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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세월은 흘러가도/ 굽이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산 자여 따르라 (…) –백기완의 옥중 장편시 ‘묏비나리’-

□ 1982년 4월 어느 날 소설가 황석영의 광주 운암동 집에 10여명이 모였다.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2주기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넋풀이 형식의 노래극을 만들기로 했다.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노동자의 누이’ 박기순의 두 달 전 망월묘역 영혼결혼식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대미를 장식할 합창곡은 당시 광주 대학가의 대표 가객 김종률이 썼고, 가사는 황석영이 백기완의 시에서 몇 구절을 골라 다듬었다. 첫 녹음은 훗날 ‘5ㆍ18 PD’로 유명해진 오정묵이 가정용 카세트 녹음기를 이용했다. 이렇게 탄생한 ‘임을 위한 행진곡’은 불법 테이프로, 필사한 악보로, 구전으로 전국 곳곳을 적셔나갔다.

□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다른 수많은 민중가요처럼 따라부르기 쉬운 4박자 곡이면서도 단조 구성으로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억누르는 비장함을 담아 냈다. 노랫말 역시 앞 부분에선 죽음과 절망의 고통을 고스란히 담았다가 마지막 후렴부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에선 “누구라도 해일처럼 용솟음치는 뜨거움을 느끼게”(음악평론가 강헌) 한다. 짙은 서정성과 비장미 가득한 투쟁가는 세월이 흐르면서 한 시대의 위안이자 회고로 남았다. 2002년 월드컵 때 ‘붉은 악마’의 응원가에 포함됐던 걸 보면 이젠 민주화의 대표적 문화유산이라 할 만하다.

□ 지난 14일 홍콩의 ‘범죄인 인도 법안’(중국 송환법) 반대 집회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렸다. 기타를 들고 무대에 오른 한 참가자는 ‘우산 혁명’으로 개사한 노래의 후반부를 한국어로 불렀고 큰 환호성이 터졌다. 정근식 서울대 교수에 따르면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대 중반부터 태국ㆍ대만ㆍ중국ㆍ말레이시아ㆍ홍콩ㆍ미얀마ㆍ일본 등 아시아 주요국에 전파돼 민주ㆍ노동ㆍ평화ㆍ인권의 상징곡이 됐다. 그런데도 정작 한국에선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9년간 ‘임=김일성’이라는 등의 색깔 공세에 시달렸으니 이보다 더한 코미디가 없다.

양정대 논설위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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