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구 아이돌보미 사건 피해 엄마 “맞는 게 습관 된 내 아기”

입력
2019.04.02 17:46
수정
2019.04.02 18:17

 

 피해 유아 엄마 “아기가 맞는 게 습관됐는지 자기 뺨 때려” 

 ‘아이 돌보미 서비스 보완’ 필요성 제기…“재발 방지 대책 목소리 내달라” 

'14개월 유아 폭행 금천구 정부지원 아이 돌보미' 영상이 1일 유튜브에 공개돼 시청자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유튜브 캡처
'14개월 유아 폭행 금천구 정부지원 아이 돌보미' 영상이 1일 유튜브에 공개돼 시청자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유튜브 캡처

서울 금천구에서 발생한 ‘정부 지원 아이 돌보미의 14개월 유아 학대 사건’ 피해자 가족이 “재발 방지 대책에 함께 목소리를 내달라”며 도움을 호소했다. 피해 유아 아빠가 직접 게시한 청와대 국민청원은 하루 만에 11만 명 이상이 동의했다.

피해 유아의 엄마 A(22)씨는 2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아이는 현재 엄마와 외할머니가 직접 돌보고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이 사건은 피해 유아 부모가 지난 1일 국민청원 게시판에 청원 글을 올리고 학대 현장이 촬영된 영상이 유튜브에 공개되면서 인터넷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피해 유아 가족이 정부 지원 사업인 ‘아이 돌봄 서비스’를 알게 된 것은 올해 초다. A씨는 “저희 부부가 금액 지원 혜택 대상이 아니었다. 아동 학대 사건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사설업체는 불안했다. 그러던 중 정부 사업이 믿음직스러워 아이 돌봄 서비스를 신청했다가 이런 일을 겪은 것”이라고 토로했다.

아이 돌봄 사업은 ‘아이 돌봄 지원법’을 근거로 2016년 3월부터 시행됐다. 맞벌이 등으로 양육 공백이 발생하는 가정은 신청을 통해 아이 돌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소득 수준에 따라 일정 비율의 이용 금액은 정부 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

아이가 돌보미에게 학대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족들이 눈치챈 건 서비스를 이용한 지 3개월이 지났을 무렵인 지난달 중순이다. “지난달 13일쯤 아이가 숟가락으로 밥을 안 먹으려고 했어요. 밥 숟가락을 거부하며 물건을 던지길래 ‘이러면 안 돼요’라고 가르쳤죠. 그러더니 아이가 대뜸 자기 뺨을 직접 때리는 거예요. 아이 행동이 이상해서 평소 집안에 설치돼 있던 CC(폐쇄회로)TV 영상을 확인했는데, 아이 돌보미 B씨가 아이 뺨을 때리는 장면이 나왔어요. 밥을 안 먹을 때마다 아이 뺨을 때리더라고요. 이게 습관이 됐는지 아이가 자기 뺨을 스스로 때리는 것이었어요. 이후 지난 3개월간 영상을 모두 되돌려 보며 학대 사실을 뒤늦게 알았어요.”

CCTV에 찍힌 영상을 확인한 부모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다”고 한다. 촬영된 영상 속에서 B씨는 아이에게 밥을 먹이다가 고개를 젓는 아이의 뺨을 때렸다. 아이가 재채기하자 납작한 물건으로 아이의 이마를 때리고 볼을 꼬집기도 했다. B씨는 아이가 음식물을 거부하는데도 억지로 먹였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뒤로 넘어져 B씨를 피해 엉금엉금 기어 도망가는 모습도 영상에 담겼다. 부모는 “더 많은 학대가 있었지만, 분량 때문에 모두 포함할 수 없었다”고 했다.

A씨는 “평소 B씨가 저희 앞에선 아이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고 있어서 학대를 할 거라곤 예상하기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아이 돌보미 B씨는 A씨 가족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내 사과를 대신했다고 한다. A씨는 “죄송하다고 저희 어머니에게 문자 한 통을 보냈다. 그것도 문자 말미에 ‘저도 해고돼 6년의 노고가 물거품이 됐다’고 하더라. 이게 진정한 사과라고 볼 수 있나. 그저 변명으로만 보인다”고 지적했다.

피해 유아 가족들은 B씨를 아동 학대 혐의 등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또 국민청원을 통해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이들이 요구한 대책은 △영유아 학대 처벌 강화, △돌보미 선생님의 자격 심사 강화 및 인성(적성) 검사, △현 연 1회 정기 교육을 3개월 또는 1개월로 횟수를 늘려 인성, 안전 교육 강화, △아이 돌봄 신청 시 해당 기간 신청 가정의 CCTV 설치 무상 지원 등이다. 피해 유아 아빠는 “CCTV만이라도 신청 기간 동안만큼은 정부에서 꼭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가족부 가족문화과 관계자는 “해당 사건을 인지하고 있다”며 “현재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피해 아동 부모가 CCTV 무상 설치가 가장 시급하다고 하셨는데, 예산이 필요한 일이라 지금 확답을 드릴 수 없다”고 밝혔다.

피해 유아 부모가 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청원은 2일 오후 4시 30분 기준 11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해당 청원에는 사건 내용과 학대 장면을 담은 유튜브 영상 링크가 담겨있다.

올해 초 서울 금천구에서 발생한 14개월 유아 학대 사건의 피해 유아 부모가 1일 게재한 국민 청원이 2일 오후 4시 30분 기준 11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올해 초 서울 금천구에서 발생한 14개월 유아 학대 사건의 피해 유아 부모가 1일 게재한 국민 청원이 2일 오후 4시 30분 기준 11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영상은 피해 유아의 숙부인 C씨가 공개했다. C씨는 학대 피해 영상 공개 이유에 대해 “저도 8~9년 전 아이를 키우면서 육아 서비스를 쓰다가 아이가 학대 피해를 겪었다. 조카는 같은 피해를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결국 같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확실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해 많은 사람이 공감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유튜브를 통해 영상을 본 시청자들은 “말도 못 하는 아기를 훈육이랍시고 때리고 학대하면 되겠다. 실형으로 처벌해달라. 불안해서 애 못 키우겠다”, “아기도 불쌍하고 영상을 본 부모님도 얼마나 억장이 무너질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해당 부모는 청원을 통해 “아이를 갖고 싶어도 열악한 환경 탓에 아이를 갖지 못하는 제도적 불임부부가 많다”며 “이런 일이 다신 반복되지 않도록 정부에서 꼭 도와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A씨는 “국민 청원과 유튜브에 달린 댓글을 봤는데, 이렇게 많은 분이 자신의 일처럼 저희 아이를 걱정해주실 줄은 몰랐다. 직접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속상하고 힘들었지만, 응원해주시니 힘이 난다.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고 재차 촉구했다.

이정은 기자 4tmr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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