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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음주문화

베트남 하노이 대표 관광지 호안끼엠의 맥주거리 풍경. 하노이 시민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맥주로 한 여름밤의 더위를 식히고 있다. 지난 6월 베트남 국회는 대대적인 ‘음주문화 개혁’을 추진했지만, 오후 10시~익일 오전 8시까지 술 판매를 금지하는 ‘야간 음주 금지법’은 결국 통과 시키지 못했다. 주류 업계와 관광업계의 반발이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노이=정민승 특파원

동남아 여행 중 시원한 맥주 한잔 마시고 싶을 때 제동이 걸리는 나라들이 더러 있다. 이슬람 문화 특성상 술을 금기시 하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주류 판매 시간, 장소 등에 제한을 두고 있는 싱가포르가 그렇다. 베트남은 이런 면에서 천국 같은 나라다. 길거리 현지 식당에 앉으면 단돈 2만동(약 1,000원)에 웬만한 맥주를 다 맛볼 수 있고, 약간의 돈만 추가하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풍족한 음식과 많은 술을 즐길 수 있는 나라가 베트남이다. 직장 회식 자리에서는 술 잘 마시는 사람이 회사에 충실한 사람으로, 열정 넘치는 동료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베트남이 최근 ‘알코올 피해 예방법’을 신설하고, 내년부터 ‘음주문화 도이머이’에 들어간다. 베트남 개혁ㆍ개방 정책인 도이머이(쇄신) 이후 30년 가까이 성장세를 거듭하던 현지 주류시장도 긴장하는 분위기다.

내년부터 ‘禁, 禁, 禁’

베트남 국회가 지난 6월 통과시킨 법안을 보면 향후 일반 국민 생활과 사회 전반에 적지 않은 변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7개 항목에 걸쳐 36가지 행위에 대해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부이 시 로이 국회 부의장은 법안 통과 직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라며 “새 법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는데 시간은 걸리겠지만, 보다 건강하고 안전한 베트남을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부터 법안을 추진했던 인물이다. 국회 출석 의원 450명 중 408명이 찬성표를 던져 법안은 가결됐다.

내년 시행되는 이 법은 베트남의 음주 문화와 관련, 13가지 행동을 금하는 일명 ‘알코올 피해 방지법’이다. 그중 단연 돋보이는 부분은 전면적인 음주운전 금지다. 관련 법은 있었지만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뒤섞여 달리는 탓에 단속이 쉽지 않아 유명무실했다. 지금까지는 사고가 난 뒤에야 음주운전으로 처벌받았지만, 이번엔 아예 날숨이나 혈중에 알코올이 ‘포함’돼 있을 경우 불법이 된다.

이와 관련 현지 매체들은 “음주운전과 관련해 타협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특히 차나 오토바이를 가져온 손님이 술을 마셨을 경우 업소 주인은 손님에게 음주운전이 불법이 된다는 사실을 상기 시켜 줘야 하고, 동시에 다른 교통수단을 불러줘야 한다.

식사와 술을 함께 팔고 있는 호찌민시의 한 식당 주인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단속이 이뤄질지는 봐야겠지만, 이건 장사하지 말라는 이야기와 같다”라며 “우선은 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각 업소와 주류업계, 관광업계의 반발로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주류 판매를 금지하는, 야간 주류 판매 금지 법안은 부결됐다.

7년 동안 술 소비 배로 늘어

TV와 라디오 등에서 술 관련 광고가 엄격하게 제한되는 것도 특징이다. 알코올 도수 15도 이상의 술 광고는 앞으로 원천 금지되고 5.5도 이하의 맥주 광고도 오후 6~9시 황금시간대를 피해서만 할 수 있다. 다만 외국 스포츠경기 생중계방송에 끼워져 들어오는 술 광고는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이 외에도 내년부터는 18세 미만에 대한 주류 판매, 권유가 금지되는 것은 물론이고, 유치원, 학교, 병원의 반경 100m 이내 식당과 매점에서는 술을 팔 수 없다.

술과의 전쟁을 벌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베트남이 강하게 나오게 된 배경에는 무엇보다 급격한 술 소비 증가에 있다. 영국 의학저널 란셋에 따르면 베트남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술 소비가 늘고 있는 나라다. 2017년 기준 1인당 술 소비량은 8.9리터로,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은 수준은 아니지만 2010년 소비량 대비 배에 가까운 89.4%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급격한 술 소비 증가 이유로 △비교적 낮은 주세 △용이한 술 접근성 △과도한 주류 광고 문제를 거론하며 베트남 정부에 특단의 대책을 요구했으며, 이번 법안 제정에 큰 역할을 했다.

쩐 티 쯔엉 작가는 보건부가 주최한 알코올 피해 예방 세미나에서 “술을 마셔도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자제하던 게 과거의 음주문화였지만, 요즘엔 사업 관계로 사람을 만나고 스트레스를 푸는 과정에서 술을 경쟁적으로 마신다”라며 “베트남의 음주문화가 달라졌다”고 한탄한 바 있다. 과거 베트남에서는 주종 불문 ‘석 잔 이상은 위험’이라는 말이 불문율처럼 지켜졌지만, 최근엔 무시되거나 그 잔의 크기를 키워 더 많은 술 소비가 합리화되는 게 현실이다.

“안정적 성장 위해 통제 필요

주류 소비 증가는 주로 개발도상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긴 하지만, 베트남의 경우 그 빠른 속도로 인해 사회적 피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음주운전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베트남 보건부에 따르면 교통사고 40%가량이 음주운전과 관련돼 있으며, 그 사고로 매년 약 4,000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또 술 소비 증가에 따른 간암 환자도 급증 추세에 있는데, 50~69세 사망 남성 10%가 알코올성 간암을 앓다 죽었다. 이는 세계 평균보다 3배 이상 높은 수치이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로, 복지 확대에 애를 쓰고 있는 나라다. 그 일환으로 2020년까지 의료보험 적용률을 80%까지 늘리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이번 ‘알코올 피해 방지법’ 신설은 음주에 따른 건강 문제, 차량 증가로 대형화하는 음주운전 사고를 줄임으로써 이에 따른 부담을 덜어보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노이ㆍ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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