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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신’의 배성우는 “기존 구마사제 캐릭터들이 청순했다면, 내가 연기한 구마세자는 조카를 구하려는 삼촌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한때 배우 배성우(47)의 이름 앞엔 ‘다작 요정’이라는 앙증맞은 별명이 붙곤 했다. 2015년 한 해에만 ‘베테랑’과 ‘뷰티 인사이드’ ‘오피스’ ‘더 폰’ ‘내부자들’ 등 출연작 8편이 개봉했으니 무리도 아니다. 극장가는 ‘배성우가 나오는 영화’와 ‘배성우가 안 나오는 영화’로 종종 나뉘었다. 유쾌한 감초 캐릭터부터 살벌한 악역까지, 그를 원하고 찾는 곳이 그만큼 많았다.

불과 몇 년 사이 ‘다작’이란 말이 쓱 지워졌다. 배역 비중이 커지면서 출연작 편수가 줄어든 건 당연한 일이다. 그에게 주연이라는 자리가 더는 낯설지 않다. 그렇다면 이젠 ‘요정’만 남은 건가. 배성우가 ‘푸흡’ 웃음을 터뜨리며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당시엔 출연 분량이 다작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적었으니까요. 지난해에는 ‘안시성’ 한 편만 개봉했어요. 6개월 내내 찍기도 했고, 여러 작품을 동시에 할 수 없는 상황이 됐죠.”

21일 개봉한 영화 ‘변신’도 ‘안시성’ 이후로 거의 1년 만이다. 배성우라는 이름이 출연진 엔딩크레디트의 맨 앞자리에 등장하는 첫 번째 영화다. 최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마주한 배성우는 “시나리오를 흥미롭게 읽었고 제작자가 내 결정을 끝까지 기다려 줘서 출연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변신’에서 그는 구마 사제 중수를 연기한다. 악령에 씐 한 소녀를 구하지 못한 트라우마로 오랜 시간 고통받아 온 중수는 그 악령이 사람의 모습으로 형 강구(성동일)의 가족 앞에 나타나자 다시 사제복을 입는다. ‘검은 사제들’과 ‘사자’ 등 구마를 소재로 다룬 영화들도 떠오르지만 ‘변신’은 가족애를 정서적 구심점으로 삼아 차별화한다. 배성우는 “중수는 구마사제 이름을 빌린 ‘삼촌’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구마사제 중수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악령을 퇴치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사실 그는 공포영화를 무서워서 잘 보지 못한다고 한다. 십 수년 전 ‘엑소시스트’ 감독판을 극장에서 본 뒤 후유증을 톡톡히 겪었다. “당시 한옥에 살고 있었는데, 집이 어찌나 으스스하게 느껴지던지. 영화 본 날 ‘오늘 밤은 엄마랑 같이 자야겠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더군요. 내 돈을 쓰면서 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나 싶어서 그 뒤로 공포영화를 즐겨 보진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공포영화에 출연을 하게 되니, 어떻게 하면 관객을 더 무섭게 할까 연구하게 되더군요.”

‘변신’의 초기 시나리오에서 중수는 냉소적인 성격이었지만 배성우에게 맡겨진 뒤 인간적인 고뇌를 품은 따뜻한 캐릭터로 새로 디자인됐다. 배성우는 구마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라틴어 대사도 익혔다. 악령이 중수의 모습으로 나타나 가족을 교란시키는 장면에선 라틴어 기도문을 거꾸로 읊어야 했다. 배성우는 “원래 대사를 굉장히 잘 외우는데 거꾸로 읽는 라틴어 대사는 도무지 외워지지가 않아 고생깨나 했다”고 털어놨다.

사실상 1인 2역 연기인 셈인데 배성우는 미묘한 변화로 둘 사이를 오가며 관객을 교란시킨다. “악령 연기가 더 재미가 있긴 해요. 표현에 힘을 얹을 수 있으니 부담도 덜하고요. 재미있게 놀자는 마음으로 연기했어요.”

배성우는 “배우의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구마사제도, 악령도, 배성우 특유의 자연스러움이 실려 있어서 마치 눈앞에서 마주한 현실인 듯 생생한 실감으로 다가온다. 그는 “연기할 때 멋을 부리는 걸 경계한다”며 “어떤 의도가 연기에 들어가는 순간 관객은 가슴이 아닌 머리로 정서를 받아들이게 되고 작품의 매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배성우는 20대 초반 대학로에 입성해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서 활약하다 마흔살 전후로 영화와 드라마를 시작했다. 배우로 살아 온 시간도 어느새 30년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에게 연기는 “일이자 취미”다. “캐릭터의 감정이 잘 표현됐을 때 가장 재미있고 즐겁다”고 한다. ‘변신’ 이후에는 새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 개봉 대기 중이고, ‘출장수사’ 막바지 촬영도 한창이다. “배우는 두 가지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캐릭터로서의 매력, 그리고 평소 삶에서 비롯된 개인적 매력. 이 둘을 제 안에서 잘 융화시키고 매끈하게 줄타기 하는 게 저의 숙제가 아닌가 싶어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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