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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거미는 도시에서 가장 쉽게 관찰할 수 있는 거미이다. 눈에 잘 뜨이는 곳에 삼중으로 된 거미줄을 쳐 놓는다. 노란색과 검은색, 빨간색이 알록달록하게 뒤섞인 모양의 암컷이 거미줄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거미줄 구석에 두세 마리의 수컷이 쪽방살이를 하고 있다.

아무도 없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귀뚜라미 소리가 가득 울린다. 도시 한복판에, 사방을 콘크리트로 두른 공간에서 맞닥뜨린 귀뚜라미 소리는 비현실적이다. 순간, 귀뚜라미가 있을 법한 구석진 바닥이 아니라 스피커가 있을 법한 천장을 올려보았다. 혹시 입주민을 위한 가을맞이 이벤트인가?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란 나에게 지하주차장에 가득한 귀뚜라미 소리는 낯설다. 하긴, 불과 수년 전 초가을 논길을 걷다가 “어디서 쌀통 냄새가 나지?”라는 말을 내뱉을 정도였으니. 그랬던 내가 동네를 돌아다니며 생명을 관찰하고 글을 쓰고 있으니, 세상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도시에도 다양한 생명들이 살아간다. 하지만 많은 도시민들에게 도시 속 생명들은 인간을 위한 장식품이거나 쾌적한 삶을 방해하는 훼방꾼이다. 나의 태도도 그 언저리에 있었다. 이런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은 우리 주변을 살아가는 생명 하나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서부터다.

산이나 숲에 가면 훨씬 다양한 생명들을 보겠지만, 그곳을 찾아간 그 시점의 모습밖에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일상에서 주변 생명들을 관찰하다보면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도시 속 자연 관찰의 큰 장점이다.

가로수로 심어진 벚나무는 4월의 상춘객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1년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꽃이 질 때쯤 나뭇잎이 나오는 모습, 태양빛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가지를 뻗고 있는 모습, 그 태양빛으로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 열매를 키우는 모습, 잎자루 작은 혹에 꿀을 담아 개미를 유혹해 나뭇잎을 지키는 모습, 겨울을 견디기 위해 애써 만든 나뭇잎을 떨궈내는 모습, 나뭇잎을 떨구기 전에 조금이라도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엽록소를 만들지 않아 잎을 붉게 물들이는 모습이 펼쳐진다. 그들의 1년을 보고나면 4월의 화려한 벚꽃도 달라 보인다. ‘새끼를 낳기 위해 저리도 화려한 꽃을 피우고 있구나.’

제자리에 가만히 있는 식물의 1년은 쉽게 볼 수 있지만, 늘 돌아다니는 동물의 일상을 훔쳐보기는 어렵다. 다행히도 도시에는 거미가 살고 있다. 거미는 도시에서 한살이를 관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동물이다.

내가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지금부터 한 달 동안이 무당거미를 관찰하기 가장 좋은 때이기 때문이다. 무당거미는 도시에서 가장 쉽게 관찰할 수 있는 거미이다. 눈에 잘 뜨이는 곳에 삼중으로 된 거미줄을 쳐 놓는다. 노란색과 검은색, 빨간색이 알록달록하게 뒤섞인 모양의 암컷이 거미줄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거미줄 구석에 두세 마리의 수컷이 쪽방살이를 하고 있다. 오늘부터 한 달간 매일 그 거미줄 앞을 지나다보면, 성장을 위해 자신의 몸을 지켜주던 단단한 외골격을 벗어내는 모습을, 암컷이 탈피하느라 힘이 빠져 축 늘어져 있을 때 그 틈을 타서 잽싸게 짝짓기를 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가여운 수컷 거미를 볼 수 있다. 한 달 후면 만삭의 몸이 되어 빵빵하게 부푼 무당거미가 거미줄에 걸린 낙엽 하나를 떼어내기 위해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내려와 애쓰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날이 추워져 더이상 무당거미가 보이지 않을 때, 근처 벚나무 줄기에 거미줄로 잘 감싸놓은 무당거미의 알을 볼 수도 있다. 그렇게 겨울을 견디고 5월이 되어 벚나무에 잎이 가득할 때가 되면 알집 안에서 새끼들이 깨어나 서로의 살길을 찾아 흩어지는 광경을 볼 수도 있다. 그 새끼가 다시 자라 온갖 풍파를 이겨내고 어미가 되는 모습까지를 보고 나면 거미가 달라 보일 것이다. 아, 베란다 구석의 거미줄이 더 골칫덩어리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거미줄을 치우는 것이 망설여질테니. 결국엔 치우겠지만.

최성용 도시생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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