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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청률 4% JTBC 드라마 ‘보좌관’이 보여준 정치 드라마의 숙제 
JTBC 드라마 '보좌관'에서 여당 원내대표 송희섭(김갑수ㆍ오른쪽) 의원을 보좌관 장태준(이정재)이 이끌고 의원실로 향하고 있다. 송 의원은 국회 밖에 진을 친 시위대와 실랑이를 벌여 행색이 엉망진창이 됐다.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쇼였다. JTBC 제공

배우 이정재가 12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 드라마가 있다. 드라마 ‘추노’로 유명한 곽정한 PD가 연출했고, 영국 BBC 원작보다 낫다는 평을 받은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 이대일 작가의 극본을 바탕으로 했다. 굵직한 스타에 실력파 제작진이 뭉친 종합편성(종편)채널 JTBC 새 드라마 ‘보좌관’은 방송가의 기대작이었다. 이정재가 국회의원 수석보좌관 장태준을 연기한다는 설정도 흥미를 끌기 충분했다. 동물 국회, 식물 국회라는 비아냥 속에서 이전투구하는 정치인들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 그들의 그림자인 보좌관을 통해 정치인들의 생존기를 그린 점도 눈길을 잡았다.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이란 부제도 거창해 보였다.

기대했던 ‘잭팟’은 터지지 않았다. ‘보좌관’은 지난달 29일 방송된 6회에서 시청률 4.0%(닐슨코리아)에 그쳤다. 같은 달 14일 방송된 1회 시청률 4.4%보다 오히려 0.4%포인트 떨어졌다. 지난 5월 25일 5.8%의 시청률로 소리 소문 없이 막을 내린 JTBC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보다 시청자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방송 초반, 시청자의 공감대 형성에 실패한 결과다.

‘보좌관’엔 감정을 이입할 캐릭터를 찾기 어렵다. 회마다 긴박한 사건 전개로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게 흘러가지만, 드라마와 시청자의 거리감은 좁혀지지 않는다. 한국일보 대중문화 담당 기자들이 ‘보좌관’을 계기로 국내 정치 드라마의 문제와 숙제를 짚어 봤다.

양승준 기자(양)= “장태준이 국회의원이 되려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이유에 공감이 안 된다. 정치적 야망의 계기가 선명하지 않으니 캐릭터가 타고난 권력 지향적 인물로 비친다. 주인공은 알 수 없는 사명감에 휩싸여 앞만 보고 달리기만 하고 그걸 지켜보면 피로감이 든다. 시대와 맞지 않은 인물 설정 같다 할까. 1980년대 나올 법한 영웅 드라마 같다.”

JTBC 드라마 '보좌관'에서 강선영(신민아ㆍ왼쪽)의원과 다른 의원의 보좌관 장태준은 연인 사이로 나온다. JTBC 제공

강진구 기자(강)= “속도감 있는 전개는 좋은데, 디테일이 아쉽다. 정치적 역학 관계로 사건을 해결할 것처럼 흐르다 마지막엔 갑작스레 확보한 자료로 난제를 풀어 정치 드라마로서의 톤도 흔들린다. 정치 갈등이 도식화되고 단순하게 표현됐다. 정치권의 음모 메커니즘을 좀 더 단단하게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김표향 기자(김)= “드라마를 보니 정계와 연예계는 참 닮았다. 한 명의 스포트라이트를 위해 그의 뒤에서 여러 스태프가 지원한다. 정치 무대 아래 보좌관을 집중 조명해 새로웠다. 용병술도 흥미롭다. 다만 장태준이란 보좌관이 전지전능한 능력을 지닌 듯해 비현실적이다.”

강= “아는 여당 국회의원 보좌관에 ‘보좌관’을 봤냐고 물었더니 국회의원보다 주도권을 쥔 보좌관이 어디 있냐며 웃더라. 드라마처럼 고급 정보를 지녔다면 국회의원하고 맞상대하는 보좌관도 있다곤 한다. 전반적으로 의원실의 역학관계를 잘 옮겼다는 평이다. 국회에서 인턴을 해 봤다. 청문회 준비할 때 ‘장관님!’처럼 느낌표까지 적어 질의 관련 문서를 만든다. 의원실의 물밑 작업을 잘 담았다.”

양= “현실적이라 해도 ‘그들만의 세상’이다. ‘보좌관’은 너무 여의도 얘기다. 전문직 드라마로서 시청률이 안 나오는 이유다. tvN에서 인터넷 포털 사이트 업계를 다룬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검블유’)’를 방송한다. “사람들은 검색창 앞에서 가장 진실해지죠”(네티즌의 욕망), “이젠 내 탓 그만하고 남 탓하고 싶어요. 날 증오하는 일 그만하고요”(구조적 문제를 개인 능력의 부재로 몰아붙이는, 청년 취업 문제의 부조리 연상) 등의 대사로 시대의 공기를 담는다. 그래서 같은 전문직 드라마라도 ‘검블유’는 남 얘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김= “이정재의 연기 변신은 돋보였다. ‘하녀’(2010)를 비롯해 ‘도둑들’(2012), ‘관상’(2013), ‘암살’(2015) 등 10여 년 동안 이정재는 늘 현실과 먼 세계에 살았다. 꿈 같은 배우가 모처럼 현실에 발을 딛고 서 새로웠다. 힘 빼고 비교적 자연스럽게 보좌관 역을 소화했다. 다만 강선영(신민아)이란 여성 초선 의원이 너무 모사꾼처럼 그려졌다. 차기 대권 주자도 아니고 초선이 중진 의원에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강= “처음에 잘 어울릴까 싶었는데 신민아가 예상외로 의원 역을 잘 소화했다. 아쉬운 건 이정재와 신민아의 극중 관계다. 남성 보좌관과 여성 의원이 사랑한다. 같은 방송에 출연한 걸 계기로 눈이 맞았다. 정치 드라마니 둘의 관계를 좀 더 정략적으로 그렸으면 어땠을까. 미국 유명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시리즈에서 프랭크 언더우드(케빈 스페이시)와 클레어 언더우드(로빈 라이트)가 각자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부부가 된 것처럼.”

양= “그간 한국 정치 드라마엔 정작 ‘정치’가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1980~200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정치드라마로 손꼽히는 ‘제5공화국’ 시리즈는 권력자의 암투와 정가의 뒷얘기에 집중됐다. 김은숙 작가가 쓴 ‘시티홀’(2009)도 현실 정치와 동떨어졌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시청률은 낮았지만 2015년에 방송된 ‘어셈블리’ 이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보좌관’도 현실 정치에 근접한 것 같다. 무소속 이성민(정진영) 의원과 여당 원내대표 송희섭(김갑수) 의원의 대립 등 의원이 지닌 철학이 어떤 정책적 차이를 만들어 내는지를 보여준다.”

김= “‘보좌관’을 비롯해 ‘60일, 지정생존자’(tvNㆍ1일 첫 방송) 등 정치 드라마가 줄줄이 방송 중이다. 이르면 올가을에 방송할 ‘위대한 쇼’까지 포함하면 올해만 네 작품이다. 내년 총선을 앞둔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듯싶다.”

양승준 김표향 강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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