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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식 전 청와대 비서실장 “탕평과 통합의 인사 필요”
김우식(오른쪽)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7일 창의공학연구원 이사장실에서 문재인 정부의 성과와 과제에 대해 이충재 논설위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홍인기 기자

김우식(79)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역대 비서실장 가운데 가장 파격적인 인사로 꼽힌다. 보수 성향의 당시 연세대 총장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삼고초려 끝에 비서실장으로 영입했다.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쟁을 해소하도록 도와달라”는 게 유일한 주문이었다. 진보 대통령과 보수 비서실장이란 이질적 조합은 의미가 있었고, 일정 부분 성과도 거뒀다.

10일로 집권 3년 차를 맞은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과제로 탕평과 통합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비서실장 시절 민정수석이었던 문 대통령과 호흡을 함께 했던 김 전 실장은 요즘 안타까운 심정이다. 공교롭게도 이달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10주기이기도 하다. 얼마 전 청와대 사회 원로와의 대화에 참석했던 김 전 실장을 만나 소회와 당부를 들어봤다. 공학 교수 출신으로 과학기술부 장관도 역임했던 그는 현재 창의공학연구원 이사장으로 후세대의 창의 교육에 힘쓰고 있다.

-23일이 노 전 대통령 10주기인데 봉하 마을에 내려가는가.

“매년 봉하 마을에 내려가 참배를 하지만 집사람과 단 둘이 따로 간다. 왠지 정치인들과 어울리기가 싫어서다. 이번에도 설 지나고 내려가 권양숙 여사를 뵈었는데 ‘이번에 내려 오실래요’ 하길래 ‘서거 일 지나고 가겠습니다’고 했다. 여럿이 사진 찍고 하는 게 정치적으로 비쳐져 내키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수석 시절 어땠나.

“착하고 조용한 성품에 한마디로 순둥이였다. 1년 반 있는 동안 마찰이나 갈등을 빚은 적이 없다. 비서실장을 하면서 ‘청와대에는 대통령만 존재하지 파벌은 용납 하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했었고 모두가 충실히 따라줬다. 개인적으로는 문 수석을 몰랐는데, 알고 보니 부인 김정숙 여사하고 집사람이 경희대 성악과 선후배로 잘 아는 사이더라.”

-문재인 정부 2년이 지났다. 총체적 평가를 내린다면.

“문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으로서 가슴이 아프다. 특히 인사 문제가 아쉽다. 탕평과 통합이라는 게 널리 인재를 발탁해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건데, ‘캠코더(대선 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 인사’ 라는 말이 나온다. 물론 대통령으로서 꼭 필요한 사람을 쓰는 건 당연한 권한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쪽만 챙기면 갈등과 분열은 불가피하다. 대통령은 어느 계파의 대통령이 아닌 전체의 대통령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분열과 갈등이 참여정부 때보다 심해졌다고 보나.

“모든 분야에 걸쳐 보수와 진보가 대립하고 있다. 참여정부 때보다 더 구체적으로 싸움판이 벌어진 꼴이다. 지금의 상황은 해결이 쉽지 않지만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 인사 문제도 그렇지만, 최저임금과 비정규직, 주 52시간 등의 정책에서 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패스트트랙 정국으로 정치권도 꽉 막혀 있는데 협치에 대한 요구가 높다.

“지금 정국도 결국 문 대통령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번 원로 대화에서 문 대통령의 언급을 보면 이 부분에 대한 입장이 분명치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확실한 나름대로의 스탠더드가 있을 텐데 그것을 명료하게 밝히지 않고 희석시키려는 화법이었다. 본인이 주관도 있을 테고, 주변에서 영향을 미치는 부류도 있다고 본다. 어쨌든 대통령이 경직된 생각을 갖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쉽게 나서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황교안 대표에 ‘보수 개혁’ 기대감 있었는데 실망
9일 오전 국회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출범 2주년 기념 굿즈 출시 행사에서 공개된 문 대통령 미니어처가 들어간 ‘스노볼’. 연합뉴스
-문 대통령이 ‘적폐 청산 후 협치’를 얘기한 걸로 보면 본격적인 협치까지는 시간이 좀 필요하지 않겠나.

“적폐 청산이 불가피한 점은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수만은 없다. 경제와 북한 비핵화 등 산적한 현안에 전념하려면 시간이 많지 않다. 다시 기회가 생기면 간곡하게 얘기하고 싶다.”

-참여정부 때 노 전 대통령이 보수, 진보 갈등 문제를 해결하려고 대연정을 제안했다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렸다. 만약 지금 문 대통령이 그런 제안을 내놓는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표 체제에서는 노무현을 아예 대통령으로 인정하려고도 안 했던 터라 씨알도 안 먹힐 게 뻔했다. 그래서 진보 진영에서도 반대했던 거다. 하지만 현재 같은 상황이라면 나부터도 그렇고 다수가 환영할 것이다.”

-협치가 어려운 데는 ‘보수 개혁’을 요구한 촛불 정신을 외면하고 극우로 치닫는 자유한국당에도 책임이 있지 않은가.

“물론이다. 자유한국당의 추태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황교안 대표에게 보수 개혁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는데 실망스럽다. 아무리 내부를 의식한다 해도 너무 세게 나가면 외연 확장에 실패하고, 결국 자멸의 길로 가기 마련이다. 투쟁 일변도가 아닌 올바른 보수로서의 길을 간다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줘야 한다.”

-사회 지도급 인사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데 대한 실망감도 크다.

“우리 사회 어른들이 어떤 면에서는 성숙하지 못하다. 정치 지도급 인사들이라면 정파에서 벗어나 국가적 관점에서 할 말은 해야 한다. 여야를 불문하고 모두 모여 토론도 하고 해법도 제시해야 한다. 젊은 세대들이 지도층 인사들에게 뭘 보고 배울 수 있을지 안타깝다.”

-문재인 정부의 가장 아픈 지점이 일자리와 양극화 문제인데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소득주도성장을 포기하는 게 정권의 자존심과 관련된 것이라 쉽지는 않을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실물 경제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게 우선이다. 잘못된 게 없다고 부인해서는 절대 나아질 수가 없다. 당장 국민 생활의 불안을 덜 수 있는 획기적인 두세 가지 조치를 먼저 취했으면 싶다. 최저임금 동결 선언 같은 게 한 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탈원전’이라는 용어도 과장된 측면이 있어 보인다.

“과학자 입장에서 이해가 안 된다. 어차피 몇십 년에 걸쳐 추진해야 할 정책이라면 그냥 ‘단계적 에너지 전환’이나 ‘에너지 믹스’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면 그렇게 파장이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쓸데없이 공격을 당한 측면이 있다. 역대 과학기술부 장관들이 모였었는데 한결같이 펄펄 뛰더라. 김정은은 핵 무장하는데 우리는 무장 해제로 가느냐는 얘기도 나왔다. 우리가 쌓아온 원자력 기술과 인력의 중요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

◇한반도서 전쟁 공포 불식, 어느 정권도 못한 일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청와대 본관 인왕실에서 ‘사회원로 오찬간담회’에 김우식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북한 비핵화 문제도 난항에 빠져 있다.

“대통령과 원로 대화에서 말머리에 한반도에서 전쟁 공포를 불식시킨 데 대해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장 전쟁이 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떠나지 않았다. 오늘의 상황은 이전의 어떤 정권에서도 감히 못했던 것이다. 좀 어려운 과정을 거치더라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꾸준히 진행시켜 나가야 한다.”

-4강 외교, 특히 최근의 한일 관계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얼마 전 주한 일본 대사가 일부 인사를 초청해 식사를 했다. 안 갈 수도 없고 해서 참석했는데 다수가 한일 간에 미래를 위해 협조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새 일왕이 즉위한 만큼 이 기회를 살려 문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아베 총리에게 전화해 직접 만남을 갖지 못할 것도 없다. 두 나라의 리더 그룹이 적극적으로 타협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도 적잖게 나왔다.”

-취임 2년 여론조사를 보면 문 대통령 지지율이 40% 후반대로 나오는데 어떻게 보는가.

“취임 초에 비하면 크게 낮아졌지만 같은 시점의 역대 어느 정권보다 높다. 시간이 지나면 지지율이 떨어지기 마련이나 문 대통령이 하기에 따라서는 다시 크게 높아질 수도 있다. 이렇게 답답한 정국을 확 푼다면 얼마든지 치솟을 기회가 있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 2기’라고도 할 수 있는데 두 정부를 비교한다면.

“아직 객관적인 비교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문재인 정부를 지칭하는 슬로건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YS 때의 ‘문민정부’라든지, 노무현 때의 ‘참여정부’처럼 브랜드가 필요하다. 이제 2년이 지났으니까 현 정부의 정체성을 집약하는 브랜드를 내놓고 그 기치 아래 국정을 펴나가면 문재인 정부의 지향하는 바가 분명해지지 않을까 싶다.”

-3년 차를 맞은 문재인 정부에 조언을 해달라.

“아직 3년이 남았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에 결코 늦지 않은 시간이다. 우리 국민은 영리하고 의식 수준이 대단히 높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국민을 이끌고 앞장 서야 할 사람은 대통령이다. 앞으로 남은 기간 문 대통령이 작심하고 중지를 모아서 해결책을 제시한다면 많은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을 것이다.”

인터뷰=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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