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봉제업체 SKB 3000명 월급 떼여, 印尼 노동 장관 경고… 사태 장기화에 “한국정부 나서야” 
무하마드 하니프 다키리 인도네시아 노동부 장관이 지난달 27일 자카르타에서 열린 '2019 코리안비즈니스 다이얼로그'에서 연설하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인도네시아가 한국인 봉제업체 사장의 야반도주에 단단히 뿔났다. 한국 기업 전체를 성토하는 노동계의 목소리가 들끓더니 급기야 주무장관이 공개석상에서 엄중 경고까지 하고 나섰다. 한인사회와 재외공관이 동분서주하지만 사태 이후 100일이 넘도록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신(新)남방정책에 재를 뿌리는 사안인 만큼 정부가 시급히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무하마드 하니프 다키리 인도네시아 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2019 코리안 비즈니스 다이얼로그’에 연사로 나서 “한두 명이 물을 흐려서 ㈜에스카베(SKB) 노동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면서 “‘함께 성장하자(Together We Grow)’는 이번 주제처럼 노동조합을 파트너로 여기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평소 직언을 아끼지 않는 성향의 무하마드 장관이지만 이날 발언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동포 기업인들 사이에선 “듣고 있는데 식은땀이 나더라”, “미꾸라지 한 마리가…”, “SKB(사태)가 작년 그거냐”, “아직 해결이 안 됐나” 등 탄식과 반문이 이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모임은 재인도네시아한인상공회의소(KOCHAM)가 산업통상자원부 후원으로 인도네시아 정부 고위관료 등을 초청해 양국 경제협력 등 덕담을 나누는 연례행사였다. 일본과 중국 등 다른 나라 상공회의소 인사들도 자리했다. 한 한인 기업인은 “창피한 노릇이다. 못 알아들었기를 바란다”고 눈치를 살폈다.

6일 KOCHAM 등에 따르면, SKB 사태는 자카르타 시내에서 동쪽으로 20여㎞ 떨어진 브카시 소재 봉제업체 SKB의 대표 김모(69 추정)씨가 지난해 10월 5일 직원 3,000여명에게 월급을 주지 않고 잠적하면서 불거졌다. 한국인 직원들도 한 달 뒤 모두 사라지고 일감이 곧 떨어지자 노동자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김씨가 900억루피아(약 72억원)를 횡령해 한국으로 달아났다’고 고발하면서 파문이 커졌다. 노동단체들이 “국가 이익을 해치고 국민의 존엄성을 떨어뜨리는 한국과의 투자 협력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시위하는 장면이 연일 현지 전파를 탔다. SKB 노조는 “한국 업주의 야반도주 사건이 우리 포함 작년에만 4건”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공장은 세관 압류딱지가 붙어 출입이 금지된 상태다. 노동자들은 혹여 기계와 설비를 한국인이 몰래 빼돌릴까 봐 공장 앞 뜰을 24시간 교대로 지키고 있다.

4일 낮 봉제업체 에스카베(SKB) 노동자들이 회사 정문 안쪽에 있는 축사처럼 생긴 식당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혹시 한국인들이 기계를 빼돌릴까 봐, 또 미지급 월급을 돌려받기 위해 돌아가면서 24시간 기다린다고 했다. 브카시(인도네시아)=고찬유 특파원

사태가 심각해지자 KOCHAM은 지난달 8일 인도네시아 노동부 장관 등과 1차 면담을 가졌다. 주인도네시아한국대사관 직원도 참석했다. 그러나 김씨와 연락이 닿지 않는 데다, 공장 건물과 부지는 소송에 걸려 있어 자산 매각도 어려운 상태다. KOCHAM은 당장 지급해야 할 월급만 60억루피아(약 4억8,000만원)로 보고 있다. 채권 은행들이 가세하며 면담이 이어졌지만 5차 면담에서 노조 측 변호사가 “외국인이 인도네시아 사람을 ‘짓밟고’ 있다”고 토로할 정도다. 8일 6차 면담에는 김씨 대리인도 참석할 예정이다.

송창근 KOCHAM 회장은 “수교 46주년에 벌어진 치명적인 사건”이라며 “사태 해결에 지혜를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김창범 대사는 “조속히 해결되도록 초기부터 관심을 기울였으나 현실적으로 (재외공관이) 쓸 수 있는 수단이 별로 없어 안타깝다”면서 “한인 봉제업체 전체 이미지에 타격이 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지 기업인들은 우리 정부가 직접 나서주길 바라고 있다. 해당 범죄는 인도네시아에서 형사처벌되는 중죄인 만큼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등을 통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못해, (김씨가) 한국에 있다며. 서울(정부)에서 경찰을 보내서라도 압박하면 되지. 복잡하다고? 귀찮은 거지. 그러면서 무슨 신남방이야. 마음을 얻긴 어려워도 잃는 건 금방이야.” 현지 원로의 말이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에스카베(SKB) 야반도주 사태 일지. 그래픽=김경진기자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