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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개입 사건 분석해 보니]
강제징용ㆍ통진당 가압류 등 결론 양승태 의중 벗어나지 않아
[저작권 한국일보] 사법농단의 몸통으로 불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2016년 9월 대법원에서 열린 이인복 대법관 퇴임식이 끝난 뒤 로비를 나서는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른바 ‘사법농단’의 몸통으로 불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47개 혐의 가운데 핵심은 재판 개입이다. ‘법관이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헌법 규정만 보더라도 재판 개입은 엄중한 헌정 질서 위반인데, 양 대법원장의 공소 사실에는 10여건의 재판에 개입한 혐의가 적혀 있다. 그렇다면 양 전 대법원장이 법원행정처를 동원해 개입한 재판 결과는 어땠을까.

양 전 대법원장의 공소사실에 등장하는 재판개입 사건을 분석한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사법농단의 핵심 사례로 꼽히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 △원세훈 전 국정원장 대선개입 사건 △서기호 의원 재임용 행정소송 사건 △옛 통진당 잔여재산 가압류 사건 등에서 사실상 양 전 대법원장의 의중이 반영된 결론이 내려졌다. 상고법원이라는 정책 목표를 위해 거래 대상이 됐던 재판 대부분은 양 전 대법원장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은 결론이 내려졌다. 애당초 재판부의 결정 방향이 사법 수뇌부의 의중과 같은 방향이었을 수 있지만, 양 전 대법원장의 뜻이 전달된 재판이라는 점에서 ‘오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 개입은 1심이나 2심, 상고심을 가리지 않았다. 이미 결정이 내려져 소송 당사자에게 통보까지 이뤄진 사건이 양 전 대법원장의 한마디로 뒤집히기도 했다. 서울남부지법은 2015년 사립학교 교직원연금법의 재직기간 산입 여부를 놓고 헌법재판소에 ‘한정위헌’ 여부를 묻는 위헌법률심판제청 결정을 내렸지만,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가 전달되자 이를 직권 취소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 개입을 받고도 수뇌부의 의견과 배치되는 판결을 내린 경우는 많지 않았다. 통진당 관련 재판에서 잔여재산 가압류 사건은 법원행정처 의중과 일치하는 결과가 나왔고, 통진당 관련 행정소송에서는 ‘각하하지 말고 본안 판단을 하라’는 양승태 사법부의 지침을 대부분 따랐다. 매립지 귀속 분쟁과 관련한 소송의 경우 “헌재보다 앞서 판단하라”는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와 달리 아직 선고가 나오지 않았으나 그 경위는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주요 현안에 대한 법리검토 등 의견을 제시한 것뿐이고, 판결은 재판부의 뜻대로 이뤄졌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향후 재판 과정에서 “판결은 해당 재판부의 권한이지, 대법원장의 권한이 아니므로, 직권남용이 성립할 수 없다”는 식으로 맞설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일선 법관들이 돌연 재판을 연기하거나, 행정처가 요구한 문구를 판결문에 넣으려고 애쓴 흔적들이 적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단순한 의견 전달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양승태 사법부가 “개별 의원직 상실여부에 대한 판단 권한은 사법부에 있다”는 판례를 세우기 위해 일선 법원에 법원행정처 문건을 전달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비례대표 지방의회 의원 소송을 맡았던 광주지법의 재판장은 승진 탈락을 우려해 행정처의 뜻대로 청구기각을 선고하고자 했다. 하지만 배석판사들의 반대가 거셌고,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재판을 이듬해로 넘겨야 했다. 전주지법 소송에서는 선고가 끝난 직후 행정처의 요구대로 특정 문구를 넣어 판결문을 다시 작성하는 과정에서 행정처 문건을 출입기자단에 배포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검찰은 재판부의 독립을 침해할 수 있는 부당한 지시 자체가 위법(직권남용)이고 헌법 위법이라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대법원장은 재판에 대해서도 국민의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위해 필요한 범위 내에서 직무상 명령을 내릴 권한이 있다”며 “양 전 대법원장은 이 같은 권한을 부당하게 남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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