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근로제 의결 ‘조연 3인 반란’에 무산… 경사노위는 남 탓만

입력
2019.03.07 18:30
수정
2019.03.07 19:23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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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사정 합의 불구, 청년ㆍ여성ㆍ비정규직 대표 불참에 최종합의 실패 

 경사노위, 계층별 대표 권한 약화안 검토… 민주노총은 합의 무산 반색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에서 근로자위원인 청년·여성·비정규직 대표 3명의 본위원회 불참과 관련된 대책 논의 결과 등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은 박태주 상임위원. 연합뉴스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에서 근로자위원인 청년·여성·비정규직 대표 3명의 본위원회 불참과 관련된 대책 논의 결과 등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은 박태주 상임위원. 연합뉴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를 위한 최종 사회적 합의에 실패했다. 어렵게 노사정 합의를 하고도 청년ㆍ여성ㆍ비정규직 계층별 대표를 설득하지 못해 본위원회 의결 정족수를 채우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경사노위는 계층별 대표들이 무책임하다고 비판하며 권한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위원회는 오늘(7일) 청와대에서 본위원회를 개최하고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사회적 대화 보고회를 가질 예정이었지만 청년ㆍ여성ㆍ비정규직 등 계층 위원의 불참 통보로 취소된 점에 대해 국민들께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본위원회의 의결 정족수를 충족하려면 근로자 또는 사용자 대표가 각각 2분의 1 이상 출석해야 한다. 그런데 근로자 대표 4명 중 3명인 청년ㆍ여성ㆍ비정규직 대표가 전날 본위원회 보이콧을 선언하며 의결 정족수가 미달됐다. 문 위원장은 “3월11일 본위원회를 다시 개최하고자 한다”면서 이날 불참한 위원들의 참여를 촉구했지만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청년ㆍ여성ㆍ비정규직 비중 축소 검토 

경사노위는 화살을 계층별 대표들에게 돌렸다. 문 위원장은 “위원회의 의사결정 구조와 위원 위촉 등 운영방식에 대해 대안을 검토하고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태주 경사노위 상임위원은 “이런 사태가 재발하면 본위원회는 무력화할 수밖에 없다”면서 의결 정족수 등에 대한 법 개정도 검토하겠다고 부연했다. 경사노위가 정색하고 나선 것은 주연인 양대노총과 달리 조연급으로 여겼던 청년ㆍ여성ㆍ비정규직 대표가 강력한 캐스팅 보트를 쥘 수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된 데 따른 것이다.

계층별 대표제가 장외 투쟁 세력의 흔들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경사노위는 우려한다. 경사노위에 따르면 청년, 여성 대표는 5일까지만 해도 문 위원장에게 본위원회 참석을 확약했지만 하루 만에 돌연 태도를 바꿨다. 그 배경에는 민주노총 조합원과 비정규직 활동가 등으로 구성된 장외 투쟁 세력의 집요한 흔들기가 있었다. 양대노총 위원장들과 달리 청년ㆍ여성ㆍ비정규직은 수많은 관련 단체 중 현재 근로자 대표로 지정된 단체(청년유니온, 전국여성노조,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굳이 대표를 맡아야 할 필연성이 적다. 장외 투쟁 세력이 “청년, 비정규직 등을 대표해 개악에 동의해줄 자격이 있냐”고 압박하면 움찔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남 탓만 하는 경사노위” 지적도 

하지만 경사노위가 남 탓만 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법에 정해진 본위원회 절차가 엄연히 남아 있는데도 의제별 위원회 단계에서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다는 지적이다. 노사정위 상임위원을 지낸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는 “의제별 위원회 협상 과정 때부터 본위원회 위원들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의견을 주고 받았어야 하는데, 이런 과정을 소홀히 한 경사노위가 이제 와 계층별 대표와 제도에 책임을 돌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연장이라는 답과 시한을 정해 놓고 승인만 하라는 식의 합의 내용도 계층별 대표를 곤혹스럽게 했다. 계층별 대표 3인은 전날 공동 성명에서 “미조직 노동자들은 실질적 보호를 받기가 어려운 합의안이 고스란히 본회의로 올라와 오로지 표결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며 우리는 자괴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표정 엇갈린 양대 노총 

양대노총의 표정은 엇갈린다. 한국노총은 7일 입장문을 내고 “취약계층 노동자 대표들이 정작 취약계층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합의문을 심의‧의결하는 회의에 불참한 것은 그들이 과연 진정으로 현장의 어려운 노동자들을 대변하고 있는지 의심케 한다”며 계층별 대표를 비판했다.

반면 경사노위 불참과 총파업 흥행 실패로 존재감 위기에 놓인 민주노총은 반색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논평을 내고 합의 무산에 대해 “민주노총이 저임금ㆍ장시간 노동자 보호를 이유로 반대해왔던 의제를 정부와 국회가 무리하게 추진하며 소모적인 논의를 벌인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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