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 브루클린 브리지, 그리고 한국

입력
2019.03.07 19: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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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도’는 <한국일보>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브루클린 브리지 전경. 게티이미지뱅크
브루클린 브리지 전경.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뉴욕 이스트강에는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잇는 브루클린 브리지(대교)가 있다. 길이 1,053m인 이 다리는 뉴욕 최고의 명소이자 상징 중 하나다. 매년 11월 개최되는 뉴욕마라톤 시작점이기도 하다. 미 국립공원관리청으로부터 1964년 ‘국가 역사 기념물’로 지정됐다. 뉴욕을 찾는 관광객들에겐 멋진 야경을 선사하는 곳이다.

브루클린 브리지는 ‘역경을 이겨낸 상징물’로 더 유명하다. 실제 1869년 착공부터 1883년 개통까지 ‘화는 홀로 안 온다’는 옛말을 절감해야 했다. 브루클린 다리를 설계한 독일인 이민자인 존 로블링(John A. Roebling)은 착공 전 현장점검 과정에서 배와 선착장 사이에 다리가 끼어 뼈가 으스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다리를 절단했지만 곧바로 파상풍에 걸렸고 그 합병증으로 자신이 설계한 다리의 착공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이후 공사는 함께 자금을 모았던 아들 워싱턴이 맡았다. 그러나 그 역시 착공 이듬해 공기색전증(기포가 혈관을 막는 질병)으로 사지가 마비되는 고통에 빠졌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워싱턴을 도와 공사를 진행한 사람은 그의 아내 에밀리였다. 워싱턴이 아파트에서 망원경으로 공사현장을 지켜보는 가운데 에밀리는 남편과 엔지니어 사이에서 연락책이자 감독자로서 11년 동안 건설을 진두지휘했다. 공사 기간에 27명이 사망하고, 다리를 잇는 탑에서 화재가 일어나는가 하면, 철근 제공업자의 사기까지 더해지는 굴곡을 겪으면서 ‘비운의 다리’로도 불렸다. 그러나 이런 모든 악재를 이겨내고 14년여의 공사기간 끝에 다리는 개통했다. 브루클린 브리지는 이런 역경을 헤쳐나간 스토리가 100여년을 이어오면서 뉴요커들이 가장 사랑하는 상징물이 됐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자면 100여년 전 브루클린 브리지와 오버랩 된다. 지난 한해 기대감을 잔뜩 부풀렸던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는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기약없이 미뤄졌다. 지난해 합계출산율(가임 여성이 평생 낳는 아이 수)은 0.98명으로 세계 최저출산국이라는 오명을 안았으며, 고용 성장률 수출 분배 등 각종 경제지표는 고꾸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세먼지는 짜증을 넘어 국민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지경에 달했지만 뾰족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사회적, 정치적, 이념적 갈등은 접점을 찾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은 채 더욱 노골화하는 모습이다. 선진국의 기준선처럼 제시됐던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겼음에도 체감하지 못하는 국민들이 태반인 것은 이런 악재들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는 점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3년 전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회자됐던 ‘이게 나라냐?’라는 말과, ‘이민 가고 싶다’는 불평이 최근 자주 나온다는 사실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잘 보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신호다.

역경은 희망이 있을 때 헤쳐나갈 수 있다. 브루클린 브리지 설계자 존은 아들 워싱턴에게서, 워싱턴은 아내 에밀리에게서 희망을 봤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길 것이라는, 육아 걱정 경력 단절 걱정 없이 애를 낳을 수 있다는, 쾌적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남보다 조금 못 벌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늙어도 안락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부모의 능력이 없어도 나만의 능력으로도 당당히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는가. 불과 1년 전에는 국민 10명 중 9명 가까이(2018년 4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 86.1%)가 이런 희망을 봤었다. 하지만 지금은 2명 중 1명(7일 리얼미터 지지율 47.3%)도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희망과 비전이 제시될 때 국민들도 마음을 연다는 엄중한 경고로 읽어야 하는 수치다. 브루클린 브리지처럼 우리도 지금의 위기를 이겨낸 성공 스토리를 써내려갈 수 있길 희망한다.

이대혁 경제부 차장 selected@hankookilbo.com

이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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