로 보이는 한 가족은 호위를 받듯 피부색이 다른 이들의 손을 잡거나 껴안고 있다. 인종 차별이 촉발한 유혈 사태로 최소 33명이 숨지고 도시가 잿더미로 변한 인도네시아 파푸아주(州) 와메나에서 최근 촬영된 것들이다. 방화와 약탈, 폭동과 강경 진압 등 끔찍한 사진들로만 기록될 뻔한 거대한 비극 속에 움튼 작은 희망이다.

9일 자카르타포스트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파푸아 사태는 군경이 시위 주동자들을 체포하고 희생자들에 대한 진상 조사에 나서면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원주민과 이주민 합쳐 1만6,000명이 도시를 떠났고, 탈출 행렬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지만 남은 사람들은 차츰 일상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대규모 유혈 사태와 방화가 곳곳에서 벌어져 휴교령이 내려진 와메나의 19개 중고등학교는 2주 만인 7일부터 수업에 들어갔다. 다행히 교내에 불에 탄 곳은 없었다. 망가진 시설과 집기는 군경이 수리했다. 첫날 출석률은 10% 정도였다. 와메나주립학교의 경우 학생 947명 중 200명이, 교사 52명 중 34명이 등교했다. 이들은 정신적 충격을 치유하고 유대감을 다시 북돋기 위해 함께 놀이를 하고 춤을 췄다. 차차 웃음이 돌아왔다. 그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인종 차별로 촉발된 유혈 사태와 방화가 벌어진 지난달 23일 인도네시아 파푸아주 와메나 시내에서 원주민들이 이주민 가족의 손을 맞잡은 채 피신을 돕고 있다. 이주민 남성이 감사의 표시로 원주민을 껴안고 있다. 트위터 캡처

인종 간 증오의 광풍 속에도 인간애를 놓치지 않은 ‘참된 이웃’들의 존재도 차츰 알려지고 있다. 죽음의 위기에 처한 이주민 가족을 원주민이 손을 맞잡은 채로 피신시키고, 그게 고마워 원주민을 껴안은 이주민의 모습이 담긴 사진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따뜻한 반향을 일으켰다. 사태 당일 방화 현장에서 이주민 58가족을 도피시킨 원주민 청년, 이주민을 자신의 집에 숨긴 원주민 교사, 약탈자를 쫓아내며 이주민 소유의 상점을 지켰다는 원주민 점원의 얘기도 있다.

이번 사태는 두 달 전 동영상이 공개된 “원숭이”(경찰이 원주민 대학생에게) 발언과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채 지난달 초 퍼진 “원숭이(교사가 원주민 학생에게)” 소문이 맞물리면서 지난달 23일 와메나 지역에서 최악으로 치달았다. 대부분 이주민들의 생활 터전이 방화로 잿더미가 됐고, 그로 인해 숨진 사람도 많다. 그렇다고 원주민만 폭도라고 단정 짓기엔 복잡한 측면이 있다. 원주민 희생자도 많아서다. 실제 와메나 사태 희생자 33명 중 25명(아이 세 명 포함)은 이주민이지만 8명(아이 두 명 포함)은 원주민이다. 다른 지역에선 이주민들이 원주민 거처를 급습해 인명 피해를 내기도 했다.

지난달 23일 유혈 사태와 방화가 벌어진 인도네시아 파푸아주 와메나 시내에 최근 전력이 복구되고 있는 모습. 자카르타포스트 캡처

파푸아 원주민은 파푸아가 속한 뉴기니섬에 원래 살던 멜라네시아인으로 주로 기독교를 믿는다. 반면 이주민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대개 수하트로 독재 시절 동부 자바 등 인도네시아 본토라 할 수 있는 자바섬에서 정책적으로 옮겨진 이슬람교도들이다. 1969년 유엔 후원으로 치러진 주민 투표로 파푸아가 인도네시아에 통합된 이후 이주민들이 지역 정계와 상권, 광산 등을 장악하면서 원주민들은 차별과 상대적 빈곤에 시달렸다. 특히 본토에서 온 군경들이 원주민들을 반(反)정부 세력으로 몰아 폭언, 불법 구금, 고문 등 인간 이하 취급을 한 지 오래다. 국제 인권단체들이 이번 사태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면서, 뿌리 깊은 인종 차별과 공권력의 인권 유린 및 학대를 멈추라고 촉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강경 이슬람 단체들의 보복 선언 등 흉흉한 풍문이 떠도는 가운데, 인종은 달라도 같은 인간임을 깨닫고 실천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은 그나마 다행이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web_cdn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