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붐 업! K리그] 큰 집 떠나 작은 집에서 활로… 거품 빼는 K리그

입력
2019.03.14 04:40
수정
2019.03.14 10:03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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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구단들의 생존전략 ‘다운사이징’

#올해로 37번째 시즌을 맞는 K리그는 아시아 최고수준의 프로축구 리그로 평가되지만 스타들의 해외 이적과 구단 운영의 ‘자금줄’ 역할을 하던 기업ㆍ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축소 등 악재가 겹치며 암흑기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일보> 는 연중기획 [붐 업! K리그]를 통해 프로축구 흥행을 위한 과제를 짚고, 축구계 모든 구성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K리그 부활 방안을 심도 있게 모색해 볼 예정이다.

인천과 제주의 하나원큐 K리그 2019 1라운드 경기가 열린 2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관중들이 들어차 있다. 인천=김형준 기자
인천과 제주의 하나원큐 K리그 2019 1라운드 경기가 열린 2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관중들이 들어차 있다. 인천=김형준 기자

프로축구 K리그1(1부 리그) 대구FC는 DGB대구은행파크(포레스트아레나)로 홈 구장을 옮긴 올해 치른 2차례 홈경기에서 매진 행렬을 기록했다. 개막 첫날인 지난 9일 1만2,172명의 유료 관중이 들어찼을 때까진 ‘개막 효과’로 보는 시선이 많았지만, 경기력과 더불어 새 구장의 관람환경과 접근성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며 평일이던 9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광저우 에버그란데전 티켓도 경기 당일 오전 동났다. 지난해까지 홈 구장으로 사용했던 대구 수성구의 대구스타디움(6만6,422석 규모)를 과감히 떠나 상대적으로 도심인 북구로 둥지를 옮긴 도전이 일단 성공한 모습이다.

DGB대구은행파크는 시 예산 500억원 가량을 들여 대구시민운동장을 리모델링 해 1만2,172석 규모로 올해 초 완공됐다. 수용규모만 따지면 대구스타디움의 20% 수준도 안 되지만, 대구가 과감히 ‘다운사이징(downsizing)’ 전략을 세운 건 흥행을 넘어 구단의 생존 활로를 개척해야 한단 절박함 때문이었다. 대구스타티움을 다 채우면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을 거란 단순한 계산을 접고, ‘분수에 맞는’ 규모의 구장에서 소비자(관중)들에게 양질의 상품(경기)을 제공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특히 경기장 운영권이 대구 구단에 넘겨진 건 의미 있는 변화다. 구단은 개막 직전 DGB대구은행에 구장 명칭사용권(naming rights)을 팔아 3년 45억원 수준의 재원을 확보했고, 경기장 내 8개 매장 입점도 확정됐다. 접근성은 덤이다. 둥지를 도심 외곽에서 도심 한 가운데(대구역에서 도보 10분 거리)로 옮기니 시민들과 가까워질 기회도 늘었다.

9일 문을 연 DGB대구은행파크 상단엔 대구FC로부터 명칭사용권을 구매한 DGB대구은행의 로고가 붙어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9일 문을 연 DGB대구은행파크 상단엔 대구FC로부터 명칭사용권을 구매한 DGB대구은행의 로고가 붙어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프로축구 K리그1 대구FC의 새 홈구장 DGB대구은행파크가 문을 연 9일 대구와 제주의 경기를 보러 온 관중들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대구=김형준 기자
프로축구 K리그1 대구FC의 새 홈구장 DGB대구은행파크가 문을 연 9일 대구와 제주의 경기를 보러 온 관중들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대구=김형준 기자

전문가들은 K리그 시장 규모를 고려하면 다운사이징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입을 모은다. 경기장 설계 전문가인 정성훈 로세티 이사는 “‘몰입도’가 생명인 축구의 경우 시야와 현장감을 극대화 하기 위해선 가능한 경기장 크기를 줄여 관중을 채우고, 그 안에서 팬들이 누릴 수 있는 경험들을 다양화 해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관중들에게 K리그가 ‘좋은 상품’이란 인식을 심어준 뒤 다양한 혜택을 포함한 프리미엄 좌석 등을 개발해 객단가(고객 1인당 평균매입액)를 높이는 전략이 보다 현실적이란 얘기다.

실제 K리그의 경기장 다운사이징은 2010년 전후부터 꾸준히 시도되고 있다. 2002 한일월드컵의 유산인 월드컵경기장이 대체로 K리그를 치르기엔 지나치게 크다는 분석에 따른 전략이다. 지난 2012년 문학경기장(5만1,237석)을 떠나 인천축구전용구장(2만300석)에 새 둥지를 튼 인천, 재작년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5만5,982석)을 떠나 도심의 구덕운동장(1만2,349석)으로 복귀한 부산이 대표적이다. 축구전용 월드컵경기장을 사용하는 울산, 수원 등은 관중석 2층을 스폰서 로고나 구단 상징을 새긴 대형 현수막으로 덮어 관중을 1층으로 유도한다. 또 다른 방식의 다운사이징 전략인 셈이다.

13일 아시아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앞둔 울산 문수월드컵 경기장의 모습. 서쪽 일부를 제외한 2, 3층 관중석의 대부분을 천막으로 가려놨다. 울산=이승엽 기자
13일 아시아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앞둔 울산 문수월드컵 경기장의 모습. 서쪽 일부를 제외한 2, 3층 관중석의 대부분을 천막으로 가려놨다. 울산=이승엽 기자

팬들은 대체로 경기장 다운사이징을 반기는 모습이다. 12일 DGB대구은행파크에서 만난 대학생 유형선(22)씨는 “접근성부터 경기관람 환경이 크게 개선되면서 만족도도 훨씬 높아졌다”고 했다. 그는 “관중석과 그라운드 거리가 7m(기존 대구스타디움은 약 20m)밖에 되지 않는데다, 알루미늄 바닥을 활용한 ‘발 구르기 응원’도 새로웠다”며 “경기를 보는 재미와 경기장 분위기 모두 유럽축구와 견주었을 때 전혀 부족함 없었다”고 했다.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렸던 지난 시즌 개막전(3월10일 수원전)도 찾았다는 이민성(33)씨는 “그날 관중(1만3,351명)이 이번 시즌 홈 개막전 관중 수보다 많았음에도 텅텅 비어 보였다”며 “새 구장에선 1만명만 넘게 찾아도 꽉 찬 느낌이 들 것”이라고 했다.

다운사이징을 통한 관람환경 개선 사례가 늘면서 다른 K리그 구단들도 ‘큰 옷’을 벗고 ‘딱 맞는 옷’을 걸칠 준비를 하고 있다. 현재 광주월드컵경기장(4만245석)을 홈 구장으로 쓰는 광주는 내년부턴 바로 옆 보조구장에 7,000석 안팎의 가변석을 설치한 축구전용 경기장을 세워 홈 팬을 맞겠단 계획이고, 부천종합운동장(3만5,545명)을 홈 구장으로 쓰는 2부 리그 부천도 보조경기장을 리모델링 해 약 5,000석 규모의 전용구장 설립을 추진 중이다. 정 이사는 “관중들에게 좋은 관람환경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간 300일이 훌쩍 넘는 비(非)영업일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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