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수사결산] 대법원장 구속 ‘성과,’ 소폭 사법처리는 ‘한계’

입력
2019.03.05 18:13
수정
2019.03.05 20:37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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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고영한ㆍ박병대 전 대법관. 연합뉴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 고영한ㆍ박병대 전 대법관. 연합뉴스

사법부가 자신들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재판을 거래 대상으로 삼았다는 희대의 의혹. 사법농단에 대한 수사는 5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ㆍ고영한 전 대법관 등의 지시를 받아 농단을 수행한 법관들을 추가 기소하면서 사실상 마무리됐다. 지난해 6월 서울중앙지검이 본격 수사에 착수한 지 약 9개월 만이다.

◇최후의 성역 사법부 단죄 성공한 검찰

최후의 성역으로 여겨졌던 사법부의 범죄 의혹을 본격적으로 파헤쳐 헌정사상 처음 대법원장을 구속시킨 것은 이번 수사의 최대 성과로 꼽힌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이제 대법원장이라고 해도 일선 법관에 개입하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며 “헌법상 재판 독립의 가치가 확실하게 지켜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했다.

오랜 기간 동안 변죽만 울렸던 사법농단 의혹의 실체를 명백하게 규명한 것도 수사가 거둔 성과다. 한 부장판사는 사법농단 수사에 대해 “일년 넘는 기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자체조사를 하고도 해소되지 못했던 의혹이었다”며 “당장 사법 불신은 불가피하겠지만, 개혁을 위해선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다만 현직 대법관을 포함해 사법농단에 연루됐던 일부 전ㆍ현직 법관을 끝내 기소하지 않은 것은 한계로 지적된다. 검찰 입장에서 평상시에는 ‘을’일 수밖에 없는 사법부를 상대로 수사라는 점을 고려해, 전선을 소수 관련자에게만 집중하는 식의 현실적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의혹에 연루되어 이번에 비위 사실이 통보된 현직 법관만 해도 66명에 달하지만, 이날 기소된 10명과 이미 기소된 4명(양 전 대법원장 박ㆍ고 전 대법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장)을 더해 실제 재판을 받게 된 전현직 법관은 14명에 그쳤다.

◇현실적 이유로 법관 기소는 최소화

이렇게 검찰이 사법처리 대상을 좁힌 이유는 연루 법관 모두를 재판에 넘길 경우 사법 시스템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현실적 이유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당초 사법농단과 관련해 조사받은 법관은 100여명에 달했다. 의혹이 있다고 해서 모두 재판에 넘기는 경우 일선 재판의 공백이 발생하거나, 사법부에 대한 신뢰 자체가 무너져 내리는 등 부작용이 크다고 본 것이다. 기소된 법관들에 대해 대거 무죄가 나는 경우 검찰이 받게 될 타격도 고려해, 확실하고 증대한 혐의에 대해서만 사법처리를 결정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검찰은 향후 재판이나 추가 수사를 통해 추가적인 증거와 진술이 나올 경우 기소 가능성이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검찰 관계자는 “권순일 대법관 등은 범행이 구체화되거나 본격화되기 전 행정처 보직을 이탈했고 이후에는 관여하지 않았다”며 “현 단계에선 기소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큰 줄기에서는 수사가 마무리됐으나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일부 의혹에 대한 수사도 상반기까지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기소에서 새로 드러난 국민의당 홍보비 리베이트 사건 재판정보 유출은 아직 청탁자가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상태다. 서영교 의원 등 정치인들이 법원행정처에 재판을 청탁했다는 의혹도 공모 관계에 대한 진상규명이 필요한 부분으로 꼽힌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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