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유독가스ㆍ무더위와 41시간 사투

입력
2019.09.10 15:54
수정
2019.09.10 19:44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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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조대, 선체 구멍 뚫어 빵ㆍ물 전달 

 골든레이호 구조작전 성공 

9일 미국 조지아주 브런즈윅항 인근에서 전도한 현대글로비스 소속 골든레이호 탑승 선원이 미국 해양경비대에 구조된 뒤 미소를 짓고 있다. 브런즈윅=AP 연합뉴스
9일 미국 조지아주 브런즈윅항 인근에서 전도한 현대글로비스 소속 골든레이호 탑승 선원이 미국 해양경비대에 구조된 뒤 미소를 짓고 있다. 브런즈윅=AP 연합뉴스

“감사합니다, 여러분.”

가까스로 사지에서 벗어난 선원은 손을 높이 들어 보이며 소리쳤다. 9일(현지시간) 오후 6시, 골든레이호에서 마지막 탑승자가 구조되는 순간이었다. 사고 발생 41시간 만이다. 구조 작업이 일단락되자 존 리드 미국 해양경비대(USCG) 대령은 구조대원들을 향해 감격의 소감을 밝혔다. “놀라운 일입니다. 여러분이 이걸 해낸 오늘은 내 경력 최고의 날입니다.”

8일 오전 1시 40분 미국 조지아주 동부 해안 브런즈윅 내항에서 외항으로 운항하던 중 전도된 현대글로비스 소속 자동차 운반선 골든레이호에 남은 최후의 생존자 4명을 구조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총 24명의 탑승자 중 사고 당일 20명(한국인 6명 포함)이 구조됐지만, 마지막까지 선내에 고립되었던 한국인 선원 4명의 생사는 불확실했다. 섭씨 33도가 넘는 무더위와 선내 화재 탓에 기관실 등에 남겨진 선원들의 안전은 보장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허리케인 도리안이 며칠 전 인근 지역을 훑고 지나간 터라 선내 습도는 사람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을 훌쩍 넘어서 있었다.

선체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느라 많은 시간을 빼앗긴 탓에 최후의 4명을 구해내려는 구조대의 애간장이 타 들어갔다. CNN에 따르면 USCG는 화재를 진화하고 선박을 안전하게 고정한 후인 9일 오전 7시부터 헬리콥터 등을 동원해 본격적인 구조작업을 벌일 수 있었다. 이미 사고 이후 30여시간이 흐른 뒤였다. 선원 4명이 유독가스와 더위에 질식했을지도 모를 안타까운 시간이 바닥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구조대는 우선 선원들이 고립된 장소로 추정된 기관실을 중심으로 접근을 시도했다. 좌현으로 전도된 선박 밑부분이 주된 작업 대상이었다. 얼마 후 구조대는 선체를 두드리다 생존자의 ‘신호’를 확인할 수 있었다.

USCG는 우선 선체에 작은 구멍을 뚫어 전날 화재로 인한 유독 가스 여부를 점검한 뒤 내시경 카메라를 투입해 마침내 선원들의 생존을 눈으로 확인했다. 오후 1시쯤 실종 선원 4명 모두 살아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구조대는 직경 7.6㎝ 정도의 큰 구멍을 뚫어 생존자들에게 물과 빵을 전달했다. 구조대는 드릴을 이용해 선체를 절단, 오후 3시 30분 기관실내 생존자 3명을 구조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 오후 6시 엔지니어링 통제실 칸의 강화 유리 뒤쪽에 고립됐던 마지막 생존자가 햇빛을 봤다. 더위와 피로감으로 이들의 얼굴은 모두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다행히 고립 공간의 공조시스템이 정상 가동해 질식을 피할 수 있었다고 전해졌다. 리드 대령은 “구조됐을 때 한국인 선원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트위터에 글을 올려 “해안경비대에게 감사한다. 훌륭한 일을 했다”고 치하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9일 구조된 4명 모두 외상이 없고, 비교적 건강한 상태였다. 다만 마지막 구조자는 고립된 방에 혼자 오래 머물러 있어 심리적으로 안정이 필요한 상황으로 전해졌다. 그는 “어두운 상황이 길었고 못 견딜 것 같았다”라며 선체에 갇혀있을 당시 절박한 심정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칫 참사로 마무리될 뻔했던 골든레이호 전도 사고는 다행스럽게 발생 이틀(48시간)을 7시간 앞두고 ‘전원 무사 귀환’의 생존 스토리로 남게 됐다.

한편 미국 당국은 골든레이호가 전도된 이유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키스 홀러웨이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 대변인은 해안경비대를 돕기 위해 이날 NTSB 조사관들을 현장에 파견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당시 외항으로 진행하던 골든레이호가 수로 안쪽으로 접근하던 다른 대형 선박을 피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지 매체 브런즈윅 뉴스는 “배들이 서로 지나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골든레이호를 지나쳐 입항한 선박이 에메랄드에이스호라고 보도했다. 에메랄드에이스호는 일본 선사 MOL(미쓰이OSK)이 운용하는 선박으로 알려졌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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