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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 신정자씨 그림 시작 1년 만에 전시회 2번, 수익금은 동사무소에 기부 

아마추어 화가인 신정자씨가 자신의 그림 전시회가 열리는 경북 포항시 북구 여천동 복합문화예술공간 청포도다방에서 스케치북에 직접 그린 그림을 설명하고 있다.

“치매예방에 좋다고 해서 시작했다가 전시회까지 열게 됐습니다.”

느즈막히 발견된 숨겨진 재능에 본인도 놀란 듯 했다. 치매예방을 위해 우연히 시작한 그림 덕분이다. 색연필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던 팔순 할머니는 1년 만에 전시회까지 열게 된 배경을 이렇게 소개했다. 경북 포항 지역에선 아마추어 화가로 제법 소문난 신정자(80) 할머니 얘기다. 6일 경북 포항북구의 복합문화예술공간인 청포동다방 전시회장에서 만난 신 할머니는 직접 자신의 그림을 즐거운 표정으로 소개했다. 신 할머니는 이 곳에서 지난 5일부터 10일까지 ‘신정자 할머니의 인생동화전’이란 타이틀 아래, 30여점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 전시회는 평생 단 한 번도 정식으로 미술을 접해보지 않은 신 할머니의 재능을 눈여겨본 포항문화재단 직원들이 마련했다.

청포도다방에 걸린 그의 작품은 만화 캐릭터에서부터 동화책 삽화와 신문이나 잡지 광고에서 유심히 본 내용으로 채워졌다. 그림 제목도 없다. 다만, 그의 그림엔 유독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인 화가 에바 알머슨의 모작이 많았다. 집 안에 걸린 달력 그림이 에바 알머슨의 작품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신 할머니의 미술도구는 동네 문구점에서 산 작은 스케치북과 대형마트에서 1만원을 주고 구입한 50색 색연필이 전부다. 하지만 일명 ‘갓바위’로 불리는 경북 경산시 와촌면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을 그린 그림을 보면 음영까지 정교하게 사실주의적으로 표현해 사진으로 착각할 정도다.

신정자 할머니가 그린 경북 경산시 와촌면 갓바위 그림.

그가 화가로 입문하게 된 건 손녀 영향이 컸다. 계기는 지난해 여름 집에 놀러 온 손녀 김은솔(30)씨를 위해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올려놨다가 깜빡하고 불을 낼 뻔했던 사건 때문이다. 할머니의 증상을 감지한 손녀가 “치매엔 그림 그리기가 좋다”며 손에 쥐어준 볼펜으로 난생 처음 그림을 그려낸 게 동기부여로 작용한 것. 실제, 주방매트의 캐릭터를 똑같이 흉내 낸 할머니의 그림 실력에 놀란 손녀는 한달음에 집 근처 문방구로 달려가 색연필과 스케치북을 구해왔다.

신 할머니는 “9남매의 둘째 딸로 태어나 다른 형제들보다 바느질을 잘한다는 칭찬을 받은 적은 있지만 그림을 그려보기는커녕 주변에 미술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며 “평생 먹고 살기 바빠 그림그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손녀 덕분에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림 그리기에 재미를 붙인 할머니의 생활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 가야 하는 병원 대기실은 늘 지겨운 곳이었지만 그림을 시작한 후부터는 잡지 속 그림을 볼 수 있는 갤러리로 변했어요. 신경통으로 잠 못 드는 밤이 많았지만 그림에 집중하면서 6개월간 약도 거의 복용하지 않게 됐습니다.” 할머니는 그림으로 인해 건강 회복과 함께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흐뭇해했다.

신정자 할머니가 지난 5일 복합문화예술공간인 경북 포항시 북구 여천동 청포도다방에서 아들 김응태(58)씨와 자신이 그린 그림을 둘러보고 있다.

신 할머니는 올 1월 ‘그림을 잘 그리는 할머니’로 소문이 나면서 포항의 한 카페에서 처음으로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그림 애호가들이 주는 대로 10여 점의 작품을 판 그는 수익금 50만원 전부를 동사무소에 기부했다. “그림을 잘 그렸다고 칭찬해주는 것만 해도 감사해서 좋은 일에 썼어요.” 애초부터 그의 머리 속엔 그림으로 수익을 올릴 생각은 없었다. 다만, 다음 생을 기약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다시 태어난다면 제대로 그림을 배우고 싶어요. 우리 손녀나 젊은이들도 재능을 맘껏 펼 수 있도록 건강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포항=글·사진 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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