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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은의 ‘삶도’ 인터뷰] <40>배우 강애심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연극 ‘빨간시’ 이어와 
 최근 ‘멜로가 체질’ 천우희 엄마로 깊은 인상 
 배우였던 남편은 목수로… 그래도 행복한 이유 
최근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주인공 천우희(임진주 역)의 엄마로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 강애심씨. 그는 2011년부터 일본군 성노예와 장자연 사건을 다룬 연극 ‘빨간시’ 무대에 서는 36년 경력의 연극 배우다. 이 작품을 떠올리는 그의 눈빛이 무척 깊다. 배경은 ‘빨간시’의 한 장면. 이한호 기자

이렇게 ‘시크한’ 엄마를 봤나. 딸이 자는 모습을 보며, “아냐, 아냐, 아냐. 나는 쟤가 가만히 있을 때가 제일 좋아”라고 한다. “엄마, 나를 왜 낳았어”라는 우문에는 물끄러미 바라보며 ‘쿨하게’ 즉답한다. “너는 왜 나왔니~.” 양념을 덜어낸 채, 또렷한 목소리로 내뱉은 대사가 물 흐르듯 경쾌하다. 그러니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배우, 대체 누구야?’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임진주(천우희)의 엄마를 맡은 강애심(56)씨다. 그는 출연 시간으로 치면 조ㆍ단역인데도 첫 등장에 보는 이들을 사로 잡았다. 드라마에서는 낯선 얼굴이지만, 연극판에서는 믿고 본다는 37년차 배우다. 백상예술대상에서 신인상을 받는 배우가 어디 흔한가.

‘멜로가 체질’에서는 웃음기 쫙 뺀 연기로 웃음을 주는 역할을 맡았지만, 그가 서온 무대는 그렇지만은 않다. 그 중에서도 2011년 초연이래 기회가 닿을 때마다 공연하고 있는 연극 ‘빨간시’가 가장 강렬하다. 일본군 성노예(‘위안부’) 문제와 ‘장자연 사건’을 동시에 다뤄서다. 70년을 사이에 두고 실제 벌어진 성착취 사건을 담은 것이다.

그는 열세 살 나이에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갔던, 치매 할머니로 나온다. 20분 남짓 과거를 회상하는 독백은 관객의 마음을 후벼 판다. “지들도 언제 죽을지 모르니카네, 숭악하기 그지 없는 기라예. 담뱃불로 아랫도리도 지지고, 가슴도 지지고, 등짝에 칼로 지 이름 새겨싸코…. 내가 없는 기라예. 몸뚱아리 속에 갇혀 갖고 도망도 몬가고 세상 뱅글뱅글 어지럽게 돌아싸코….”(연극 ‘빨간시’ 중에서) 생존한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을 토대로 쓰였기에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리다.

울컥할 뿐 눈물은 흘리지 않는 이 그득하고 아득한 연기는 어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일까. 극장에서도, 집회에서도, 천막에서도 가리지 않고 ‘빨간시’ 무대에 서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유치원 교사도 때려 치고, 10년 동안 청소하고, 할인권 돌리고, 포스터 붙이러 다니느라 무대에 서지 못해도 참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연극을 시작했다는 천생배우를 만났다.

 ◇연극의 매력, 관객과 통하는 짜릿한 순간 
그는 연극과 뮤지컬로 쌓은 내공이 목소리에서부터 느껴지는 배우다. 그를 2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났다. 이한호 기자
 -1990년에 이미 백상예술대상에서 신인상을 받았죠. 

“네, 이강백 작가의 ‘칠산리’라는 작품으로요. 그런데 언니가 대신 받으러 갔어요.”

 -왜요? 

“저는 그때 공연 중이었거든요.”

 -데뷔는 언제인가요? 

“상업적인 연극에 선 걸 데뷔라고 하면, 1983년이에요. 전문대학을 나왔는데, 연극동아리(믈뫼) 선배가 차린 극단에서 ‘더 넥스트’라는 작품을 했죠. 전공이 유아교육이었는데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를 하면서 선배네 극단도 왔다 갔다 병행을 했거든요.”

 -연극배우가 꿈이었나요? 

“구체적으로 그린 건 아닌데 어릴 때 늘 ‘무대 위에 내가 있어야 하는데’하는 생각을 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합창부를 했어요. 노래를 좋아했기 때문에 들어갔죠. 그런데 선생님이 ‘그렇게 부르면 네 목소리만 들린다’고 하더라고요. 힘있게 ‘아!’했는데, 그게 아니라 ‘아~’해야 한다는 거죠. 문예발표회에서 오페레타(작은 오페라)로 ‘백설공주’를 하는데 오디션을 봤어요. 합창부에서 배운 대로 했더니 떨어졌죠. 하하. 솔로로 할 때는 힘있게 불러야 하니까요. 객석에서 공연을 보는데 아무것도 기억 안 나고 ‘저 무대에 내가 있어야 하는데 왜 여기 있지’ 싶었던 것만 생각이 나요.”

그런 경험을 고등학교 때도 한 그는 드디어 대학에 들어가 연극동아리 문을 두드렸다. 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갔으니, 만 열여덟에 첫 무대에 선 거다.

 -연극동아리에서 처음 해본 작품이 뭔가요? 

“이재현 작가의 ‘엘리베이터’예요. 1학년 때 학교 축제에서 섰죠. 신혼 부부의 얘기예요. 도시 생활에 지친 남자가 엘리베이터를 떠나서 지붕 낮은 집에 살고 싶다는 내용이죠. 현대화에 지친 직장인을 말하는 연극이에요. 그런데 진짜 웃긴 기억이 있어요.”

 -그게 뭔가요? 

“제가 여자 주인공이었는데 남편과 포옹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못한다고 했어요. 그때는 남자에 거부감이 있었거든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때 친구가 당한 성폭력 때문인 것 같아요. 간접 경험의 후유증이 당시 그런 식으로 나타난 거죠.”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학교 축제 때 올리는 연극이라서 총학생회장까지 나서서 나를 설득했죠. 하하. 그래서 어쨌든 했어요. 억지로 그 장면을 해야 했기 때문에 첫 무대가 어땠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요.”

배우가 되어 그 시절을 떠올리면 우습기도 하고 왜 그랬나 싶기도 하겠지만, 그랬을 만도 하다. 불과 열여덟이었으니까. 그건 그의 탓이 아니다.

 -무대에 서는 게 참 재미있다고 느끼기는 했나요? 

“그건 기본으로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양가감정이죠. 굉장한 스트레스와 짜릿한 모험이 오가는 흥미로운 순간의 공기 같은 게 있어요. 관객과 서로 기운이 쫘쫘쫘악~ 빨려들 듯 전기가 통하는 느낌이 있어요. 아주 매력적인 순간이죠. 순식간에 지나가버리지만 그 느낌이 오래 남아있어요.”

 -무대에서 그런 짜릿한 감정은 언제 처음 느꼈나요? 

“‘칠산리’에서요. 한 여성이 빨치산의 남겨진 자녀들을 데려다가 키워요. 엄마가 되어준 거죠. 본인의 자식도 아닌데 대신 키우는 땅 같은, 자궁 같은 존재예요. 그 자녀들이 커서 과거를 뒤돌아보는, 과거와 현재가 혼재돼 흘러가는 이야기죠. 저는 간난이라는 인물을 맡았어요. 극중 유일하게 엄마와 과거 속에서 함께 사는 딸, 역시 데려온 딸이죠. 제가 스물아홉 살에 그 역할을 했는데 극중 나이가 일곱 살이었어요. 엄마를 업고 울면서 나가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관객의 에너지가 나한테 쭈욱 모아지는 느낌을 받았죠. 처음으로요.”

그러니 그는 무대 위에서 첫 환희를 느낀 작품으로 백상예술대상에서 신인상을 받은 거다.

 ◇10년간 티켓만 팔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시작해 
그는 어릴 때부터 노래 부르길 좋아해 학창 시절 내내 합창부 활동을 했다. 그런데 매번 무대에 설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저기에 내가 서야 하는데’란 갈망이 그를 만들었는지 모른다. 이한호 기자
 -유치원 교사는 왜 했고, 또 왜 그만뒀나요? 

“유아교육 전공이었으니까 정교사 자격증도 땄거든요. 그래서 유치원 교사를 하면서 병행을 한 건데 쉽지가 않더라고요. 선배네 극단에 다니는 게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니 일단 먹고 살아야 하니까 유치원 교사를 했는데 몸도 너무 힘들고 심리적으로도 부담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만두고 집에서 놀았어요. 그동안 당시 국립극장에서 만든 연수프로그램에도 참여해서 교육도 받고요. 근데 그때 하루는 언니가 저를 보더니 답답해하면서 ‘라디오에 공고가 떴더라. 민중극단이란 데서 ‘캬바레’라는 공연 오디션을 하는데 해봐’라는 거예요. 그래서 오디션을 봤죠. ‘캬바레’라는 작품에 서지는 못했지만 극단에 들어가게 됐어요.”

1996년의 일이다.

 -처음부터 바로 무대에 서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처음에 들어갈 때 마음가짐은 10년 동안 할인권 팔러 다니고 홍보 포스터 붙이러 다녀도 좋다는 생각이었죠. 그때는 공연 홍보를 자체적으로 했거든요. 2인1조로 1,000원을 쥐고 포스터, 할인권 200장씩을 들고 길을 나서요. 그럼 500원으로는 테이프를 사고 나머지는 차비하거나 밥을 먹는 거죠. (미소) 그런 마음이었는데 운이 좋게도 무대가 계속 이어졌어요. 꿈을 낮게 가지니 성취감이 잘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꿈을 높게 두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하하.”

 -오디션 보라는 언니의 한마디가 전환점이 됐네요. 

“그러게요. 그때 아무것도 않고 맨날 베짱이처럼 집에서 기타 치고 놀 때인데 그런 저를 보는 게 답답했겠죠. 하하.”

 -민중극단에는 언제까지 있었나요? 

“1997년 (세종문화회관 산하) 서울시극단에 들어가기 전까지요. 민중극단에 있을 때 창단 멤버로 오디션을 봤는데 합격을 했거든요.”

 -시립극단이면 경제적인 조건은 나았겠네요. 

“일단 생활은 될 정도의 월급을 받았으니까요. 하지만, 관에 들어가면 창작자로서의 마인드보다 월급 받는 처지로서 해야 할 일을 강요 받게 되는 것도 있었죠. 특히 그때 저는 노동조합에 가입을 하면서 극단 내에서 완전히 뜨거운 감자였어요. 제가 맡게 된 배역 연습을 시키지 않고 다른 단원에게 읽으라고 하더군요. 결국 제가 공연은 했지만 정말 괴로웠죠.”

 -노조에 가입했다고 왜 그렇게까지 하지요? 

“연기자는 예술가지 노동자가 아니라는 거였죠. 극단의 윗분들이 공무원 출신도 아닌데 벼슬아치처럼 우리를 내려다봤죠. 그러니 노조 드는 것도 싫어했고요.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불합리한 일을 당하면 보호를 받아야 하니까 노조에 가입했죠. 그런데 그 시절이 준 좋은 점도 있어요. 이런 걸 알게 됐거든요. 극단에서 말도 안 되는 주문을 받으면 화도 못 내고 꾹꾹 참다가, 언제부턴가 집에 와서 가족들한테 스트레스를 풀더라고요. 생각했죠. 나와 아무 연관도 없는 사람들한테는 아무 소리도 못하면서 내가 사랑하는 가족한테는 왜 스트레스를 주고 있나. 그래서 그때부터 가족에게 잘하게 됐어요. 반면교사의 교훈을 줬다는 점에서는 감사하죠.”

 -반면교사로 배우는 게 가장 안 좋은 상황 아닌가요? 

“그런데 저한테는 그게 굉장히 중요하고 큰 경험이었어요. 인격적으로 어디서나 존중 받고 승승장구해서 올라왔다면 높은 의자에 앉았을 때 선민의식에 꽉 차서 후배들한테 폭력적인 선배가 되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서울시극단에서 어떤 부당한 일을 겪었나요? 

“예를 들면, 극단의 윗분이 하루는 우리를 모아놓더니 이렇게 말했어요. ‘배우들은 말이에요. 어느 상황에서나 탁 그 감정에 몰입할 수 있어야 돼요. 자, 5분 안에 울어보세요.’ 제가 바로 손을 들고 그랬죠. ‘저 못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기계가 아니니까요.’ 그 자리에는 저보다 열다섯 살 많은 선배도 있었는데 그 선배는 울더라고요. 감정을 쥐어 짠 거죠.”

 -그건 학대 수준이네요. 

“그런데 그 사람이 저보다 일찍 나갔어요. 나중에 제가 시립극단을 나오게 된 건 뮤지컬 ‘넌센스’ 때문이죠. 출연 제의가 왔는데 외부 공연이니까 허락을 하지 않더라고요. 시립극단에서는 어차피 이렇다 할 배역을 많이 맡지 못했고 심리적으로도 힘들었기 때문에 ‘넌센스’가 돌파구가 됐죠. 그래서 2002년에 그만두고 ‘넌센스’를 꽤 오래 공연했어요.”

‘넌센스’는 최근까지도 그가 해오고 있는 작품 중 하나다.

 ◇그간의 삶을 부끄럽게 한 작품 ‘빨간시’ 
그는 ‘빨간시’ 무대를 준비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던 분들 앞에서 감히 위로의 말은 할 수 없었다”며 “그 세월을 견뎌온 할머니들에게 감사할 뿐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상징하는 노란 나비를 연상하며 몸짓을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잊을 수 없는 작품이 있을 텐데, 그 중에 연극 ‘빨간시’도 있을 것 같아요. 

“당연하죠. 2010년쯤 이해성 작가를 만났어요. ‘살’이라는 작품 때문이었죠. 작품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쓰는 작가예요. 정진하고 고뇌하고 체험하면서 쓰는 스타일이죠. 배낭을 메고 혼자 국토종단을 한다거나, 절에 들어가서 면벽수행이나 108배를 하면서 쓰는 거죠. ‘빨간시’도 그랬어요. 물론 취재도 많이 해놨겠지만. 저한테 ‘누나, 우리 극단 들어와’라기에 흔쾌히 그러겠다고 해서 극단 고래 창단 멤버로 함께 했고, ‘빨간시’ 초연에도 참여했죠.”

 -과거 피해를 떠올리면서 하는 독백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여러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을 모아서 쓴 대사예요.”

 -보는 사람도 힘든데, 그걸 연기하는 건 더욱 고통스러웠을 것 같아요. 

“맞아요. 너무 힘들었어요. 처음에 대사를 보는데 눈물 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대사를 다 외우고 나니 연출이 주문하기를 모든 걸 다 경험한 뒤 자기 삶을 관조하는 느낌으로 해달라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건조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제가 도저히 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연습할 때 감정을 누르기만 하니까 자꾸만 저 아래에서 생감정이 올라오고요. 그래서 감정을 터뜨릴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연극) 마지막에 ‘어무이도 보이고’ 이런 대사 할 때는 ‘어무이~!’하면서 울었죠. 거의 뒹굴고 울면서 연습했어요. 그러다 나중에는 그런 격한 감정을 진정시키면서 할 수 있게 됐죠. 오랜 세월을 겪은 피해자 할머니들을 직접 만나보기도 하고요.”

그는 ‘빨간시’의 이 대목을 설명하다가 울컥하고 말았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깊은 생채기를 남기는 장면이다.

이 연극은 유력 일간지의 남자 기자로, 사장의 지시 때문에 접대 자리에 끌려갔던 동주로부터 시작한다. 동주는 그 자리에 있던 여배우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져 집에서 칩거하다가 저승사자의 실수로 치매에 걸린 할머니 대신 저승에 끌려간다.

극 중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이자 생존자인 할머니 역할을 그가 맡았다. 20분 간의 독백은 너무나 적나라하고 처연하고 고통스럽다(연극 '빨간시' 중 할머니의 독백).

‘빨간시’는 2011년 12월 수요집회 1,000회에 맞춰 처음 공연된 이래,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해마다 이어졌다.

 -‘빨간시’는 어떤 의미가 있는 작품인가요. 

“나를 부끄럽게 하는 작품이죠. 침묵도 무언의 폭력인데 ‘빨간시’를 하기 전까지 전혀 의식조차 하지 않고 살았어요. 내가 겪은 부당한 일에만 힘들어하고 나만 죄 안 짓고 살면 된다고 생각했죠. 나 이외 다른 이들의 피해에 대한 사회적인 시각이 전혀 없었던 거예요. ‘빨간시’ 덕분에 새롭게 눈을 뜨게 됐죠. 물론 손 흔들며 시위하는 건 아니지만, 공연으로 그 죄책감을 대신하는 거죠. 소극적이지만 연극은 힘이 세니까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또 연극이고요.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든지 저를 원한다면 계속 할 거예요.”

 -메시지가 분명한 작품은 ‘빨간시’가 처음이었나요? 

“초기엔 굉장히 미국적이고 상업적인 극을 많이 했죠. 그런데 시립극단을 나와서는 점점 그런 방향의 작품을 하게 됐어요. 연극의 의미를 새롭게 찾았죠. 더 나한테 맞기도 했고요.”

 -‘빨간시’에는 두 사건이 등장하죠. 

“두 사건 모두 가진 자의 폭력으로 빚어진 일이죠. 시대만 다를 뿐이고요. 오히려 세월이 지났고 민주화가 됐는데도 자기가 가진 권력을 이용해 약자, 특히 여성을 함부로 휘두르는 일이 아직도 있다는 게 통탄할 일이에요.”

 -연극은 힘이 세다고 표현했는데, 어떤 뜻인가요? 

“‘빨간시’ 같은 작품은 목적극이에요. 사회가 지닌 문제점을 건드리죠. 연극은 특히 사람이 직접 나와서 연기로 말하니 텍스트보다 울림이 더욱 크고요.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어요. 연극을 보고 극장을 나섰을 때 성폭력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폭력을 반추하는 기회가 된다면 감사하죠. 어떻게 보면 저는 연기로 그런 계기를 만드는 사람이니 비겁하기도 해요.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연기이니 ‘빨간시’를 하는 거죠.”

 -제작비 사정은 괜찮은가요? 

“제작비가 없어도 올려요. ‘빨간시’ 초연이 그랬어요. 출연료를 받지 않고 서니까요. 텀블벅 같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를 이용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초연 이후에는 아주 소정의 돈은 받았어요.”

 ◇연극과 드라마는 다르더라 
드라마 ‘멜로가 체질’의 한 장면. 그는 극중 드라마 작가인 임진주(천우희ㆍ왼쪽)의 엄마(가운데)로 나온다. JTBC 영상 캡처
 -연극이 돈이 되는 일은 아니지요? 

“그렇죠. 그런데 시립극단에서는 월급을 받으면서도 힘들었어요. 연기와 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어서 들어갔는데, 나중에는 내가 어떤 식으로든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쫄쫄 굶지만 않는다면요. 그래서 과감히 그만둘 수 있었죠. 일반 직장 다니는 친구들이 그래요. ‘나는 먹고 살려고 직장에 다니는데 너는 돈은 많이 벌지 못하지만 순간을 행복하게 사니 부럽다’고요. 돈을 택할 것인가, 남한테 부럽다는 소리도 듣는 행복한 일을 택할 것인가 하면 당연히 행복 아니에요? 하하. 그리고 연극을 할 때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시스템에서 작품을 하니까 사람을 많이 알아가요.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죠. 연습하고 밥 먹고 술 먹고 토론하고 인물 분석도 하는 그런 과정이 재미있고 좋아요.”

 -연극을 해서 행복한 거네요. 

“(끄덕이며) 맞아요. 행복하니까 하죠.”

그의 눈빛과 얼굴에서 맑은 미소가 번졌다.

 -‘빨간시’처럼 같은 작품을 여러 번 연기하는 경우 매번 다른가요? 

“순간적으로 새롭게 알게 되는 감정이 있죠. 또 연극은 바로 앞에 관객이 있잖아요. 매회마다 관객의 기운이 전달되니 매일 공연이 달라져요. 아주 미세하게 다른 결을 경험하죠. 그래서 같은 작품도 오래 할 수 있어요.”

 -같은 연극이 아니군요. 

“맞아요! 50%는 관객이 만들죠.”

 -‘멜로가 체질’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요? 

“캐스팅 디렉터한테 연락이 왔어요. ‘드라마 출연 할 수 있느냐’고요. 저야 감사하죠. 매체(TV, 영화) 연기나, 공연예술 연기나 같은 연기니까요. 많이 배우고 싶기도 하고요.”

그는 전에도 드라마 ‘보이스 시즌2’나 ‘아름다운 세상’에 출연했지만, ‘멜로가 체질’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드라마는 연극과 많이 다르죠? 

“말하는 방식부터 그래요. 드라마는 완전히 힘을 빼고 말을 해야 하더라고요. 또 함께 연습을 많이 하지 않으니까 순간적인 교감이 잘 돼야 해요. 그것마저 어떤 장면에선 필요하지 않죠.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극 무대에서는 상대편과 주고 받으면서 교감이 쌓이거든요.”

 -첫 신 찍을 때 한번에 오케이 됐나요? 

“(손사래를 치며) 아니요! 연출의 주문을 제가 잘 따르지 못했죠. 심지어 제가 미리 잡아서 연습해온 것과 연출의 생각이 달랐어요. 그래서 첫날 아주 호되게 힘들었어요. 하지만 버텨내야죠. 어떤 신은 애드리브도 준비해갔거든요. 그런데 안 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뺐죠. 하하.”

극중 드라마 감독인 손범수(안재홍)와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드라마 얘기를 하는 장면이었다. 범수가 어떤 드라마가 좋으냐고 묻자, 극중 진주 엄마인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도깨비’. ‘도깨비’와 함께 한 모든 시간이 눈부셨지.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눈부셔었~어! (딸을 보며) 일어났네.” 그는 이 대사를 할 때 ‘도깨비’의 배경 음악 중 하나를 부르는 애드리브를 생각했던 것이다.

 ◇천우희의 위로 “엄마랑 연기할 때 제일 좋아요” 
그는 ‘멜로가 체질’ 촬영을 끝내고 이달 21일부터는 연극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 무대에 선다. “인간의 존재 가치를 생각해보게 하는 연극”이라며 ‘강추’했다. 그가 작품의 한 장면을 연기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연극 무대에서는 30년이 훨씬 넘었고 주인공을 많이 했지만 드라마에서는 조ㆍ단역을 맡은 건데요.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뒀죠. 처음부터 드라마에서 큰 역을 맡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그런데도 외롭더라고요. 그런데 천우희씨가 참 잘해줬어요. 제가 (감독의 주문대로) 연기가 잘 안돼서 ‘죄송합니다’하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옆에서 ‘힘드시죠. 이게 그렇더라고요’ 하면서 위로도 하고, 극중에서 제가 엄마로 나오니까 ‘저는 엄마랑 대사할 때가 제일 재미있어요’ 해주기도 하고요.”

 -‘멜로가 체질’도 의미가 남다른 작품일 것 같아요. 

“그렇죠. 영화 빼고 드라마에서 세 번째 작품이에요. 거기다 다른 작품과 달리 총 16회 중 10회에 출연을 하니 비중도 크죠. 내 나이의 엄마 역할, 그것도 틀에 박히지 않은, 굉장히 신선하고 독특한 캐릭터를 맡아서 재미있어요. 감사하죠.”

 -앞으로도 드라마 출연은 하실 생각인가요? 

“기회가 닿는다면요! 그런데 올해 상반기에 드라마와 단편 영화를 연달아 하다 보니 연극이 너무 목마르더라고요. 하하.”

그는 9월 21일부터 연극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 다음달 말부터는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 무대에 선다.

 -배우 김태리씨와 인연이 있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아, 제가 작품 ‘넙쭉이’라는 1인극을 할 때예요. 자폐아인데 서번트 증후군(특정 분야에서 매우 우수한 능력을 발휘하는 현상)이 있는 일곱 살 여자 아이 역할을 했었죠. 제가 배역 운이 정말 좋아서 그런 좋은 작품도 했답니다! 그때 김태리씨가 극단 이루에서 조연출 겸 오퍼레이터로 있었어요. 어느 날 제가 ‘1인극이니 너무 외롭다. 태리야, 한번 대사 해볼래?’한 거예요. 농담 삼아 한 말이었죠. 그런데 대사를 거의 다 외워서 하는 거예요. 그래서 기존 공연 외에 낮 공연을 만들어서 ‘감동후불제’로 태리씨가 무대에 올랐죠.”

 -연기를 하면 다양한 인물이 되어 본다는 게 어렵고도 좋을 것 같아요. 

“연극배우들이 그래서 제대로 자기 관리만 하면 오래 살 거 같아요. 매번 스트레스와 행복감이 교차하거든요. 스트레스가 전혀 없으면 일찍 늙고 바보가 된다는데 저는 그런 자극 때문에 현명해지고 무대 위에서 만족감도 느끼죠.”

 ◇배우 포기하고 목수 택한 남편 

그는 종방연이냐, 남편이냐의 기로에서 고민 없이 남편을 선택했다. 이한호 기자
 -남편은 어떻게 만났나요? 

“극단에 함께 있던 배우였어요. 지금은 배우가 아니에요. 연극배우 둘이서 먹고 살기 힘들거든요. 스물여덟 살에 결혼했는데 그 뒤로 신랑이 거푸집 목수 아르바이트를 병행했어요. 그러다 점점 공연이 사양길에 들어서서 무대에 설 기회가 적어지다 보니 직업이 됐죠. 지금도 거푸집 목수예요. 그런데 그 일이 창의력을 요구한다고 재미있어 해요.”

 -미안함이 크겠네요. 

“엄청나죠. 제가 한번은 내가 뭘 하든 벌어올 테니 역할을 바꾸자고 했어요. 그랬더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답할지 알았지만 진심이었어요. 신랑은 연기를 너무 하고 싶어서 고등학교를 세 번이나 옮겨서 안양예고를 간 사람이거든요. 자기 말로는 선생들이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재라고 했다고 해요. 민중극단에서 주연도 많이 했고 인물도 좋죠.”

우연히도 인터뷰를 한 2일은 그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남편의 생일인데다 ‘멜로가 체질’ 종방연이 있었던 거다. 그런데 그는 종방연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에 ‘왜요, 종방연은 오늘뿐인데’라는 바보 같은 얘기를 하고 말았다.

“신랑도 그랬어요. 그런데 제가 광주에서 공연하고 오느라 아무 준비도 못했어요. 신랑은 또 새벽 4시 반에 일을 나가니까 (공사) 현장에서 아침을 먹거든요. 제가 전화해서 ‘당신 생일이니까 종방연 안 간다’고 했더니 거기 가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런데 왜 고민 없이 종방연에 안 가기로 했나요? 

“우리가 술 먹다가 친해졌거든요. 술이 가장 맛있을 때가 저와 저녁식사 자리에서 한 잔 할 때라는 사람 생일인데 그걸 못해주면 안되죠.”

맞다. 그런 마음으로 종방연에 간들 행복하지 않았을 거다. 이 배우와 함께 사는 이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 실례를 무릅쓰고 물었는데, 질문하기를 잘했다.

 -살면서 지키려고 하는 삶의 원칙이 있나요? 

“소소하지만, 지구를 살리려고 철저히 지키는 게 있어요. 음식물을 남기지 않아요. 예를 들어 멸치로 국물을 내고 나면 보통 멸치를 버리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걸 말려서 가루를 내서 찌개에 넣거나 하죠. 그런 것에서 기쁨을 느껴요. 플라스틱 용기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요. 그것 외에는 있는 대로 살아요. 지키지 못할 목표를 정해놓고 이루지 못해 스트레스 받느니 이 순간을 즐겁게 살려고 하죠. 어마어마한 실천은 못하지만 작더라도 내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을 해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런 글을 봤다. “‘멜로가 체질’에서 진주 엄마 맡은 이 배우 누구예요?”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터뷰를 마친 그는 왜 자기를 인터뷰 할 생각을 했느냐고 물었다. 대학 공연까지 치면 38년을 무대 위에서 산 배우였는데 그를 드라마에서 처음 알아챘다.

그를 인터뷰 하고 난 뒤, 왜 그를 몰랐는지, 왜 수년 간 이어진 ‘빨간시’같은 연극을 알지 못했는지 자책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애심(愛心)으로 서는 그의 무대에 관객 역시 애심으로 찾을 테니까.

인터넷엔 이런 글도 있었다.

“강애심 배우의 연극이라면 우선 예매하고 본다. 늘 나올 분량을 기다리게 만드는, 존재감 최고의 배우!”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는 말했다. 삶이란, 적당히 재미와 스트레스가 반복되어야 하는 법이라고. “좋은 것만하면 거기는 천국이 아니에요!” 이한호 기자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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