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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이공계 여성 취업현황과 정책제안’ 보고서
“남친 있나” “결혼은 언제” 면접 차별
공대 졸업 女 대비 정규직 비율 감소
지난 5일 오전 경기 수원시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에서 열린 2019 성균관대학교 JOB FAIR에서 한 대학생이 채용 정보를 확인하고 있다. 뉴스1

6년차 프로그램 개발자 박지원(가명ㆍ31)씨는 최근 이직한 직장에서 5년차 남자동료들과 비슷한 수준의 연봉을 받고 있다. 남자 동기보다 연봉 150만원 정도 적게 받는다. 군 복무 경력을 인정하는 관행 때문이라고 추측하고 있지만, 회사 쪽에서 이유를 시원스럽게 설명해주지도 않는다. 박씨는 이런 일을 이직할 때마다 겪었다. 예전엔 ‘나이도 어리고 경력도 적으니 감수해야지’ 하고 참았지만, 경력이 쌓인 지금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니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박씨는 “주로 남초 직장에 다니기 때문에 여자라서 다른 대우를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며 “여자 개발자들끼리는 ‘해외 가서 실력으로 먹고 살자’는 푸념을 자주한다”고 말했다.

‘여학생이 적으니 인력도 적다.’ 과학기술분야에 진출한 여성 숫자가 적은 이유를 설명하는 데 자주 쓰이는 논리다. 그러나 이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의 ‘여성과학기술인력 활용 실태조사 보고서(2015)’에 따르면 2015년 자연계열 대학졸업자의 남녀 성비는 5대 5, 공학계열 졸업자의 성비는 8대 2였다. 하지만 정규직으로 고용된 비율은 각각 7대 3, 9대 1이었다. 단순히 배출되는 숫자 비율로 설명할 수 없는, 채용상 성차별이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나온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의 보고서 ‘이공계 청년여성 취ㆍ창업현황과 정책지원방안 연구’에 따르면 정보통신기술(ICT)분야 기업에는 여전한 채용성차별이 작용하고 있었다. 올해 서울시내 ICT기업에 재직중인 만 20~35세 여성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채용과정에서 205명(41.0%)이 성차별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국가인권위가 전 영역을 대상으로 채용과정 차별관행을 조사했을 때 여성의 28.7%가 면접단계에서 성차별을 당했다고 답한 것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높은 수치다.

응답자들이 주로 겪은 성차별은 결혼차별(32.2%)이나 성별에 따라 경력산정에 차등을 두는 ‘경력차별’(24.9%), 나이차별(20.0%)이었다. 실제 면접 과정에서 결혼이나 연애 여부를 묻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3년차 엔지니어 최은주(가명ㆍ30)씨는 “그룹 면접 때 면접관이 옆자리 남자지원자에게는 업무지식만 묻고, 내게는 사귀는 사람이 있는지, 결혼은 언제 할 건지 등을 캐물었다”고 말했다. 이런 차별은 상대적으로 젊고 양성평등적인 문화를 갖고 있다고 여겨지는 벤처ㆍ스타트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응답자 중 대기업 재직자의 27.8%, 벤처ㆍ스타트업 재직자의 29.7%가 결혼 계획 여부 등을 물어보는 차별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저작권 한국일보]이공계 청년여성이 경험한 채용과정에서의 성차별 유형. 그래픽=김경진기자

스타트업들은 이를 ‘경영상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해명한다. 창업 7년차 스타트업의 관리자 정모(40)씨는 “직원 20명이서 많은 양의 일을 나눠 하고 있는데 중간에 누구 하나 빠지게 되면 업무 차질이 커서 (결혼ㆍ출산 등) 계획을 물어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채용성차별은 여성들의 진로에도 영향을 미쳤다. 차별을 경험한 응답자 중 29.1%가 이후 희망 직군이나 회사를 변경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한 채용성차별을 경험한 경우 71.4%가 1번 이상 이직했는데, 이는 채용성차별을 겪은 적이 없는 응답자 중 이직 경험자(64.9%)보다 유의미하게 높은 수치다. 이 같은 채용상 성차별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채용과정에 편견을 배제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 기업의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입사지원서에 성별 선입견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명을 쓰도록 한 구글의 ‘입사지원용 가명(假名)’ 제도가 대표적이다. 신하영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은 “‘블라인드채용’ 만으로 채용 성차별 관행 개선을 기대하기보다는, 민간분야의 ICT 기업에게 자율적으로 ‘소통과 개방의 채용면접’을 선택하도록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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