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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분쟁지역] 아프간 평화협상 입김 키우려 하는 파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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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통령 후보’ 아프간 정보국 전직 수장 암살시도와 파키스탄 총리의 미국 방문
지난달 28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발생한 ‘아프간 그린 트렌드(AGT)’라는 정당 사무실에 대한 차량폭탄 공격은 폭발에 뒤이은 약 6시간의 총격전이 끝나고서야 상황이 종료됐다. 아프간 내무부는 “최소 20명이 사망하고 50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이번 공격에서 사실상의 암살 타깃이었던 AGT의 대표 암룰라 살레는 긴급 대피해 목숨을 건졌다. 이튿날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살레는 “동료 20명을 잃었지만 다시 싸워야 할 이유도 20가지는 된다”고 말했다.
이번 공격이 던진 충격파는 남다르다. 인명피해 규모가 매우 컸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살레라는 인물이 아프간에서 갖는 대내외적 입지가 공격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살레는 1990년대 후반(1996~2001년)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했던 이른바 ‘탈레반 1기’ 시절부터 ‘대(對)탈레반 전선 북부동맹’ 소속으로 활동해 온 인물이다. 그는 다음달 28일 예정된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노리고 출마한 아슈라프 가니 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나선 부통령 후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살레의 가장 눈에 띄는 이력은 정보(intelligence) 분야다. 그는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아프간 정보기관인 ‘국가안보국(NDS)’의 국장을 지냈다. 당시 무섭게 재결집하던 탈레반 세력과 알카에다 잔당 소탕 작전에서 그는 ‘정보 수집’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파키스탄으로 NDS 요원들을 보내 알카에다 지도자들을 추적하는 것도 그의 주요 임무 중 하나였다. 2011년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북쪽으로 약 120㎞ 거리에 있는 도시 아보타바드에 머물다 미국 특전사 부대의 급습 작전으로 숨진 오사마 빈라덴의 위치는 이미 그보다 4년 전에 살레의 정보국에 의해 거의 간파됐었다. 2007년 NDS는 빈라덴의 은신처를 만세라 지역으로 추정했는데, 그의 실제 소재지에서 불과 19㎞만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정치적 차원에서나 안보적 측면에서나 안티-탈레반 노선이 선명했던 게 그의 ‘생애 이력’이다 보니, 탈레반의 전략적 배후 세력이라 할 수 있는 파키스탄, 특히 파키스탄 군과 정보국(ISI)에 대한 살레의 비판은 늘 거침이 없었다. 예컨대 2008년 9월 8일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파키스탄 정보국인 ISI가 (아프간에 대한 여러 공격의) 배후라는 증거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파일로 쌓여 있다”고 답했다. 이어 ‘ISI 내 일부 깡패 같은 분자(rogue element)들이 있다고 보는가’라는 물음에도 다음과 같은 대답을 내놨다. “파키스탄 군은 매우 프로페셔널한 군대다. 그들이 ISI의 중추 세력이고, 이 조직의 일부 ‘깡패 분자’들이 아프간 공격을 조종한다고 보지 않는다. 프로페셔널한 조직에 깡패 분자들이란 없다. 그들이 무엇을 실행하면 그 조직의 결정이고, 그들의 정책에서 나온 것이다.”
살레의 ISI 비판은 지난해 유사한 지적을 한 미국 국무부 보고서가 나온 이후에도 계속됐다. “탈레반은 ISI가 지원하는 테러리스트”라거나 “파키스탄이 탈레반 지원을 거두지 않는 한 아프간에 평화는 없다”는 살레의 발언에서 보여지는 입장은 언제나 확고하다. 현재 진행 중인 미국과 탈레반의 평화 협상에 대해서도 그는 강한 거부감과 비판을 자주 표해왔다.
살레 암살 시도로 풀이되는 이번 공격에 대해선 아직 아무도 배후를 자처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프간 안팎에서 ISI와 탈레반을 의심하는 시각이 지배적인 건 바로 이런 배경 때문이다. 살레의 NDS 국장 재임 시절 유엔아프간지원단(UNAMA) 부대표를 지낸 캐나다 출신 외교관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는 이번 공격의 배후를 ISI로 확신하면서 다음과 같은 단도직입적인 트윗을 올리기도 했다. “ISI가 암룰라 살레를 반복적으로 겨냥하는 건 치명적인 실수다. 수천만의 아프간 시민들은 아프간에 대한 파키스탄의 폭력적 개입을 잘 알고 있다.”
ISI는 파키스탄의 정보기관 4곳 가운데 유일하게 해외정보 수집 기능을 하는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파키스탄의 대외 정책은 상당 부분 ISI에 의해 좌지우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육ㆍ해ㆍ공 3군 간부들이 핵심 요직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군 정보국’으로 불리기도 한다. ISI에 대한 군의 장악력이 보다 강화된 건 1971년 중장급 장성들이 국장을 맡으면서부터다. 1971년은 파키스탄이 동(東)파키스탄을 잃은, 그리하여 ‘방글라데시’라는 신생국이 탄생한 해다. 인도가 동파키스탄의 독립전쟁을 전폭 지원한 탓에 ‘인도-파키스탄 3차 전쟁’으로도 불리는 이 역사적 대사건은 파키스탄의 대인도 편집증이 더욱 강해지는 계기가 됐다. 파키스탄의 여러 외교 정책은 인도라는 숙적을 늘 염두에 둬야 했고, 아프가니스탄 역시 파키스탄의 대인도 정책에 있어 지렛대 역할을 해 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미국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의 2013년 보고서 ‘무시무시한 삼각관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그리고 인도’의 저자 윌리엄 댈림플은 “아프간 분쟁을 미국(외세)에 반대하는 탈레반의 싸움이라는 관점으로만 보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나 파키스탄이 아프간 탈레반을 지원하는 현실은 인도의 영향력에 휩싸이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지적한다. 아프간 전문가인 파키스탄 기자 아흐메드 라시드는 이미 2010년 예일글로벌(미국 예일대의 온라인 잡지) 기고문 ‘파키스탄과 아프간의 엔드 게임’에서 “미군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군이 아프간에서 점진적 철수를 준비하는 가운데, 이웃나라들이 아프간에 대한 영향력 행사와 우위를 점하려는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아프간이 인도와 파키스탄의 대리전 무대로 부상하고 있다는 말이다. 라시드는 파키스탄 지원 그룹들(탈레반, 하카니 네트워크 등)의 인도 시설 공격을 두고 “파키스탄이 아프간 분쟁 해결 프로세스에서 보다 큰 목소리를 내려 한다는 걸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아프간 탈레반이 인도를 꼭 적으로만 간주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이는 아프간 탈레반과 파키스탄의 관계가 ‘상호 전략적 필요에 의해 설정된 것’이라는 분석에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이번 AGT와 살레에 대한 공격, 그리고 지난달 하순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의 미국 방문은 맞물리는 측면이 없지 않다. 7월 22~24일 칸 총리의 방미 순방길에는 군복 차림의 파키스탄 육군 참모총장 카마르 자비드 바즈와와 파키스탄군 공보국(ISPR) 대변인 아시프 가푸르, 푸른색 양복 차림의 ISI 국장 파이즈 하미드가 동행했다. 이들은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만난 데 이어, 펜타곤(미 국방부)으로 가서는 리처드 스펜서 당시 국방장관대행, 마크 밀리 육군참모총장,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까지 두루 면담했다. 군사외교장을 방불케 한 이들 만남의 핵심 의제는 바로 아프간 평화 협상이었다. 지난달 23일 미 국무부는 성명을 통해 “미국과 파키스탄은 아프간 평화 프로세스와 대테러 작전에 있어 파키스탄의 중대한 역할을 인지하고 두 나라가 공감하는 우선적 과제들을 진척 시켜 나가는 데 함께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월 1일 정초부터 파키스탄을 거짓말쟁이로 모는 트윗을 날리고, 같은 해 9월 파키스탄에 대한 군사원조 중단을 선언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는 이번 양국 정상 간 만남에선 확연히 달라졌다. 아프간에서 발을 빼려는 미국으로선 탈레반에 엄청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파키스탄이 다시 필요해진 시점이 됐다. 파키스탄 대표단의 방미를 앞두고 있던 지난달 2일, 미국은 파키스탄 남서부 발로치스탄 지방의 분리독립 반군인 발로치스탄해방군(BLA)을 ‘외국인 테러리스트’로 지정했다. ‘미국이 파키스탄에 선사한 선물’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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