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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는 1939년 구소련과의 ‘겨울전쟁’ 때 스키를 타고 진격하는 핀란드 부대. 참전 군인들의 결사항전으로 핀란드는 영토를 지켰지만, 국민 10만 명을 잃었다. 김영사 제공

러시아와 국경을 마주한 핀란드는 인구 600만명의 작은 나라다. 호시탐탐 영토를 넘보는 옛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핀란드는 2차 세계 대전 와중인 1939년 결전을 치렀다. 독립은 지켰지만 대가가 너무 컸다. 당시 인구(370만명)의 2.5%인 10만명이 희생됐다. 핀란드는 싸움을 지속하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핀란드는 변화를 택했다. 소련에 맞서는 대신 이용하기로 했다. 소련의 걱정은 서유럽 국가들이 소련을 공격하는 거점으로 핀란드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소련을 안심시키는 전략을 세웠다. 경제적으로 협력했고, 소련에 대한 국내 비판 여론을 잠재우려 애썼다. 그러자 평화가 찾아왔다. 전쟁 공포에서 벗어나 첨단 산업 발전 국가로 발돋움했다. 서구는 소련에 고개 숙인 핀란드를 조롱했지만, 핀란드는 나라를 지키기 위한 유일한 길이었다고 자부한다.

위기의 속성은 늘 찾아온다는 것이다. 개인도 국가도 피할 수 없다. 위기를 어떻게 마주하느냐에 따라 운명은 추락과 번영으로 갈린다. 사회과학 고전 ‘총 균 쇠’를 쓴 세계적 석학 재레드 다이아몬드(82) 미국 UCLA 교수는 ‘대변동 : 위기, 선택, 변화’에서 국가적 위기의 잠재력을 진단한다. 위기를 극복한 6개국의 사례를 살펴보고, 현재 세계가 직면한 위기를 일깨운다. 개인 심리 상담에 활용되는 12가지 분석 틀을 국가에 적용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한국 이야기는 없지만, 책 속 사례는 우리의 고민과 포개진다.

위기 극복의 첫 단계는 ‘인정’이다. 위기의 본질을 정직하게 평가하는 게 우선이다. 다음은 ‘자구책 마련’. 저자는 절대 남 탓을 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자신을 피해자로 여기는 한 대안을 찾을 수 없다. 전면적 변화를 덜컥 꾀하는 건 득보다 실이 크다.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남길지에 대한 선별이 필요하다. 예컨대 핀란드는 자유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지키는 대신 경제적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일정 부분 포기했다.

대변동 : 위기, 선택, 변화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ㆍ강주헌 옮김
김영사 발행ㆍ600쪽ㆍ2만4,800원

저자가 보기에 현대 위기의 핵심은 ‘위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미국과 일본을 집중 비판한다. 일본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경직성이라고 꼬집는다. 고령화 시대 인구 감소로 노동력이 부족함에도 일본은 이민자들을 수용하는 데는 소극적이다. 제국주의 시절 저지른 과거사 범죄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 역시 일본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저자는 경고한다.

미국에 대한 비판은 더욱 신랄하다. 민주주의 첨단의 국가 미국에서 민주주의가 와해되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 돈 많은 후원자를 잡지 못한 정치인은 정치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군비 지출은 증가하는 반면 교육 투자와 재분배 정책은 방치된다. 그러나 미국은 ‘미국은 강하다’며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

“위기를 인정하고 선택적으로 변화하라.” 세계적 석학의 메시지치고는 다소 뻔한가 싶다. 그러나 저자는 그 평범하고 단순한 말이 현실에서 무시되고 있는 것이 위기를 키운다고 경고한다. “위기를 부르는 것은 오만이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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