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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층 이동 어려워진 양극화ᆞ저성장시대
성공 과실 함께 나눠야 진정한 ‘개천 용’
新‘개천 용’ 키워 신실력주의 사회로 가야
2015년 6월, 인천 강화군 양사면 철산리 메마른 논에 반가운 단비가 내렸다. 지독한 가뭄 탓에 누렇게 타들어간 모와 시커멓게 말라버린 농심 속으로 빗줄기가 스며들었다. 왕태석 기자

우리의 화두는 아직도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개천용’은 여러 가지로 정의된다. 좁은 의미로는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고위 권력자,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전문직 종사자, 혹은 고소득자가 된 사람을 의미한다. 서울대 주병기 교수처럼 소득에만 초점을 맞춰 소득 상위 10%를 ‘용’이라 칭하는 경우도 있다. 넓은 의미로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보다 더 나은 직업, 그러면서도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인정받는 안정적 직업을 갖게 된 사람을 의미한다.

하층 사람들이 대거 상층으로 이동하여 좁은 의미의 개천용이 되는 대량의 계층 이동은 인류 역사에서 왕조 교체를 포함한 혁명기에 예외적으로 일어났던 현상이다. 이때에는 개천용이 늘어난 만큼 추락용이 생겨났다. 사회 상층부가 팽창하지 않는 상황에서의 개천용 급증은 동시에 추락용 급증을 의미한다. 계층 이동이 활발하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보면 사회가 역동적인 것이지만, 부정적으로 보면 사회가 불안정한 것이다.

넓은 의미의 개천용은 급증했지만 추락용은 급증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르네상스기, 산업혁명기, 경제 활황기 등 경제 팽창 시기다. 우리가 해방 이후 40여년간 경험한 1990년대 중ㆍ후반까지의 계층 이동은 이러한 경제 팽창기의 일시적 현상이었다. 일제 수탈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 사람들이 힘들게 살던 상황에서 급속한 경제 발전이 이루어졌기에 개천용만 급증하는 현상을 잠시 경험했던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를 포함한 세계는 저성장 시대, 일자리가 줄어드는 성장의 시대, 부의 집중은 더욱 심해지며 계층 이동은 점차 어려워지는 계층 고착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개천용이 되고자 하는 일반인들의 높은 열망에 비해 기회는 줄어들고 계층간 벽도 두꺼워져 좌절감이 커지고 있다. 기존의 용들 또한 추락용이 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대물림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어서 계층 간 갈등과 사회의 불안감 또한 극으로 치닫고 있다.

이러한 시대 흐름에 맞추어 개인의 성공을 의미하는 개천용의 의미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설령 개천용이 늘더라도 승천 후에는 물을 모두 제 뱃속에 가둬두고만 있다면 사회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제 우리 사회가 화두로 삼아야 할 것은 제 뱃속 채우는 개천용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승천하면 비를 내려 세상을 비옥하게 만들 ‘비 내리는 용’을 늘리는 것이다.

개천용이 비 내리는 용이 되게 하려면 계층 이동 사다리를 오르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꼭 가르쳐야 할 것이 있다. 승천하여 용이 되었을 때 자신에게 주어진 명예와 권력, 그리고 부를 자신 노력만의 결실인 것으로 착각하며 독점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책 ‘실력의 배신’에 제시된 것처럼 용이 되기 위해서는 노력만이 아니라 타고난 재능, 부모의 배경, 그리고 운도 따라야 한다. 젊은이들이 훗날 용이 되면 거둔 결실을 세상과 나누겠다는 생각을 갖도록 기르는 것, 주어진 권력과 명예를 사익이 아니라 세상을 위해 사용하도록 이끄는 것, 그것이 우리 교육이 할 일이다.

이와 함께 사회 재설계를 통해 헌법에 명기된 ‘행복 추구권’을 모든 국민이 누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고갈등, 저성장, 양극화, 세계 경쟁 심화 시대에 적합한 계층 이동 사다리는 개천 출신 여부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비를 내리게 할 용이 될 인물인지도 따져 승천할 수 있도록 돕는 기능도 겸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재화 분배 시스템을 만들 때에는 개인들이 최선을 다해 자신 및 세계와의 경쟁에 동참하고자 하는 동기를 유지시킬 수 있는 시스템인지도 꼭 따져보아야 한다. 아울러 계층 추락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의 공포심을 누그러뜨릴 경제적ᆞ심리적 보완책도 필요하다. 개천용을 만들고자 하는 이유를 다시 따져보고, 사다리의 기능을 보완할 때 우리 사회는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실력주의 사회를 넘어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한 신실력주의 사회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박남기 전 광주교대 총장ㆍ대한교육법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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