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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구자는 재상이 된지 십 년이 다되도록 단 한 번도 걸출한 인재를 추천한 적이 없습니다. 알면서도 추천하지 않았다면 이는 충성심이 없는 것이고, 몰라서 그랬다면 이는 지혜롭지 못한 사람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사마천의 ‘하본기(夏本紀)’를 보면 ‘상서(尙書)’의 ‘고요모(皐陶謨)’와 ‘익직(益稷)’의 내용을 거의 인용하다시피 하면서, 순(舜) 임금, 우(禹), 고요 등이 서로 나눈 대화를 기록했다. 먼저 고요와 우가 국정 운영에 대한 견해를 밝히자 순 임금이 동의한다. 그러자 우가 이어서 말한다. “일거수일투족에 신중하십시오. 정직한 자를 발탁하여 덕정을 실천하십시오.” 그러자 순 임금이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대들은 나의 양손이 되어 주시오. 내가 잘못한 점이 있다면 바로잡아 주시오. 내 앞에서는 비위를 맞추고 뒤에서 험담하지는 마시오.” 바람직한 군신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진시황과 한무제의 통치 이후, 역사에 명멸했던 중국 왕조에서 이런 모습은 희귀한 일이 되었다. 황제의 의견은 곧 내각의 결정이 되었고, 행정부의 수장인 승상은 그저 충실한 집행자였다.

그래도 춘추와 전국시대까지는 임금과 신하 관계에서 진솔하고 겸허한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중 초(楚)나라 장왕(莊王)은 그러한 미담을 많이 남긴 인물이다. 장왕은 춘추 오패(五霸)의 하나로 문치와 무공 모두 성공하여 초나라를 반석에 올려놓았다. 오기(吳起)가 쓴 ‘오자병법(吳子兵法)’에 이런 기록이 있다.

전국시대 위(魏)나라 무후(武侯)가 국사를 논의하는데 신하들의 식견이 모두 자신에게 미치지 못했다. 조회가 끝난 후 위 무후의 얼굴에 기뻐하는 기색이 있었다. 오기가 다음 같이 간언했다.

“옛날 초 장왕이 국사를 논의할 때 신하들의 식견이 모두 장왕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조회가 끝난 후, 장왕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자 신하가 물었습니다. ‘주상께서 근심어린 기색이 있으니 무슨 까닭입니까?’ 장왕이 말했습니다. ‘과인이 듣기로, 세상에는 성인이 끊인 적이 없고 나라에는 현인이 부족하지 않으니, 이들을 스승 삼으면 왕자(王者)가 되고 벗 삼으면 패자(霸者)가 될 수 있다고 했소. 지금 과인의 재능이 부족한데도 신하들이 과인보다 못하니 우리 초나라의 앞날이 위태롭구려!’ 이처럼 초 장왕은 자신이 제일 잘난 것을 근심하였으나, 임금께서는 즐거워하고 계십니다. 저는 속으로 두렵습니다.” 오기의 말을 듣자 무후의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오기의 말은 그야말로 정문일침(頂門一鍼). 임금의 그릇은 커야한다. 이 고사를 더 생각해 보면, 승상이나 임금의 측근들이 마땅히 할 일은 ‘인재 추천’이 아닐까 싶다. 관련된 사례를 역시 초나라 장왕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번희(樊姬)는 초나라 장왕의 부인이다. 어느 날 장왕이 조회에서 늦게야 돌아오자 번희가 그 까닭을 물었다. 장왕이 말했다. 오늘 훌륭한 재상과 더불어 이야기를 주고받느라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몰랐구려. 그러자 번희가 다시 물었다. 훌륭한 재상이라면 누구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장왕이 우구자라고 대답했다. 왕의 대답에 번희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왕이 까닭을 묻자 번희가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운이 좋아 대왕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귀함과 사랑을 독차지 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지만, 혹시나 대왕의 체통에 누가 되지 않을까 하여 여러 여인을 추천하여 저와 같은 반열에 서게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구자는 재상이 된지 십 년이 다되도록 단 한 번도 걸출한 인재를 추천한 적이 없습니다. 알면서도 추천하지 않았다면 이는 충성심이 없는 것이고, 몰라서 그랬다면 이는 지혜롭지 못한 사람입니다. 충성스럽지도 지혜롭지도 않은 자를 어찌 훌륭하다고 말하십니까.” 다음날 조회 때, 장왕이 번희의 말을 우구자에게 전했다. 그러자 우구자는 머리를 조아리며 번희 말이 맞다고 하며 사직하고, 손숙오를 재상으로 추천하였다. 이리하여 장왕은 마침내 패업을 이루게 되었다. 장왕이 패업을 이룬 것은 번희의 공이 크다고 하겠다.

번희가 초나라 장왕을 내조한 이야기는 여러 문헌에 나온다. 따라서 판본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요지는 일맥상통 한다. 번희는 자신도 임금의 사랑을 독점하고 권세를 누리고 싶다고 솔직하게 얘기한다. 그러나 여인네인 자신도 그것이 임금에게 피해가 될까 봐 자기 욕심을 내려놓고 다른 여인들을 추천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일국의 재상이라는 우구자는 그저 자리나 지키고 좋은 사람 시늉만 하고 있을 뿐, 누구 하나 인재를 추천한 적이 없다. 애초에 마음이 없는 건지 식견이 없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을 훌륭한 재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장왕은 우구자를 훌륭하다고 여긴다. 임금의 시중이나 드는 보잘 것 없는 자신이 보기에도 그건 아니다 싶어서 실소가 절로 나올 수밖에. 번희의 분석은 조리 있고 핵심을 지적한다. 그녀의 처신과 분석은 권력의 정점에 서있는 자들이 가질 태도를 알려준다. 내가 제일 잘났고 나 아니면 안 된다는 통치자. 또 그런 자들을 추종하는 예스맨들이 넘치는 집단은 위태로운 미래가 기다릴 뿐이다. 초나라 장왕의 이야기는 되새길 가치가 있다.

박성진 서울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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