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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은 ‘사고 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집 공간 사람’ 기획을 수요일 격주로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경기 양평군 강상면 송학리 주택단지에 살구색 벽돌로 지어진 주택 일곱 채가 옹기종기 들어섰다. 스튜디오 에스빠씨오 제공

아이를 시골에서 키워 보면 어떨까. 대도시에 사는 부모라면 한번쯤 해보는 생각이다. 아이가 아파트와 학원을 오가며 휴대폰을 끼고 살기보다 자연을 벗삼아 친구들과 자유롭게 뛰어 노는 장면을 꿈꾼다. 그러나 꿈은 꿈일 때 더욱 아름답기 마련이다. 주택은 춥거나 덥기 일쑤다. 손이 많이 간다. 자연의 품에 안기면 좋으련만, 아이는 논밭 풍경이 지루하다며 집 안을 맴돈다. 멀리 떨어진 시내 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아이에게 친구를 만나게 해 주기도 쉽지 않다. 이런 시행착오를 경험한 서울 출신 부모들이 묘안을 냈다. 8세 아들을 키우는 강정아(45)씨 부부를 비롯한 총 7세대(25명)가 경기 양평군 강상면 송학리에 각자의 집을 지어 모여 사는 마을을 만들었다. 공동 육아에 최적화된 마을 이름은 ‘생각(生閣ㆍ마을을 짓는다는 뜻)’이다.

경기 양평군 강상면 송학리의 ‘생각’의 집들은 1층 창문을 통해 툇마루와 마당으로 나갈 수 있다. 스튜디오 에스빠씨오 제공
 
 ◇일곱 집이 모인 느슨한 육아 공동체 

생각 마을의 대표 강정아씨는 2015년 서울에서 양평으로 집을 옮겼다. 자연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어서였지만,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시골 주택에서의 생활은 상상과는 달랐다. 강씨는 “경쟁시키지 않고 아이의 행복을 추구하는 유치원의 전원 교육은 좋았지만, 유치원이 끝나고 나면 아이가 할 게 딱히 없는 게 고민이었다”며 “결국 서울에서처럼 학원에 보내거나 집에서 혼자 놀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온 다른 이웃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서울로 3시간씩 출퇴근하는 것을 감수하고 왔지만 아이가 부모를 기다리는 시간만 늘어났다” “학교가 끝나면 차로 아이들 태워서 각자 집에 돌아가기 바쁘다” “크고 오래된 주택을 관리하는 게 너무 힘들다…” 나이도, 직업도, 경제 상황도 취향도 다른 부모들은 고민을 나눈 끝에 ‘아이들을 위해’ 함께 모여 살기로 마음을 모았다.

강씨 아이를 보낼 초등학교 근처에 마침 평당 150만원짜리 주택 단지가 나왔다. 7필지를 구입해 각 세대가 집을 짓기로 했다. 한 필지당 대지 면적은 약 330㎡(100평)에, 세대당 연면적을 125~148㎡(38~45평) 씩으로 나누었다. 분양하는 빌라나 전원주택처럼 똑같은 집에 사는 건 다들 싫다고 했다. 각 세대의 성향과 특징을 살린 집이 필요했다. 설계를 맡은 고석홍ㆍ김미희 소수건축 소장은 “여러 건축주가 각자의 집을 함께 짓겠다고 찾아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며 “육아라는 공통점에 맞춰 ‘ㄱ’자 형과 ‘ㄷ’자 형, ‘ㅁ’자 형 등 세 가지 기본 구조를 만들어 고르게 하고, 각 세대의 구체적 요구사항을 인테리어로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경기 양평군 강상면 송학리 ‘생각’의 집은 각 세대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큰 창을 내고 마당과 쉽게 연결될 수 있게 설계됐다. 스튜디오 에스빠씨오 제공

그렇게 지은 집 7채는 언뜻 보기에도 한 식구 같다. 외관에 밝은 살구색 벽돌을 써서 통일감을 준 덕분이다. 조부모와 동거하는 한 세대만 단층집이고, 모두 2층집으로 올렸다. 김 소장은 “다세대 주택을 지을 때는 층간 소음, 사생활 노출 등 문제 때문에 어떻게 하면 각 세대를 잘 분리할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보통”이라며 “생각 마을은 반대로 어떻게 해야 세대 간 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육아를 위한 마을인 만큼, 아이들이 모여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과제였다. 집과 집을 연결하는 토굴을 만들고 집집마다 놀이 시설을 설치하자는 의견이 오갔다. 하지만 결국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집을 짓는 과정에서 아이들을 만나게 했더니 같이 있기만 해도 즐거워하더라고요. 스스로 놀이를 찾아 내기도 하고요. 아이들은 자기 집만이 아니라 마을 전체를 집이라고 생각하더군요. 그래서 집에는 최소한의 조건만 갖추기로 했어요. 아이들이 바깥에서 실컷 놀다 돌아오면 편안하고 따뜻하게 쉴 수 있는 기능만 갖춘 집이요.”(김미희 소장)

경기 양평군 강상면 송학리 ‘생각’ 집들의 내부에는 중심에 큰 주방이 있다. 세대별 취향에 맞춰 인테리어를 했다. 스튜디오 에스빠씨오 제공
 
 ◇집 중심에 있는 주방과 안팎이 열린 마당으로 소통 

각 집의 1층 중심에는 공통적으로 주방이 있다. ‘ㄱ’자형 집에 사는 강정아씨의 주방은 30㎡(9평)로, 거실(10㎡)보다 크다. 1층(90㎡)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가장 큰 공간이다. 김 소장은 “전원 주택에 살면 음식을 시켜먹거나 밖에 나가서 사 먹기 힘들기 때문에 집에서 음식을 많이 해 먹게 된다. 그래서 주방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집집마다 마당과 연결되는 창문이 많고 크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대개 1층 전면을 유리창으로 채웠다. 고 소장은 “전원주택은 마당이 중요하지만 보안 문제 때문에 집 뒤로 마당을 내거나 담을 높이 올려 닫힌 공간이 되고 만다”며 “생각 마을의 집들은 구성원들이 서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안팎을 열린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집마다 마당의 형태도 제각기 다르게 만들었다. 마당을 가로지르거나 빙 둘러 들어가는 집이 있는가 하면, 집을 통과해야 마당과 마주할 수 있는 집도 있다. 다양한 동선은 주택 단지의 단조로움을 줄여 줬다.

집의 외부는 비슷하지만 내부는 세대별로 다르다. 조명과 자재, 가구 등 인테리어에서 세대별 개성을 드러냈다. 따뜻한 느낌을 좋아하는 집에는 원목 가구를 많이 뒀고, 현대적 느낌을 강조하고 싶은 집에는 색감이 강한 가구를 많이 썼다. 간접 조명을 고른 집도 있고, 작은 전구를 많이 사용한 집도 있다. 어느 집은 침대를 들이는 대신 단을 올려 침실 공간으로 쓰고 있고, 다른 집은 단을 내려 거실 층고를 높였다. 고 소장은 “세 가지 구조 안에서도 층고나 공간 배치 등을 세대별로 다르게 디자인해 아파트나 빌라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냈다”면서 “집의 분위기와 스토리를 만드는 것은 결국 건축주들”이라고 말했다.

경기 양평군 강상면 송학리 ‘생각’ 집들의 내부는 조명, 자재, 단차 등을 활용해 세대별 개성이 뚜렷하다. 스튜디오 에스빠씨오 제공
경기 양평군 강상면 송학리 ‘생각’ 집 외부 테라스에서 아이들이 모여 영화를 보고 있다. 스튜디오 에스빠씨오 제공
 
 ◇아이만큼 어른이 달라지는 집 

생각 마을의 어른들은 대부분 서울로 출퇴근하는 맞벌이 부부다. 이들은 서로 돌아가며 아이들을 돌본다. 정해진 육아 순번은 없는 대신 미술, 국악, 퀼트, 영어, 수영 등 부모의 재능을 살린 공동 육아 프로그램을 짰다. 강씨는 “그날그날 도움이 필요하면 서로에게 부탁하는데, 의외로 잘 굴러간다”면서 “부모들이 아니라 아이들이 함께 놀면서 서로가 서로를 봐주는 시스템”이라며 웃었다.

아이들 때문에 마을을 만들었지만, 더 많이 행복해진 건 어른들이다. “제가 먼저 달라진 게 느껴져요. 서울 백화점에 가면 너무 좋고 화려하고, 예쁜 것 투성이잖아요. 예전에는 사도 사도 더 사고 싶어졌는데 지금은 뭘 사야 할지 망설이다 결국 빈 손으로 오곤 해요. 아이가 백화점보다는 마당, 나무, 노을, 바람, 햇빛 같은 자연적인 것들에서 자극 받는 사람으로 자라면 좋겠어요.”

양평=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ㅁ’자형 주택 1층 평면도. 소수건축 제공
‘ㄱ’자형 1층 평면도. 소수건축 제공
‘ㄷ’자형 1층 평면도. 소수건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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