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보수’ 윤여준, 인터뷰어가 되다

입력
2019.05.03 11:27
수정
2019.05.07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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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청년들과 인터뷰 전문지 ‘아이브’ 창간

주진형 전 대표, 성한용 기자 등 인터뷰

‘아이브’ 창간호의 표지 인물은 아이브의 멤버이자 인터뷰어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다. ‘인터뷰어 중심의 인터뷰 잡지’라는 정체성을 표현한 것이다. 아이브 제공
‘아이브’ 창간호의 표지 인물은 아이브의 멤버이자 인터뷰어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다. ‘인터뷰어 중심의 인터뷰 잡지’라는 정체성을 표현한 것이다. 아이브 제공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인터뷰어로 변신했다. 30대 청년들과 함께 창간한 인터뷰 전문 잡지 ‘아이브’에서다. 기자 출신인 윤 전 장관은 김영삼(YS) 정부의 청와대에서 대변인도 지냈다.

이달 발행되는 ‘아이브’ 창간호의 주제는 ‘주류 속 비주류’다. 윤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주목 받은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 정치 분야를 주로 취재해온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 북한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 유라시아 대장정을 한 역사학자 이병한 원광대 교수를 만났다. 40여년 만에 저널의 인터뷰를 한 셈이다.

주 전 대표는 인터뷰에서 현 정부를 비롯해 정권마다 강조하는 ‘규제 완화’의 허점을 지적했다. “규제를 풀 때는 정부가 그로 인한 부작용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공유한 후에 해야 하기 때문에 규제를 푼다는 것은 상당한 실력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주 전 대표는 “그런 것 없이 권력을 그냥 놔버리면 말 그대로 무정부 상태가 된다”고 꼬집었다. 관료를 무능하다고 비판했다가도 막상 정권을 잡으면 관료에 기대는 모순도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 부처의 민간 부문 인사 영입을 주장했다.

성 선임기자는 보수의 미래를 두고 윤 전 장관과 의견을 나눴다. 특히 보수의 차기 주자로 여겨지는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을 둘러싼 두 사람의 대화가 흥미롭다.

윤 전 장관은 “유 의원이 너무 TK(대구경북)의식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며 “그렇게 해서 과연 확장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성 선임기자도 “인식에 한계가 있다”며 지난해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할 때 유 의원의 발언을 예로 들었다. 국민의당의 호남지역주의를 지적하기에 ‘유 의원도 대구에서 쭉 정치를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유 의원이 “대구에서 4선을 했지만 지역주의에 매몰된 적은 없다”고 대답하더란 것이다. 윤 전 장관 역시 “의식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브 창간호에 실린 윤여준 전 장관(오른쪽)과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의 인터뷰 사진이다. 통상 인터뷰이에 초점을 맞춰 찍는 인터뷰 사진과는 다르다. 아이브 제공
아이브 창간호에 실린 윤여준 전 장관(오른쪽)과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의 인터뷰 사진이다. 통상 인터뷰이에 초점을 맞춰 찍는 인터뷰 사진과는 다르다. 아이브 제공

정치, 사회, 경제, 북한, 외교, 역사 분야를 넘나들며 4명의 인사를 인터뷰한 윤 전 장관은 “전문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며 “인터뷰어로서 어느 선까지 개입할지 고민이 되는 순간도 더러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브는 인터뷰를 하는 사람인 인터뷰어가 중심인 인터뷰를 지향하는 잡지다. 창간호에서도 인터뷰마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인터뷰 대상)가 대등한 위치에서 마주보는 구도로 찍은 사진을 실어 이 같은 편집 방향을 드러냈다. 인터뷰이의 말을 일방적으로 전하는 것이 아닌, 인터뷰어라는 필터를 통해 아이브가 지향하는 바를 명확하게 전달하겠다는 제작진의 의도다. 송주환 아이브 편집장은 “변죽만 울리는 게 아닌 우리의 시각을 뚜렷하게 밝히는 잡지”라고 말했다. 인터뷰의 주요 대목마다 비중 있게 들어가 있는 아이브의 비평이 이를 보여준다.

30대 청년과 80세 정치인이 주도해 만들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윤 전 장관과 손 잡은 이들은 모두 30대 중ㆍ후반이다. 브랜딩 전문가 송주환씨, 광고 디자이너 김규식씨, 사진작가 정근호씨가 의기투합했다. 윤 전 장관은 자문 역할이다.

인터뷰는 인터뷰어가 제작진과 팀을 이뤄서 한다. 제작진은 그래서 매호 인터뷰어 선정에도 각별한 공을 들일 예정이다. 창간호에선 누구보다 아이브의 정신을 잘 꿰뚫고 있는 윤 전 장관이 인터뷰어를 맡았다.

송 편집장은 “인터뷰어가 관찰한 인터뷰이의 통찰을 콘텐츠로 제작해 수많은 개인에게 전달하고 싶다”며 “아이브는 깨어있는 개인이 변화의 주체가 되는 사회를 준비하는 매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아이브를 발간할 수 있는 안정적인 재정 구조를 만들기 위해 ‘아이브 클러스터’라는 컨설팅 전문 회사도 차렸다. 문재인 대통령을 인터뷰한 영국의 잡지 ‘모노클’의 뒤에도 컨설팅그룹 윈크리에이티브가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인쇄매체, 그것도 잡지가 살아남기 어려운 언론ㆍ출판 산업의 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포털이 과거 잡지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지만, 정제되고 특별하다면 새로운 길이 열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아이브는 인터뷰를 텍스트뿐 아니라 영상으로도 제작한다. 잡지로 발간된 이후에도 제작진과 인터뷰이, 인터뷰어, 독자들이 참여하는 컨퍼런스를 열고 이후 이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할 계획도 갖고 있다.

디자인도 기존의 잡지와 사뭇 다르다. 색채는 흑백만을 사용했고 사진도 인물의 얼굴을 클로즈업해 단순하고 사실적이다. 일반적인 단행본 크기에 표지는 인물 얼굴과 제호,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이름만 있어 호기심과 소유욕을 동시에 자극한다.

아이브는 오는 10월 2호를 내고 내년부터는 계간지로 발간할 예정이다. 창간호를 발매하기 전 아이브는 텀블벅(아이브 맛보기 영상)에서 24일까지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한다. 선구매하는 독자에게는 할인 혜택이 있다. 서점에서는 이달 말 만나볼 수 있다.

아이브 제작진을 서울 서초구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왼쪽부터 편집 디자이너 김규식씨, 자문 윤여준 전 장관, 편집장 송주환씨. 김지은 기자
아이브 제작진을 서울 서초구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왼쪽부터 편집 디자이너 김규식씨, 자문 윤여준 전 장관, 편집장 송주환씨. 김지은 기자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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