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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국민차 ‘빈패스트’ 위기
지난 31일 오후 베트남 호찌민 시내의 한 빈패스트 매장에서 시민이 전시 차량 앞을 지나고 있다. 시선은 한번씩 주지만 그 이상의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베트남 정부가 빈패스트(Vinfast)를 통해 야심 차게 추진하던 ‘베트남 고유 자동차’ 생산 프로젝트에 이상 신호가 포착되고 있다. 빈패스트는 ‘베트남의 삼성’으로 불리는 최대 민간기업, 빈그룹(Vingroup)의 자동차 생산 계열사다. 꼭 2년 전이던 2017년 9월 초 설립됐다. 이후 1년 반 만에 하이퐁 공단에 생산공장을 완공해 세상을 놀라게 하더니, 올 2분기부터 실제로 자동차 생산을 개시해 지난 6월 사전 주문 고객들에 차량 전달까지 시작했다. 베트남 언론들은 물론, 각국의 언론들이 비상하는 베트남을 대변하는 장면이라며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국민들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그로부터 두 달여, 분위기는 반전했다.

출시 두 달 반… “거리에 빈패스트는 없다”

빈패스트 자동차가 2개월 전부터 시장에 풀리기 시작했지만, 베트남 거리에서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다. 호찌민시 택시 운전기사 용(37)씨는 “하루 12시간을 운전하지만 빈패스트 자동차를 보지 못했다”라며 “하이퐁에서 정말 자동차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사실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시장 규모, 업체들의 생산 능력이 한국에 비교할 만한 수준은 못되지만, 통상 사전주문을 받아 제작에 들어가 출시일에 차량이 대거 풀리기 시작한 만큼, 한두 달 뒤면 당연히 거리에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심지어 빈패스트 측은 지난 6월 14일 공식 출시 행사를 열면서 “1만대 이상의 사전 주문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빈패스트 관계자가 호찌민 시내 한 아파트 단지를 배경으로 시운전 차량 사진을 찍고 있다. 출시 두 달 반이 지났지만, 이런 차량만 간혹 눈에 띌 뿐이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얼마나 많은 차량이 판매됐는지도 베일에 가려 있다. 베트남 자동차생산자협회(VAMA)는 매월 브랜드별 판매량을 집계, 발표하고 있는데 3개월 연속 빈패스트의 수치는 빠져 있다. VAMA 관계자는 본보의 확인 요청에 “협회가 받은 정보가 없다”고 했고, 빈패스트 관계자는 전화 통화에서 “현재까지 1만대 이상 판매됐다. 조만간 정확한 수치를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해당 정보가 판매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현지 업계 분위기다.

자동차 판매 매장 분위기도 밝지 않다. 빈패스트는 자매 쇼핑몰인 ‘빈컴몰’에 전시장을 갖추고 주문을 받는데, 주말이던 지난달 31일 호찌민시 고밥구의 한 매장에 전시된 차에 관심을 갖는 시민은 전무했다. 매장 직원은 “주문이 밀려 지금 계약을 해도 최소 2개월 이상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또 전시된 세단 모델의 내부에 앉아 보길 원했지만 직원은 “배터리가 방전돼 문이 열리지 않는다”라며 “다음에 다시 오라”고 했다. 또 전시 차량의 문이 잘못 조립된 문제를 발견해 이유를 묻자, 해당 직원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속도 못 내는 빈패스트… 수입차 점령 가속

최초의 고유 브랜드를 향한 높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품질에 대한 베트남 소비자들의 의구심이 가시지 않고 있다. 빈패스트 측의 정확한 정보 공개가 뒤따르지 않으면서, 수입차 브랜드들의 베트남 시장 점령 속도만 빨라지고 있다.

특히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회원국들로부터 베트남이 수입하는 자동차들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VAMA에 따르면 2017년 태국에서 3만8,244대가 베트남으로 수입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이보다 45% 증가한 5만5,364대가 들어왔다. 올해 들어 지난 7월 말 기준, 태국에서 수입한 물량은 5만913대로, 작년 한 해 전체 물량에 육박한다. 2018년부터 아세안 역내 상품 관세가 철폐되면서 미국, 일본 등 완성차 업체들이 베트남 생산을 접고 ‘아세안의 디트로이트’로 불리는 태국 공장의 생산물량을 늘린 데 따른 것이다.

그림 2베트남의 아세안 역내 자동차 수입 추이와 베트남 자동차 시장 주요 브랜드별 판매 대수. 그래픽=박구원 기자

이 같은 분위기 속에 빈패스트는 사전 주문 고객에 한해 15억동(약 7,500만원) 상당의 차량을 10억동에 판매하는 판촉이벤트를 연장했다. 당초 9월 1일 종료 예정이었다. 빈패스트는 “더 많은 고객이 빈패스트를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서둘러 사전 계약을 통해 돈을 내고 출고를 기다리던 소비자들은 크게 반발하는 등 빈패스트에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빈패스트가 봉착한 난관에 대해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페이스북의 ‘빈패스트 클럽’ 페이지가 소비자들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소개하면서 “빈패스트가 기존의 일본, 유럽 자동차 품질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몇 년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인력들 떠나고, 협력사들은 ‘멈칫’

소비자뿐만 아니라 직원들까지 빈패스트를 떠나고 있다. 호찌민시 인근 자동차부품 생산업체 관계자는 “우리 공장에서 일하던 직원 5명이 올해 초 빈패스트로 이직했는데, 그중 3명이 그만두고 돌아왔다”라며 “현지 공장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전했다. 또 빈패스트에 납품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일반 근로자뿐 아니라 높은 임금을 받던 외국인 기술자들의 수가 급격하게 줄었다”며 “과감한 투자를 벌이던 빈패스트가 최근 비용 절감 모드로 들어갔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베트남 자동차산업의 미래를 보고 베트남으로 달려온 해외 부품 생산업체들도 잇따라 투자를 보류하고 나섰다. 차체 관련 부품을 납품하는 A사 관계자는 “현재 생산하고 있는 3개 모델 외 추가로 10개 모델을 생산할 것이라는 빈패스트의 발표를 보고 왔지만, 1, 2개 모델도 추가되기 어려워 보인다. 좀 더 지켜본 뒤 투자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협력사 관계자는 “자동차 생산이 제대로 안 돼 한국서 가져온 부품이 야적장에 가득 쌓여 있다”고 말했다.

빈패스트 본사 전경. 하이퐁=정민승 특파원

빈패스트는 베트남 정부가 자동차산업 육성으로 철강 등 각종 소재산업과 전기ㆍ전자 등 첨단 분야의 성장을 이끌기 위한 경제개발 계획의 핵심이다. 막중한 임무를 띠고 출범한 빈패스트가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내자, 정부는 우선 빈패스트를 본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쩐투언안 베트남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달 9일 관련 회의에서 “관세 감면 등 기업의 제안을 적극 수용해 자동차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고, 같은 자리에서 쩡탄호아이 산업국장은 “(빈패스트의) 판매 가격이 다른 브랜드에 비해 여전히 비싸다”라며 대책 마련을 역설했다. 베트남 산업통상부는 이와 함께 지난달 30일 자동차 부품생산 지원을 위한 44억달러 규모의 협력 기금 조성을 제안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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