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심탄회’서 멀어져 간 이인영 원내대표의 100일

입력
2019.08.16 04:4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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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이후 공개발언 12만 2,000자 분석… 나경원 아닌 황교안 최다 호명

연설과 모두발언을 통해 본 이인영 원내대표 100일의 화두는. 그래픽=신동준 기자
연설과 모두발언을 통해 본 이인영 원내대표 100일의 화두는. 그래픽=신동준 기자

‘허심탄회(虛心坦懷)한 정치를 바랐으나 요지부동(搖之不動)에 그쳤다.’ 15일 원내대표 취임 100일을 맞은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임기는 이렇게 요약된다. “유연한 진보와 합리적 보수가 혁신을 통해 공존하는 길”로 나아가자고 호소했지만, 그는 야당과 싸우느라 바빴다. 상대를 잘못 맛난 탓일까, 여당 원내대표인 그가 보다 유연하지 못했던 때문일까. 이 원내대표의 발언을 분석해 지난 100일을 돌아봤다.

본보가 첫 당선 인사(5월 8일) 이후 94일간 공개석상에서 한 연설과 모두발언(총 74건ㆍ약 12만 2,000자ㆍ2만 8,000 단어)을 분석한 결과, 이 원내대표가 가장 자주 반복한 추상어는 ‘정상화’와 ‘정상’(124회)이었다. 그는 ‘동물 국회’라는 오명을 남긴 여야의 패스트트랙 폭력 사태를 수습하고 국회를 정상화할 책임을 떠안고 임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국회 정상화 협상에 예상보다 오래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그가 ‘정상화’와 ‘정상’을 입에 달고 지낸 이유다. 뒤를 이은 추상어(처리, 대응, 기대, 정치, 협상, 요구)도 대부분 국회 정상화를 촉구하는 맥락에서 등장했다.

이 원내대표는 7월 3일 첫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공존의 정치’를 강조한 이후 ‘공존’을 39차례 입에 올렸다. “유연한 진보와 합리적 보수의 공존” “남과 북의 평화와 번영의 공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포용하는 공존”을 내세워 한국당을 설득하기도, 압박하기도 했다. 요즘 국회 상황을 보면, 그가 절박하게 외친 ‘공존’들은 허공으로 흩어진 듯하다.

이 원내대표가 가장 많이 호명한 인물은 황교안 한국당 대표(56회)였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9회)보다 6배나 많이 언급했다. 황 대표가 패스트트랙 충돌 이후 한국당의 장외 투쟁과 대여 공세를 주도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원내대표가 협상 상대인 나 원내대표를 ‘배려’한 측면도 있다. 이 원내대표가 황 대표를 직접 공격하며 날을 세운 것은 결과적으로 여야 협상을 더디게 만들었다.

연설과 모두발언을 통해 본 이인영 원내대표 100일의 화두는. 그래픽=신동준 기자
연설과 모두발언을 통해 본 이인영 원내대표 100일의 화두는. 그래픽=신동준 기자

구체어 가운데 이 원내대표가 가장 자주 언급한 것은 ‘국회’ ‘경제’ ‘국민’ ‘정부’ ‘추경’ ‘민생’ 등의 순이었다. 이 원내대표의 취임 일성은 “민생에 몰두하겠다”였다. 민주당 원내대표단을 ‘민생 원내대표단’으로 불렀고, 한국당은 ‘민생 챙기는 코스프레’를 하는 ‘민생포기당’이라고 비판했다. 그렇게 쌓인 ‘민생’의 사용 횟수는 180회에 달한다.

이 원내대표의 주요 정치 화두인 ‘노동’은 38회 언급되는 데 그쳤다. 반면 ‘중소기업’을 포함한 ‘기업’은 89회 거론했다. ‘노동자’는 18회, ‘김용균’은 1회였다.

이 원내대표는 미사여구 없는 간결한 화법을 구사한다. 여느 정치인과 달리 사자성어를 별로 쓰지 않는 그가 가장 많이 거론한 건 ‘허심탄회’(7회)다. 야당을 향해 ‘터놓고 협상하자’는 맥락에서다. 야당을 상대하는 이 원내대표의 마음이 그만큼 답답했다는 얘기다. ‘표리부동’ ‘요지부동’ ‘무법천지’ 등도 야당 공격 때 종종 썼다.

종합하자면, 이 원내대표는 ‘타협의 말’보다 ‘대결의 말’을 더 많이 쓴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학자는 “한국당 지도부가 외부 강성 지지자의 영향을 크게 받는 최근 상황에서 여당 지도부가 청와대나 정부를 대신해 대야 공격의 선봉에 서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이 원내대표가 돌아봐야 한다”며 “이 원내대표의 남은 임기는 원칙을 중시하는 그가 협상력과 정치력도 충분한 정치인임을 입증해야 하는 위기이자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터분석 박서영 solucky@hankookilbo.com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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