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신상공개’ 고민 깊은 경찰

입력
2019.09.25 04:40
12면
구독
지난 19일 경기 수원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반기수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장이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관련 브리핑을 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고영권 기자
지난 19일 경기 수원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반기수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장이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관련 브리핑을 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고영권 기자

화성연쇄살인 유력 용의자 이춘재(56)의 신상이 공개될까.

이 사건을 재수사 중인 경기남부경찰청은 24일 이춘재의 신상 공개 문제를 두고 법리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신상 공개를 찬성하는 이들은 국민의 알 권리나 법 감정을 내세운다. 잔혹한 연쇄살인 범죄였고, 장기간 미제사건으로 남아 국민적 관심이 그 어느 것보다 높은 사건이다. 여기엔 처벌 심리도 작용한다. 공소시효가 완성돼 더 이상 법적 처벌을 가할 수 없다면, 신상 공개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이종훈 명지대 법대 교수는 “신상공개를 위한 법적 근거가 없다지만 자유와 권리가 안보나 질서유지, 공공복리 등을 위해 필요한 경우 제한될 수 있다는 헌법 제37조 2항에 근거해 신상공개를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7차 사건’ 당시 제작된 용의자 몽타주. 뉴스1
화성연쇄살인사건 ‘7차 사건’ 당시 제작된 용의자 몽타주. 뉴스1

반대론도 만만치 않다. 피의자 신상공개 여부는 일선 수사팀이 요청하면 관할 지방경찰청이 신상공개위원회를 소집, 특정강력범죄처벌법에 기반한 각 범죄별 체크리스트에 따른 평가작업을 거쳐 결정된다. 이 리스트에 미제사건 피의자에 대한 항목은 없다. 또 보통의 신상 공개는 구속영장 발부를 통해 법원이 한번 스크린한 사안에 대해 피의자를 호송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얼굴을 노출시키는 방법으로 이뤄져 왔다. 하지만 공소시효가 지난데다 기결수로 이미 수감 중인 이춘재에게 이 방법을 적용할 순 없다.

일각에서는 청주 처제 살인 사건으로 이춘재의 신상을 공개하자는 묘안(?)도 내놓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경기남부경찰청 측은 “그 사건을 수사했던 충북경찰청에서 논의할 문제”라고 밝혔지만, 충북경찰청 측은 “당시 수사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인데 우리 청 차원에서 신상공개위원회를 열 수 있는 게 아닐뿐더러, 열 계획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더구나 인권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반대론도 비등하다. 아무리 사회적 관심이 큰 사건이라 해도 오래 전 사건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상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력 용의자라는 이춘재는 이미 구속된 상태로 무기징역 확정 판결을 받은 상황에서 신상 공개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공익이 신상공개로 인한 사익 침해보다 큰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로 다른 이런 주장 때문에 경찰도 이춘재 신상 공개 문제를 두고 난감해 하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청 관계자는 “이춘재는 현재 피의자가 아니어서 신상을 공개할 근거가 없다”며 “신상공개 문제는 어느 정도 수사를 통한 진상 규명이 진행돼서 이춘재를 피의자로 입건한 뒤에야 논의할 수 있는 문제”라 말했다.

그럼에도 경찰이 신상 공개 카드를 놓지 못하는 건 현실적 이유 때문이다. 최우선적으로 대면 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이춘재에 대한 압박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 또 이춘재의 신상이 공개되면 화성연쇄살인사건뿐 아니라 그 즈음 이춘재의 소행으로 의심되는 다른 미제 사건에 대한 증언이나 제보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지금 경찰이 이춘재 조사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오래된 사건이어서 당시 이춘재의 행적에 대한 정보 자체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라며 “이춘재의 신상이 공개되면 그간 명확하지 않다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나서기를 주저했던 피해자나 목격자들도 입을 열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혐의 입증 책임을 진 경찰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수원=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수원=김영훈 기자 huni@hankookilbo.com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