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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아 엄마, 세상에 외치다] <25> 연재를 마치며

6개월 동안 이어진 연재 ‘장애아 엄마, 세상에 외치다’의 마지막 회가 왔다. 지난 6개월을 돌아보면 ‘절반의 성공’이었다고 생각한다. ‘완전한 성공’이었다면 룰루랄라 노래를 부르며 마지막 칼럼을 멋지게 장식했을 텐데 싶은 아쉬움이 반이요, 그래도 일단 시도는 해 본 게 어디냐며 나름대로 의미 부여를 해 보는 게 반이다.

시작은 이랬다. 통합교육을 받던 발달장애인 아들이 학교에서 한 차례 시련을 겪은 후 나는 세상에 발달장애와 발달장애인을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한 매체에 ‘동네 바보 형’이라는 제목으로 아들의 일상을 연재하기 시작했고 큰 호응을 얻었다.

그렇게 2년 넘는 시간 동안 사회 인식의 변화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고 그 과정에서 책도 두 권(‘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푸른숲)’ ‘다르지만 다르지 않습니다(샘터)’)을 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다른 욕심이 생겼다. 아들이 커감에 따라 엄마인 내가 보고 듣고 알게 된 세상이 넓어지면서, 바뀌어야 하는 건 세상의 시각만이 아닌 당장 내 아들의 삶을 좌지우지할 정부의 정책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양수가 터지던 그 날까지 나는 정책을 다루던 정치부 기자였다. 승부 근성이 모락모락 솟아올랐다. 그래, 한번 해 보자. 장애인과 그 가족의 삶을 직접 살아본 적 없는 언론사 기자들은 알고 싶어도 알 수가 없는 장애인 정책의 허점을 내가 한 번 건드려보자!

한국일보는 기획서를 건넨 두 번째 매체였다. 첫 번째 매체에서는 부장 선까지 승락을 받았다가 편집국장 선에서 “미안하지만 연재가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다. 외부 인력이 ‘연재 기사’를 작성해 본 선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일보에서도 처음엔 “연재가 어렵다”는 답변을 했으나, 이 기획을 기사가 아닌 칼럼으로 바꾸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제시됐다. ‘장애아 엄마, 세상에 외치다’는 그렇게 해서 시작이 됐다.

한국일보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지점은 여기다. 장애 전문 매체가 아닌 소위 중앙언론이라 부르는 신문사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원고지 20매에 이르는 큰 지면을 통으로 할애해 장애 관련 칼럼을 연속으로 실었던 시도는 한국일보가 처음일 것이다.

그만큼 사회변화에 능동적으로 빠르게 대처한 ‘젊은’ 언론사였고, 의미 있는 일을 위해 기꺼이 지면을 할애하면서 언론사의 사회 공헌적인 측면에서도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여태까지의 한국일보보다 앞으로의 한국일보에 더 기대가 쏠리는 이유다.

하지만 기사가 아닌 칼럼으로 정책을 비판하려니 곧 한계에 부딪혔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정책의 허점을 지적하고 또 지적하고 계속 지적해야 했다. 장애와 관련한 모든 정책이 나쁜 건 아니었지만 많은 정책은 허점투성이였다. 이러한 허점은 알려지고 이슈화해야 했다. 왜냐면 누군가에겐 재미없고 관심도 없는 단순한 정책에 불과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그 정책이 바로 한 사람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직접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내 아들과 같은 장애인의 삶 말이다.

기사를 통해 비판 또 비판했어야 할 정책은 칼럼이라는 한계로 인해 변죽만 울리고 마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했다. 기사와 달리 매번 다른 주제를 다뤄야 하기 때문에 연속성을 가질 수도 없어 쓰는 사람 입장에선 참 힘들게 6개월을 끌어왔다.

이제 칼럼을 마무리하면서 얻게 된 교훈은 이렇다. “역시 정책은 기사로 때려야 제 맛”이라는 것이다. 칼럼 중단한다고 좋아하고 있을 것 같은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은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결론이냐’며 황당해할 것도 같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결론은 이것뿐이다. 기사로 비판해야 한다. 그것도 무슨 이슈가 있을 때만 한 번씩 크게 건드리는 화제성 기사로는 안 된다. 연속성을 가진 연재 기사를 통해 모든 관련 부처가 귀찮을 정도로 꾸준히 정책을 건드리고 또 건드려야 한다. 그렇게 귀찮을 정도로 건드려도 정책은 아주 조금 바뀔까 말까 한다. 왜냐면 정책은 시스템이 바뀌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변화가 필요할 때 가장 빠르게 대응하는 건 개인이고, 그다음이 소규모 집단이다. 대규모 집단으로 갈수록 시스템이 강력히 구축돼 있어 변화가 더딜 수밖에 없다. 국가라는 한 나라 전체가 대상인 정책은 변화에 가장 둔감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그렇게 느리고 둔감한 정책을 ‘필요에 의한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엉덩이를 걷어차 주는 것. 그것이 언론은 물론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고, 정책 집행자들을 돕는 길이라 생각한다. 엉뚱한 정책을 마련해서 욕만 실컷 먹는 건 그들도 원하지 않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적장애 2급의 내 아들은 올해 11살이다. 학령기의 아들을 키우기 때문에 내 관심의 많은 부분은 특수교육에 쏠릴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의 특수교육은 생각하면 할수록, 깊이 알면 알수록 더 깊은 한숨이 난다. 만일 비장애 학생들의 교육적 환경이 장애 학생들의 특수교육과 같았다면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학부모는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을지 모른다. 그만큼 교육 환경이 부조리하며 열악하다.

많은 장애 아이의 부모들이 학교현장에서 자식의 교육받을 기본권을 위해 싸운다. 더 나은 무엇을 위해서가 아닌 말 그대로 기본권을 위해서다. 그러나 그렇게 싸우는 부모들은 많은 경우 혼자만 ‘이 구역의 싸움닭’이 되곤 한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학교 비위도 좀 맞추고, 교사 비위도 좀 맞추고, 순응하고 살아가는 다른 부모들처럼 좀 그렇게 느슨히 살아가면 좋은데 왜 혼자만 그렇게 싸움닭이 되는가 싶어 성가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아는가? 싸우고 싶어 안달이 난 부모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 그럼에도 싸우는 이유는 하나다. 자식을 위해서다. 단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침범 당하기 일쑤인 내 자식의 기본 중의 기본권리를 찾기 위해서다.

나는 지금 이 시간에도 현장에서 홀로 싸우고 있을 모든 싸움닭들을 응원한다. 장애인 당사자는 물론 당사자의 가족들도 이제는 스스로 목소리를 낼 시기가 왔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은 사람 취급을 못 받아온 게 현실이다. 비장애인인 나는 당연하게 누려온 것들이 장애인인 내 아들에게는 그 무엇 하나 당연하지 않았다. 그것을 내가 장애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됐다.

그러니 이제는 싸움닭 취급을 받더라도 조금 더 목소리를 내도 된다. 사람답게 살게 해 달라, 사람답게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 요구해도 된다. 이제는 그래도 된다. 그런 목소리들에 의해 사회적 약자라 부르는 장애인이 기본권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면, 그 사회에선 사회 구성원 누구라도 당연히 받아야 할 기본권을 누리며 사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이른바 사회안전망이라는 것이 구축될 것이다.

장애는 벼락같이 찾아온다. 그 누구에게도 어느 가정에도 미리 예고를 하지 않는다. 한 개인의 삶에, 한 가정의 구성원에 장애가 벼락같이 찾아왔을 때 장애는 단지 신체기능의 장애일 뿐이어야 한다. 그것이 사회적인 장애, 인생의 장애로까지 이어지지 않으려면 장애 관련 정책이 촘촘히 수립돼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구축된 정책은 현재의 장애인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노화라는 과정을 거치며 그 언젠가 신체기능의 장애를 겪을 우리 모두를 위한 정책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장애인 관련 정책은 남의 일이 아닌 내 자신의 미래를 위한 보험이기도 하다.

정책을 건드려보고 싶었다. 시도를 했다. 절반의 성공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하지만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친정엄마는 나에게 “여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잘라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런 말을 해줬던 엄마가 이제 와 참으로 고맙게 느껴진다. 칼은 뽑았다. 그러나 아직 성에 찰 만큼 무를 자르진 못했다. 그러니 나는 터미네이터의 마지막 대사를 빌려와야겠다. “I’ll be back”.

아들이 커가면서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며 내공을 쌓은 뒤 또 다른 매체에서 또 다른 형식으로 돌아올 것을 기약해 본다. 다음에 돌아올 땐 칼럼이 아닌 기사일 것이다. 그래야 제대로 엉덩이를 걷어찰 수 있다. ‘장애아 엄마, 세상에 외치다’를 마무리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그때를 기다려 본다.

류승연 작가ㆍ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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