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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은 ‘사고 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수요일 격주로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경기 광주시 도척면에 위치한 에이리 하우스가 푸른 숲을 배경으로 나지막하게 들어서있다. 회색의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한 검박한 집은 장식을 배제해 완성되지 않은 듯한 느낌을 준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2년 전만 해도 경기 신도시의 한 고층아파트에서 살던 이상욱(35)ㆍ고경애(40) 부부의 가족은 지난해 경기 광주시의 숲 속 단층집으로 내려왔다. “어느 날 맞은편 동을 봤더니 층마다 거실 풍경이 다 똑같았어요. TV 놓는 곳까지 다 정해진 곳에서 살고 싶지 않았어요.” 수십 층을 쌓아 올린 아파트 공간은 사람이 살기 전부터 이미 그 용도와 의미가 정해져 있다. 현관을 들어서면 주방과 거실이 나오고, 거실을 중심으로 각 방들이 연결된다. TV와 가구 등 생활용품도 제자리가 있다. 누가 와서 살든 기능적이고 편리하게 설계했기 때문이다. 가족의 집을 설계한 나은중ㆍ유소래 네임리스건축사사무소 공동소장은 “집은 변하지 않지만 삶은 흐르는 물처럼 변한다”며 “생활방식이나 관계, 구성원도 달라지고, 집에 대한 생각도 바뀌기 마련이어서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집을 짓고 싶었다”고 말했다. 건축가에게도 부부의 집이 첫 주택 설계였다.

집은 가로세로 3.6m 크기의 아홉 칸으로 나뉘어져 있다. 외부와 동일하게 내부도 노출 콘크리트다. 각 방은 최소 3개 이상의 창과 문이 있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가로세로 3.6m씩 똑같이 나눈 콘크리트 아홉 칸

부부와 두 아이(4, 6세), 반려견이 함께 사는 가족의 집은 대지 664㎡(약 201평), 연면적 136.57㎡(약 41평) 규모로 내외부가 모두 콘크리트로 된 정사각형 구조다. 평지붕에 네 면에는 긴 처마가 달려있다. 집은 형태는 갖췄으나 벽돌이나 페인트 등 마감이 전혀 돼 있지 않아 얼핏 짓다 만 것처럼 보인다. 콘크리트도 매끈하게 다듬어지지 않고, 곳곳에 숨구멍이 뚫린 거친 속살이 그대로 노출됐다. 나 소장은 “미려한 마감재로 치장하는 것보다 방수, 접합, 단열 등 최소한으로 마감한 집일수록 솔직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부부도 “산 속을 가로지르는 콘크리트 고속도로가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라며 날 것 그대로의 콘크리트를 선호했다. 재료에 대한 미감이 서로 통한 건축가와 부부는 콘크리트 거칠기를 정하고자 여러 공사판을 다니기도 했다. 간혹 콘크리트 독성을 우려하는 이들에게 건축가는 이렇게 답한다. “콘크리트가 좋지 않다는 편견은 콘크리트 외부에 여러 마감재를 입히기 때문입니다. 콘크리트는 자갈, 모래, 물로 이뤄진 돌일 뿐입니다.”

숲 속에 덩그러니 놓인 돌처럼 보이는 집은 사는 이들이 그들의 삶을 채워나가는 공간이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정사각형의 콘크리트 집 안에는 작은 콘크리트 아홉 개가 있다. 정면 세 칸, 측면 세 칸으로 하나의 방은 가로세로 3.6m의 정방형이다. 물을 사용하는 화장실과 부엌을 제외한 나머지 칸은 쓰임새가 따로 없다. 사는 사람이 쓰기 나름이다. 같은 크기의 방들은 복도 없이 연결되고, 서로 평등하다. 용도와 크기에 따라 거실과 안방 등으로 나뉘는 보통의 집과 다르다. 나 소장은 “안방, 아이 방, 거실과 부엌, 화장실 등 모든 공간은 동등한 크기와 위계를 갖는다”며 “가족은 그들의 필요에 맞춰 자유롭게 방의 쓰임새를 결정하고 바꿀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처음 아홉 칸으로 쪼개진 집을 보고 부부도 적잖이 당황했다. “처음에는 어디에 뭘 둘 지조차 상상이 안됐는데, 생각해보니 용도가 정해진 아파트에 살 때 아이들이 공간을 차지해 정작 어른들의 공간이 마땅치 않았던 게 생각났어요. 작은 공간을 우리의 쓰임새에 맞게 돌아가면서 써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두꺼운 콘크리트를 사용해 좁고 답답해 보일 것 같지만, 칸마다 최소한 3개 이상의 창과 문을 내 사방이 열려 있다. 아홉 칸 중앙에 놓인 방은 창을 낼 수 없어 1.5m 지름의 동그란 천창을 냈다. 앞만 보는 게 아니라 위도 올려다보게 된다. 자연의 풍요로움을 집 안 깊숙이 들인다. 부부는 “앞이 아니라 위를 바라볼 때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천창을 통해 깨달았다”며 “집을 지으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건축가가 의도해 사는 이를 일깨웠다”고 입을 모았다. 아이들은 천창이 공처럼 둥글다고 해서 천창이 있는 칸을 ‘공방’이라 부른다.

집 중앙의 칸에는 동그란 천창이 뚫려 있다. 천창 아래에는 일본 유명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가 디자인한 원형 테이블이 놓여 있다. 가족들은 이곳에서 오순도순 식사를 한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좋아하는 것으로 채우는 미완의 집

부부가 집 짓기를 결심하고 떠올렸던 집은 미국의 부부 건축가였던 찰스ㆍ레이 임스의 ‘임스 하우스’였다. 부부는 “숲 속에 큰 직사각형 유리 박스처럼 생긴 집이었는데, 아기자기한 소품이 가득하고, 그 안에 펼쳐진 내부 풍경에 마음이 끌렸다”고 했다. 좋아하던 미술활동을 육아로 하기 힘들었던 아내를 위해 작업실을 따로 마련해주고 싶었던 남편의 마음이 더해졌다. 임스 하우스는 거주공간과 작업공간이 같이 있었다. 나 소장은 “임스 하우스는 건축적으로 뛰어난 집이 아니라 단순한 박스 형태이다”며 “건축주 부부도 집의 물리적인 형태보다 그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관한 가치와 취향을 얘기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부부의 이름 영문자에서 한 글자씩 딴 ‘에이리 하우스(Aele House)’는 가족들이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지고 있다. 둥근 천창 아래 가족이 모여 식사하는 곳에는 2013년 출산 기념으로 구매한 일본 유명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의 원형 테이블을 뒀다. 일부러 천창에 맞춰 구입한 듯 잘 어울린다. 임스 부부가 디자인한 의자도 있다. 거실에는 부부가 좋아하는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안락 의자가, 침실에는 독일 가구브랜드인 E15의 원목 침대를 놓았다. 이 가구들은 아이들의 생일 혹은 부부의 기념일 등에 하나씩 장만한 것들이다. 부부는 “좋아하는 가구를 집안에 두는 것만으로도 매우 행복하다”며 “시간이 흐르면서 가족의 추억이 가구에 배어있고, 그런 가구로 채워진 공간이 우리에게는 의미 있다”고 했다. 집을 옮기면서 다시 붓을 잡은 고씨와 아이들의 그림도 콘크리트 공간에 따뜻함을 불어넣는다.

집 한쪽 귀퉁이 칸에 마련된 고경애씨의 작업실이다. 아홉 칸은 용도가 수시로 달라진다. 작업실의 풍경도 시시때때로 변한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침실에는 침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아파트에서 밤잠을 설친 경험이 많은 부부는 이곳에서는 커튼이 없어도 해가 뜨고 지는 것에 따라 깊은 잠을 잔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아홉 칸의 용도는 수시로 달라진다. 천창 아래에 놓여 있던 식탁은 어느 날 동쪽으로 자리를 옮겨 가족들이 아침 햇살을 받으며 식사를 할 수 있게 해준다. 식탁이 옮겨진 천창 아래는 따뜻한 풍로가 놓인 화가의 아틀리에이자 아이들의 놀이 공간이 된다. 나 소장은 “건축가가 만든 공간은 미완의 집이다”며 “사는 이들이 그들의 삶의 기술에 맞춰 공간을 유동적으로 사용하면서 집은 완성된다”고 말했다. 부부는 “보통은 아파트처럼 다 만들어진 집을 보고 선택하지만, 이 집은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게 좋았다”며 “우리들의 것으로 채우고, 꾸미고, 좋아하는 것을 자유롭게 둘 수 있다”고 했다. 부부와 건축가는 최근 집을 통해 느낀 삶과 건축 이야기를 주고 받은 글을 모아 ‘코르뷔지에 넌 오늘도 행복하니’(안그라픽스 발행)라는 책을 냈다.

집을 짓고 부부의 삶은 단단해졌다. “집에 살면서 삶의 주인이 우리라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어요. 각자 주체적인 삶을 산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살다 보면 환경에 맞춰서 살게 되잖아요. 그런데 이 집에 살면서 우리가 정말 좋아하는 게 뭔지, 원하는 게 뭔지 늘 생각하게 돼요.”

에이리주택 평면도. 네임리스건축사사무소 제공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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