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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위기 관리 역할로 나선 비대위의 위원장 자리가 공석
한국기원 신임 총재로 유력하게 거론 중인 원로 정치권 출신 인물에 대한 우려 팽배
올해 KB바둑리그의 정상 운영도 현재로선 장담 못해
올해 첫 이사회인 ‘제88회 정기이사회’가 3월12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 2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한국기원 제공

“달라진 게 뭐가 있죠? 솔직히 더 어려워 진 거 아닌가요?”

냉정했다. 한국기원 비상대책위원회 출범 6개월을 앞두고 매겨진 바둑계 안팎의 평가다. 반년 가까이 지난 비대위 체제의 부정적인 진단으로 읽힌다. 실제 한국기원 신임 총재 영입에서부터 올해 KB바둑리그 출범 등을 포함해 시급한 현안들이 산적해 있지만 비대위 행보는 지지부진하다. 오히려 구원투수의 역할을 기대하고 임시 집행부로 들어선 비대위 내부가 더 어수선한 모양새다.

당장, 비대위 수장인 위원장이 공석이다. 지난해 11월말 터진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사태와 맞물려 구성된 비대위는 조상호(69) 나남출판 대표이사를 위원장으로, 김영삼(45) 9단을 사무총장 등으로 선임하면서 출범했다. 하지만 조상호 위원장은 3월말, 석연치 않은 이유로 비대위에서 도중 하차했다. 여전히 한국기원 서류상엔 조상호 위원장이 수장으로 기록돼 있지만 현재는 한상열(71) 부위원장이 위원장 대행 업무를 맡고 있다. 컨트롤타워가 부재 중인 비대위에 적극적인 활동을 기대하긴 어렵단 얘기다.

무엇보다 한국기원 신임 총재 선임은 여전한 난제다. 현재 한국기원 신임 총재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 중인 언론계 출신의 한 원로 정치권 인사 영입 소식에 바둑계 내부에선 벌써부터 술렁이고 있다. 한국기원 소속의 한 중견 프로바둑 기사는 “바둑계 이외의 외풍에서 자유롭지 못한 정치권 인사를 기원의 신임 총재로 모시겠다는 비대위 움직임에 대해 동의할 기사들은 별로 없을 것”이라며 “기원의 신임 총재 임명 문제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프로바둑 기사들과의 공감대 형성과 소통도 한국기원 수뇌부 선정에 중요한 부분이란 지적도 제기됐다. 한 여성 프로바둑 기사는 “전임 비대위원장이 평소에 막말과 고압적인 태도로 문제가 많았다는 건 한국기원은 물론이고 바둑계 내부에 알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며 “기왕이면 젊은 프로바둑기사들과 눈 높이를 맞추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인물이 신임 한국기원 총재로 왔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비대위에선 늦어도 다음달 초까지는 한국기원 신임 총재 추대를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한국기원의 신임 총재 위촉이 아직까지 답보 상태인 올해 ‘KB국민은행 바둑리그’(2018년 총 상금 34억원 규모)와 연관된 게 아니냐는 일부 시선에 대해 강한 반감도 표출되고 있다. 또 다른 프로바둑 기사는 “비대위에서 올해 KB바둑리그 참가 팀 물색에 실패하면서 어려워진 현재 상황을 이번에 기원의 신임 총재로 점 찍은 정치권 인사에게 의지해 해결하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어떻게 해서든 자체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지금 비대위는 다른 외부 인사의 도움에만 의지하려고 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사실, 국내 바둑계의 젖줄인 올해 KB바둑리그의 출범은 현 상태에선 어렵다. 원활한 운영을 위해선 최소 8개팀의 참가가 필수적이란 게 한국기원측 입장이지만 현재는 기준 미달이다. 현재까지 한국기원에 밝힌 올해 KB바둑리그 참가 확정 팀은 6개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한국기원측에서도 올해 상반기내 KB바둑리그 출범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2004년에 8개팀으로 출범한 한국 바둑리그에 이어 2006년부터 7~10개팀으로 운영돼 온 KB바둑리그는 한국 바둑계의 산파 역할을 담당해 온 대표 기전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KB바둑리그 후원사인 KB국민은행 내부에서도 올해 대회에 대한 부정적인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바둑계 내부의 우려 또한 확산되고 있다. 올해 한국기원에서 ‘바둑TV배 마스터스’(우승상금 3,000만원) 대회를 신설했지만 바둑계내의 불안감 해소엔 역부족이다. 한 프로바둑 기사는 “요즘엔 동료들끼리 만나기만 하면 한국기원 신임 총재 문제와 KB바둑리그 이야기만 주로 하고 있다”며 “어린 프로바둑 기사들의 부모들 사이에선 자녀의 장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이 나온다”고 전했다.

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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