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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 텐트 주변에 나타난 그린란드늑대. 야콥 빈터 제공

회색늑대는 유럽, 아시아, 북미 대륙에 약 30만개체가 분포하며 지역별로 38개의 아종(생물 분류 단위로 ‘종’의 바로 아래)이 있다. 회색늑대의 아종 가운데 하나로 인간이 약 4만 년 전 가축화한 개도 포함된다. 엄밀히 말하면 늑대와 개는 생물학적으로 같은 종으로 분류된다. 회색늑대의 학명도 실은 라틴어로 개를 뜻하는 ‘canis’와 늑대를 뜻하는 ‘lupus’에서 따온 것이다.

가축화된 개와는 반대로 인간 서식지와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회색늑대 아종도 있다. 그린란드늑대 혹은 북극늑대라 분류되는 아종은 이름에 나타나 있듯 그린란드의 고위도 북극 지역에 서식한다. 원주민도 살지 않는 고위도 북극에 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20세기 무렵 덴마크와 노르웨이에서 북극 여우의 털을 얻기 위해 그린란드 동물 사냥을 시작하면서 늑대의 존재가 알려졌다. 사냥꾼이 원했던 동물은 여우였지만, 늑대가 여우를 잡아먹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사냥꾼들과 경쟁 관계에 놓였다. 게다가 덫을 놓아 여우를 포획하는 과정에서 늑대가 사람보다 먼저 나타나 사체를 뜯어 먹는 일이 많아지자 사람들은 늑대를 죽였다. 1899년부터 1939년까지 최대 약 60마리의 늑대를 잡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독극물 등을 이용한 비공식적 사례를 합치면 훨씬 많은 늑대가 사살됐을 것이라 추정된다. 그 결과 그린란드 동쪽 지역에선 1932년 무렵엔 10마리 정도만 남았고, 1939년 이후 더 이상 늑대가 보이지 않게 됐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늑대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이후 1960년 그린란드에서 상업 목적의 수렵이 금지되고, 1974년엔 북동쪽에 대규모 국립공원이 지정되면서 인간에 의한 위협이 사라졌다. 하지만 한번 사라진 동물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마지막 늑대가 관찰된 지 40년이 지난 1978년 4월, 북동 지역에서 비로소 한 쌍의 늑대가 발견됐다. 뒤이어 늑대를 봤다는 소식이 들렸고, 관찰지점은 점차 남쪽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시작된 늑대 개체군이 다시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1992년엔 23마리가 3개의 무리로 나뉘어 사는 것이 관찰됐다. 미국 마커드페테르센 박사의 보고에 따르면, 이 지역에 풍부한 소과 포유류인 사향소를 먹이로 삼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 텐트 주변에 나타난 그린란드늑대. 야콥 빈터 제공

늑대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린란드 북쪽에 남아있던 소수의 개체군이 먹을 것이 부족해지자 남쪽으로 내려왔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해마다 북동그린란드를 횡단하는 덴마크 해군 정찰대의 보고에 따르면 1979년부터 1998년까지 개썰매가 지나는 동안 총 21건의 늑대 기록이 있다. 특히 1989년 3월부터 약 한 달간 늑대 한 마리가 560㎞를 따라오기도 했으며 1996년엔 730㎞를 쫓아다니다 개썰매를 끌던 개와 싸움이 붙어서 사살됐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늑대는 정찰대가 다니는 길을 따라 남쪽으로 향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인간에 의해 쫓겨난 늑대가 다시 인간에 의해 서식지로 돌아오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필자는 2017년부터 해마다 그린란드 생태조사를 하며 몇 차례 늑대를 만났다. 허기져 보이는 녀석들은 연구자가 만들어놓은 캠프 주변을 맴돌았다. 분변을 주워 무얼 먹었는지 분석해보니, 조류 깃털과 레밍 뼈가 많이 나왔다. 약 20년 전 미국 연구팀이 조사했을 땐 사향소의 잔해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번 연구에선 거의 확인되지 않았다. 최근 그린란드의 급격한 온난화에 따른 환경 변화로 인해 사향소 개체군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란 전망이 있었는데, 이에 따라 주요 먹이원이 줄어든 것으로 추측된다. 힘들게 돌아온 서식지에서 그린란드늑대는 다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걸까? 이번에도 역시 인간에 의한 영향인 것 같아 미안함과 걱정이 앞선다.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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