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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부코스키(1920~1994)는 미국 사회의 밑바닥과 현대 도시인의 비행을 그려낸 하층민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번역본으로 읽을 수 있는 그의 시ㆍ소설ㆍ에세이는 그가 쓴 예순 권이 넘는 저작 가운데 적은 일부다. 스물네 살 때 첫 단편소설을 발표하고 서른다섯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를 쓴 그는 사후에 출간된 것까지 합쳐 무려 서른세 권의 시집을 남겼으나, 주지주의적인 영미시의 전통을 좋아하는 나는 그의 시보다 ‘우체국’(열린책들, 2012)과 ‘팩토텀’(문학동네, 2007)같은 소설에 더 열광한다.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모멘토, 2015)는 부코스키가 1991년 8월부터 1993년 2월까지 쓴 일기 가운데 고른 것으로, 작가가 백혈병 진단을 받고 일흔셋에 작고하기 직전까지의 일상이 생생하게 녹아 있다. 이때는 백혈병 선고를 받기 이전이었지만, 죽음에 대한 언급이 잦다. 그때마다 부코스키는 “죽음은 별거 아니다.”라는 식으로 예사롭게 말한다. 이 책을 옮긴이는 죽음을 유무의 문제가 아니라 변화 또는 과정의 문제로 받아들인 부코스키의 생사관을 가리켜 “불교의 생사관을 방불케 한다”고 적었다. 부코스키가 맹렬하게 시와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한 1960년대는 히피의 전성기와 겹친다. 그러므로 그는 당시의 반문화운동이었던 히피로부터 불교와 선(禪)의 생사관을 전수받았던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부코스키의 ‘쿨’한 생사관은 불교에 경도되어서가 아니라, 미국과 같은 개인주의적인 사회에서 취하게 되는 가장 합리적인 태도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예컨대 이 일기에는 그가 목격해야만 했던 두 사람의 죽음이 묘사되어 있다. 한 경우는 “가족 중 어느 누구도 시신을 원하지 않”았고, 또 다른 경우 역시 노인이 죽을 때까지 “친척들이 그를 혼자 버려”두었다. 이처럼 죽음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죽음은 심상한 것이 된다. 쿨한 생사관은 개인주의적인 사회가 내면화시킨 것이면서, 부코스키와 같은 하류계층 사람들이 가진 일종의 아비투스(habitus: 습관)라고 의심해 볼 또 다른 증거도 있다.

하류계층은 ①아이들의 양육(교육)과 ②질병(건강) 일반에 대해 중산층과 전혀 다른 아비투스를 배양한다. 먼저 하류계층은 아이들의 양육에 대해 ‘아이들은 저절로 자란다’는 태도를 갖는다. 즉 아이들의 ‘자연적 성장’을 믿으며 친구들과 골목에서 마구 뛰어놀도록 내버려둔다. 반면 중산층은 아이의 재능과 소질을 ‘집중 양육’한다. 중산층 부모는 아이들의 미래를 기획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아네트 라루가 미국 중산층 가정과 노동자 및 빈곤층 가정의 9~10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부모의 경제적 지위가 자녀의 양육에 어떤 차이를 가져오는지를 연구한 ‘불평등한 어린 시절’(에코리브르, 2012)에 나오는 이야기다.

다음으로 하류계층은 질병 문제에 관해 ‘병원은 병에 걸리러 가는 곳이고, 내 몸은 내가 더 잘 안다’는 식의 태도를 갖는다. 이들은 자신의 몸을 자연에 내맡겨진 ‘자연적 신체’로 규정하는데, 이는 돈이 없기 때문에 미리부터 병원과 의사를 거부하기 위한 것이다. 반면 중산층은 자신의 몸을 의사의 돌봄이 필요한 ‘의학적 신체’로 간주하며 ‘내 몸과 병은 의사와 병원에 맡긴다’는 아비투스를 기른다. 미국의 사회학자 코리 M. 에이브럼슨의 ‘불평등이 노년의 삶을 어떻게 형성하는가’(에코리브르, 2015)에 나오는 이야기다.

아직 하류계층과 중산층의 생사관을 비교한 연구는 보지 못했지만, 부코스키의 쿨한 생사관은 ①과 ②에서 하류계층이 자연을 따르는 태도와 같다. 즉 ‘인간은 죽음 앞에서만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중산층은 하류계층이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죽음을 부적절한(교양적이지 못한) 화제라고 회피할 것이다. 이런 차이는 현재의 삶을 지옥으로 여기며 죽음 이후의 불확실성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믿는 하류계층과, 죽음 이후의 불확실성보다 확실성에 찬 현재의 삶이 만족스러운 중산층의 아비투스에서 온다. 실제로 쉰 살이 되어서야 겨우 집세를 내기 시작한 부코스키는 “끔찍한 건 죽음이 아니라 인간들이 죽기까지 살아가는 삶”이라고 일기에 써 놓았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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