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경기 용인시 기흥구 한 전원 마을을 2009년 촬영한 사진(왼쪽)과 10년이 지난 19일 촬영한 사진이 대조적이다. 울창했던 산림은 사라졌고 그 자리에 주택 단지가 정상 부근까지 조성돼 있거나 부지 조성을 위해 파헤쳐진 채 방치되고 있다. 네이버지도 항공뷰ㆍ드론 촬영
동일한 마을을 다른 방향에서 2009년 촬영한 사진(왼쪽)과 19일 촬영한 사진. 네이버지도 항공뷰ㆍ드론 촬영
14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의 야산이 개발 부지로 조성되면서 벌거숭이가 돼 있다.
지난달 경기 용인시 기흥구의 주택 부지 조성 공사 현장에 베어진 나무 기둥이 쌓여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난개발의 실상은 심각했다. 산 정상 부근까지 타운하우스 단지가 들어섰고, 계단 모양으로 깎인 비탈은 황토를 드러낸 채 여기저기 방치돼 있었다. 땅 위에선 대형 공사 차량이 일으킨 흙먼지와 중장비의 굉음이 끊임없이 뒤엉킨다. 용인에선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9일 드론으로 촬영한 경기 용인시 기흥구의 한 전원 마을의 모습을 10년 전 항공 사진과 비교해 봤다. 고즈넉한 마을 주변으로 울창했던 산림은 그사이 대규모 주택 단지가 들어서거나 부지 조성을 위해 파헤쳐지고 있었다. 푸른 산, 깊은 숲의 삭제는 경관상의 문제를 넘어선다. 나무 없는 비탈이 산사태 위험을 높이고 건설업체의 난립은 주민들의 재산권은 물론 삶의 질까지 위협하고 있다.

 ◇급경사에 쌓아 올린 전원주택의 꿈 

용인 난개발의 특징은 산지의 윗부분부터 개발이 시작되는 기형적 형태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보로도 오르내리기 힘들 만큼 가파른 진입로가 형성되고 높이 5~6m 이상의 거대한 옹벽이 잇따라 들어서 있다. ‘전원’에 어울리지 않는 경관도 문제지만 흙의 압력을 이기지 못한 옹벽이 기울어지거나 불룩해지는 등 구조상의 문제가 더 심각해 보인다.

용인에서 급경사 개발이 가능한 것은 타 지역에 비해 현저히 완화된 경사도 기준 때문이다. 경사도 기준은 일정 경사도를 넘는 경우 개발을 불허하는 일종의 난개발 방지책인데 용인시는 2013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이 기준을 크게 완화했다. 인접 타 도시의 경사도 기준이 보통 15° 정도인 데 비해 용인시는 지역에 따라 17.5°~25°까지 개발을 허용해 온 것이다. 이 기준에 따라 용인시 전체 산지의 98%가 개발이 가능해졌고, 땅값이 가장 저렴한 가파른 산지부터 깎여나가기 시작했다. 용인시 난개발조사특별위원회에 따르면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1,700여건, 310만㎡ 넓이에 걸쳐 개발이 이루어졌다.

경사도가 낮은 곳과 높은 곳의 평균치로 허가를 내주는 평균 경사도 산정 방식과 산 정상이나 능선 표고보다 높게 책정된 표고 기준 또한 난개발을 부추겼다.

14일 옹벽 쌓기 공사가 진행 중인 경기 용인시 기흥구의 한 전원주택 단지.
14일 경기 용인시 기흥구의 한 타운하우스 단지 옹벽이 앞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가파른 경사지에 단지가 조성된 탓에 5~6m 높이의 거대한 옹벽이 잇따라 들어서 있다.
17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의 한 유치원 뒤 야산이 깎인 채로 방치되고 있다.
 ◇맨땅 드러난 산비탈… 커지는 산사태 위험 

17일 용인시 처인구의 한 유치원 뒷산. 부지 조성 공사가 중단된 지 5년째인데 허가 기간은 계속 연장되고 있다. 빗물이 토사에 스며들지 않도록 덮어둔 방수포는 이미 찢기고 해져 그 기능을 못하고 있었다. 집중호우가 예상되는 여름철을 앞두고 주민들은 산사태가 일어나지 않을까 불안해한다.

평화로운 삶을 찾아 이주한 주민들 또한 인근에서 계속되는 개발 공사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기흥구에 사는 어운경(64)씨는 “집 뒤편에 숲이 있어서 이곳으로 왔는데 2년 전부터 그 숲에서 타운하우스 공사가 시작되면서 평화가 사라졌다. 공사 소음에 먼지까지 아주 괴롭고 비가 많이 오면 산사태가 날까 봐 불안하다”고 하소연했다.

 ◇한술 더 뜬 ‘쪼개기’ 꼼수 

규모가 100가구 정도 되는 기흥구의 한 주택 단지 주민들은 쓰레기를 버리려면 차량으로 실어 날라야 한다. 단지 내엔 쓰레기 처리장이 없기 때문이다. 진입로는 차량 두 대가 겨우 비껴 지날 수 있을 정도로 폭이 좁다. 이처럼 기반 시설이 부족한 주택 단지가 용인에선 흔하다. 원인은 ‘쪼개기’라는 업체의 꼼수와 지자체의 수수방관이다.

단지형 단독주택을 개발할 경우 개발 면적이 5,000㎡를 넘거나 30가구 이상이면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하고 최소 폭 6m 이상의 진입로를 확보하는 등 관련 규제를 따라야 한다. 바꿔 말하면 그 미만의 규모는 이 같은 규제를 받지 않는다. 일부 개발 업체가 이를 악용, 전체 면적을 작게 쪼개 건축 허가를 받는 수법으로 기반 시설을 갖추는 데 드는 비용을 아끼고 있다.

‘쪼개기’ 개발 사례. 일부 개발 업체들은 규제를 피하고 공사비를 절감하기 위해 하나의 단지를 여러 개의 사업체 명의로 쪼개 건축 허가를 받는 ‘쪼개기’ 수법을 활용하고 있다.
공사 도중 시공사가 도산한 경기 용인시 기흥구의 한 주택 단지에 14일 수분양자들이 걸어 놓은 현수막이 눈길을 끈다.
17일 경기 용인시 기흥구의 한 마을 진입로를 차량이 통과하고 있다. 100가구가 넘는 마을로 진입하는 유일한 길인데도 차량 한 대밖에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폭이 좁다.
 ◇업체 난립으로 부실공사, 도산 피해도 

규제의 허점을 틈타 시공 능력이 안 되는 업체가 난립하면서 부실공사 가능성이 높아지고 도산으로 인한 재산권 피해 또한 적지 않다. 수지구의 타운하우스에 입주한 한 주민은 “시공사가 돈이 없어서 공사 폐기물 처리를 제대로 안 해 여기저기 못이 굴러다니고 천장에서는 물이 샌다. 그런데도 단지 옆에 또 공사를 시작했다가 허가가 안 나 중단된 상태”라고 전했다.

난개발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식한 용인시는 지난해 시장 직속으로 난개발조사특별위원회를 발족하고 진입로 경사도 15%(8.53°)미만, 옹벽 높이 3m 제한 등 허가 기준을 강화했다. 그러나 이미 허가를 내준 경우에 대해서는 마땅한 대책이 없다. 최병성 특위 위원장은 “난개발은 소수 개발업자에게만 이익이 돌아가고 각종 문제들은 주민들이 떠안다 결국 지자체에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며 “쪼개기와 같은 꼼수를 강력하게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의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박서강 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정예진 인턴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wldms4619@hankookilbo.com

14일 경기 용인시 기흥구의 야산이 개발 부지 조성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돼 있다. 걸레처럼 찢긴 방수포가 널려 있다.

web_cdn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