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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최태규 대표
“야생동물 가두는 바람직한 사례, 이제 한국에도 만들어야 할 때”
‘행동풍부화’ 해먹도 제작… 실내동물원ㆍ 동물카페 위험성도 지적
지난 4월 충남의 한 사육곰농장에서 오물이 뒤섞인 철창 안에서 사육곰이 물끄러미 바깥을 바라보고 있다.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제공

“같은 종의 반달가슴곰인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세 부류로 확실하게 구분됩니다. 수백억 원을 들여 지리산 등에서 복원 중인 곰과 동물원에 전시되는 곰, 그리고 웅담 채취를 위한 사육곰입니다.”

사육곰은 사육 후 재수출하면 농가 수익원이 될 수 있다며,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1년 러시아 등지에서 수입됐다. 그러나 한국이 1993년‘멸종위기 야생동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가입하면서 단 한 마리도 수출해보지 못한 채 수출길이 막혔다.

그 사이 사육곰들은 웅담 채취를 위해 도축되는 경우만 제외하고는 평생 철창을 벗어날 수 없는 신세가 됐다. 그마저도 국내 웅담 시장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유지비가 많이 든다는 농장주들 푸념 속에 개사료로 얄궂은 생을 연명한다.

사육곰 농가는 사육곰 정책을 폐지한 정부에 폐업지원금을 요구하지만, 정부는 예산부족을 이유로 수입금지와 대대적인 중성화 사업을 2017년까지 진행했다. 이를 통해 한때 1,400여 마리였던 사육곰은 현재 500여 마리까지 줄었고, 자연스럽게 사라질 운명이다.

그런데 올해 들어 남은 사육곰들 마저 평생 철창 생활을 해야 하는 게 맞냐며 우리 사회에 질문을 던진 이가 있다. 전국 사육곰 농장과 동물원을 돌며 곰들에게 편안한 잠자리를 만들어주고 다니는 최태규(39) 수의사. 그의 최종 목표는 사육곰들이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생추어리(sanctuaryㆍ인간에게 붙잡히거나 구조된 야생동물들이 자연사할 때까지 여생을 보내거나 재활을 돕는 시설) 조성이다. 최씨는 “야생동물을 가두는 바람직한 사례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얼마나 더 풍요로워야 관심을 가질 여유가 생기나요
최태규 수의사 등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행동가들이 국내에 조성할 야생곰 생추어리 벤치마킹 차원에서 지난해 11월 찾은 베트남에 위치한 애니멀스 아시아 재단이 운영하는 생추어리. 곰들이 이곳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다.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제공

어릴 적 개구리와 뱀을 키울 만큼 야생동물이 좋아 ‘만날 동물만 만지고 살면 좋겠다’며 2001년 수의학과(건국대)에 진학했다는 최씨. 대학시절 역시 남들처럼 개와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도 좋았지만, 야생동물 소모임에 나가고 야생동물 발자국 찾으러 다니는 게 더 즐거웠다고 한다. 2007년 졸업 후 경북 예천군에 동물병원을 개업해 생계전선에 뛰어들었지만 ‘재미’가 없었단다.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며 2016년 돌연 영국 유학 길에 올라 동물행동학 및 동물복지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온 게 올해 초다. “독성학을 전공한 스승님은 실험동물들에게 평생 마음의 빚을 느끼셨고 제게 동물 복지란 것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라며 최씨는 유학길에 오른 계기를 설명했다.

국내 사육곰들을 위한 생추어리 조성에 생각이 미친 계기는 유학 당시 불가리아 친구와 대화를 나누면서다. 유럽연합(EU)의 불곰서커스를 금지정책으로, 동유럽의 서커스단 불곰들이 갑자기 갈 곳을 잃게 되면서 불가리아 당국이 직접 생추어리 조성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후 자연스럽게 한국 사육곰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러자 대뜸 그 친구가 ‘한국은 잘 사는 나라니까 더 좋은 시설이 있지 않냐’는 거에요.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의 목표는 구체적이다. 5~6년 후에 10만㎡(약 3만평) 가량 면적에 사육곰 180여 마리가 편히 지낼 수 있는 생추어리를 만드는 것이다. 본보기가 될 만한 베트남의 곰 생추어리 몇 곳과 현재 남은 국내 사육곰 500여 마리 중 생추어리 개장 때까지 자연적으로 줄어들 개체 수 등을 종합해 나온 결과다.

최태규 수의사가 지난달 26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국내 생추어리 조성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최필선 동그람이 PD ww5654@naver.com

하지만 평균 수명이 20~25년인 곰에게 필요한 넓은 땅과 많은 운영비, 전문인력 수급까지 만만한 게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연대를 했다. 그의 뜻에 동료 수의사과 동물보호활동가들이 힘을 보태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라는 비영리동물보호단체가 구성됐다. 또 녹색연합과 동물권행동 카라 등 동물보호단체와 대학생 등 자원봉사자들까지 힘을 보태면서 이제 목표를 위해 한걸음씩 나가고 있다.

첫걸음은 몰수동물 보호시설 설치다. 몰수동물 보호시설은 전국 31개 사육곰농장 가운데 일부가 불법으로 사육곰들을 번식시키다 적발돼도, 보호시설이 없어 몰수 조차 제대로 못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환경부가 시설 설계예산 3억6,000만원을 신청했는데 현재 재정 당국이 심사를 하고 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불법 번식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과 사육곰 자연 종식의 지연을 막기 위해선 이 시설이 설치가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다.

생추어리 조성 후보지는 충청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각각 한 곳씩 물망에 오르고 있다. 최씨는 “자치단체장의 최종 결정 등이 남아 있어, 지역명 공개는 힘들다”면서도 “지난해까지만 해도 사육곰은 엄연한 사유재산이라며 관련 계획이 전혀 없다던 정부의 태도 변화도 조금씩 감지된다”고 했다. 곰사육을 장려하다 한 순간에 폐기한 정부가 농가로부터 사육곰을 매입할 예산이 없다면 생추어리 관련 예산이라도 편성해 일정 부분 책임을 지라는 목소리가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씨는 “지자체가 부지를 제공하면 환경부가 나머지 관련 비용을 대는 방식으로 교감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인간과 야생동물 모두 행복한 공존을 위해
지난 5월말 전남 보성군의 한 사육곰 농장에 해먹을 설치하자, 곰들이 신기한 듯 해먹을 살펴보고 있다.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제공

사육곰의 편안한 여생을 위한 장기 계획이 생추어리 조성이라면, 해먹 만들기는 생추어리가 조성될 때까지 사육곰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지낼 수 있게 하려는 조치다.

한국은 특유의 보신문화 때문에 중국과 함께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웅담이 유통되는 나라다. 법적으로 웅담 채취는 생후 10년 이상 사육곰에게만 가능하다. 즉 사육곰 대부분이 10년 이상 좁은 공간에서 지내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아, 한 자리에서만 왔다갔다 하는 등 비정상적인 행동(정형행동)을 하다 생을 마감한다. 사육곰 농장에 해먹을 설치하는 것은 평소 야생곰들이 나무에 올라 나뭇가지들을 덧대고 잎을 깔아 자신들만의 침실을 만들어 잠을 자는 습성을 이용한 것이다. 본디 야생동물인 사육곰이 오랜 철창생활로 느끼는 지루함 때문에 정신적인 고통을 받는 만큼, 야생에서 보이는 건강하고 자연스런 행동이 최대한 나타날 수 있도록 하는 ‘행동풍부화 작업’의 하나다.

폐소방호스를 이용해 공주대 특수동물과 학생 등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만드는 해먹은 지금까지 전남 보성군 사육곰농장 등에 7개가 설치됐다. 그는 “최근 8개의 해먹을 더 만들어 놓았다”며 “설치를 원하는 사육곰 농장과 행동풍부화를 원하는 동물원 등에 해먹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곰 이외 다른 야생동물을 위한 활동은 계획하지 않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최근 실내동물원과 동물카페의 위험성에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복합쇼핑시설이나 상가건물 내부에서 운영되는 실내동물원은 생태적 습성을 고려하지 않은 사육환경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관람객과의 무분별한 접촉으로 동물복지에 심각한 훼손이 발생할 뿐 아니라 인수공통전염병 감염과 안전사고 위험까지 있다며 실내동물원 규제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했다.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대표와 함께 인도주의 수의사 모임인 ‘휴메인벳’대표로도 활동하는 그에게 실내동물원은 또 다른 사육곰 농장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그는 “동물과 사람의 공존 차원에서 점차 기존 동물원까지 동물들의 야생성을 살려주는 흐름이 강해지는 추세”라며 “이런 측면에서 보면 실내동물원은 엽기적이고 가학적이며 변태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태무 동그람이 팀장 santafe29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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